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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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4(96년 11월호)
--안식일 준수문제--
안식교의 안식일 개념을 비판한다
안식교인들은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논쟁하기를 좋아하고, 기성교인들을 미혹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논쟁으로 여기는 것같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안식일 개념이 옳다고 보고, 기성교회의 주일 개념에 약점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안식교측의 김대성 목사는 다른 문제들은 1회의 논쟁으로 족하지만 안식일 문제에 대해서만은 2회에 걸쳐 논쟁을 하자고 제의해 왔고 필자들도 동의했다. 그 이유는 진리논쟁은 진리 자체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종파든 모든 교리는 대부분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안식교도 마찬가지이다. 율법주의적인 구원관 문제나, 2300주야 문제, 화잇의 선지자성 문제 내지는 계시 문제, 안식일 문제들은 서로서로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안식일 문제는 그로써 다른 모든 것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자신있어 하는 안식교의 안식일 문제가 어떻게 명백하게 성경적으로 잘못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안식교인이나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다 유익한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I. 전 호에 대한 반증
전 호에서는 화잇의 문제가 취급되었다. 기성교회측에서는 엘렌 지 화잇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요, 안식교측에서는 선지자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하여 안식교측의 김대성 목사는 여러 가지 변증을 하였는데 문제점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다.
(1) 조용기 목사 문제에 대하여
대답할 가치가 별로 없는 질문을 김대성 목사가 물어 왔다. 그러나 물었으니 대답한다. 먼저 조용기 목사를 통합측에서 이단으로 규정했다가 해제했는데 어떤 이유로 입장을 바꾸어 취소했는지 입장을 알려 달라고 하였다(김목사는 통합측이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정했다고 언급했으나 정확히 하자면 조용기 목사에 대한 사안인 것이다).
오히려 김목사에게 몇 가지를 반문함으로 대답을 대신코자 한다.
첫째로는, 김목사는 통합측에서 조용기 목사를 이단으로 정했다가 해제했다고 했는데, 김목사는 어디에서 조용기 목사를 이단으로 했다고 들었으며 어느 책에 그렇게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는가? 둘째로는, '사이비'란 말과 '이단'이란 말의 뜻을 아는가? 적어도 이런 질문을 하려면 평신도도 아닌 목사가, 그리고 이런 논쟁을 하는 당사자로서 그 정도는 알고 물어야 할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반대로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죄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와 비교하여 말한다는 점을 아는가? '자신은 억울하다'느니 '자기보다 더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다'는 등의 변명을 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만의 하나 통합측에서 조용기 목사를 잘못해서 '사이비성이 있다'고 했고 또 잘못해서 그 규정을 해제했다면 그것이 안식교가 이단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가? A란 사람에 대한 잘못과 B란 사람의 잘못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래서 안식교도 조용기 목사처럼 해제하라는 말인가? 자신들은 교리적인 이단일 뿐 성경적인 이단이 아니라면서, 김목사의 논리대로 하면, 성격적으로는 이단이 될 수밖에 없는 기성교회로부터 왜 교리적으로 이단이 아니라고 인정받으려고 하는가? 이단이 아니라고 인정받고 자신들의 교리가 기성교회보다 우월하다고 해야 기성교인들을 안식교로 끌어가기에 이롭기 때문인가? 그리고 안식교도 조용기 목사처럼 잘못을 시인할 수 있는가?
(2) 안식교는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인정한다는 말에 대하여
김목사는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계시' 속에도 '표절'(김목사는 '차용'를 사용했다)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왜 이렇게 주장하게 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야 화잇의 선지자성과 그의 계시가 인정될 것이요 따라서 안식교가 이단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여러 이단들이 가지는 특징으로서 성경 외에 자신들의 계시를 성경과 같은, 또는 성경 위의 계시로 인정받기 위함이다. 기성교회는 안식교의 이러한 주장을 다른 이단들과 함께 이단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목사는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요엘서의 예언과 고린도전서 12, 14장의 은사들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김목사의 주장과는 달리 요엘서 2장의 예언이나 고린도전서의 은사들이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더욱이 화잇의 계시를 뒷받침해 주는 성경이 결코 아니다. 요엘서나 고린도전서가 말하는 것은 성경 외의 다른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령의 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에서 선지자로 믿고 있는 화잇의 계시는 보편적인 은사로서의 계시가 아니다. 안식교의 교리들은 성경의 계시처럼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세워졌고, 실질적으로는 성경 위의 계시로 작용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기성교회 중에도 성경의 유오성과 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그릇된 신학자들도 있다. 그것이 이단들에게 자신들의 계시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화잇의 경우는 다르다. 우선 다음과 같은 점이 다르다.
안식교인들은 화잇의 계시를 '대언의 영'이라고 하며, 화잇을 말세의 '마지막' 선지자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화잇이 마지막 선지자인가? 성경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은사로서의 예언이나 계시는 화잇의 계시가 있을 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요 그러나 화잇의 계시가 있은 후에는 다른 계시나 예언은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는가? 기성교회에서 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잘못된 신학자들도 어느 특정인의 계시를 인정하기 위하여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안식교는 화잇의 '특별계시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으로 화잇의 계시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계시의 문을 열고 또 화잇 외에는 계시가 존재할 수 없도록 그 문을 닫아 버렸으니 얼마나 모순된 소리인가?
놀라운 사실은 안식교 역사에, 화잇 후에 화잇처럼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교에서는 그들을 다 잘못되었다고 하여 이단시하였다는 점이다(본 호의 지면상 증거는 다음 호에 제시하겠다). 이런 모순되고 불합리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왜 안식교에서는 화잇의 계시는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계시는 인정하지 않는가?
(3) 화잇의 표절계시 문제를 정당화하는 점에 대하여
김목사는 화잇의 표절 문제에 대하여도 변증하였다. 필자가 볼 때 김목사는 안식교인으로서 최초로 화잇의 표절 문제를 시인한 사람으로 보인다(물론 김목사는 '차용'이라는 용어를 동원했지만 필자는 '표절'이라는 용어가 맞다고 본다). 그 동안 안식교의 변증자들은 화잇의 표절성을 추호도 시인하지 않았으나 김목사가 지난 글에서 '차용'이라는 개념을 들어 시인하게 된 것이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보자기로 밤송이를 싸서 그 가시를 숨기려고 하다가 어리석음을 알고 손바닥과 보자기를 치워버린 격이라고 본다. 화잇이 표절한 계시들을 계시로 인정하자니 괴롭고, 인정하지 않자니 사실이 고통스러워 만들어 낸 최초의 변명이 된 셈이다.
지금까지 화잇의 표절성에 대하여 김목사 외에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 자체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한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 사실을 안식교의 평신도들과 목사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
김목사의 말에 의하면 화잇의 계시는 표절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영감'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다음 호에 김목사는 반드시 '축자영감'이란 말과 '인간영감'이란 말에 대하여 우선 정의해 주기 바란다. 기성교회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인간영감'이란 말을 하여, 화잇의 거짓 계시를 적당히 합리화하려는 연막술같기에 하는 질문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때로 다른 사람의 문헌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이루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화잇의 표절과는 전혀 다르다. 화잇이 대부분 계시라고 말한 내용은 알프렡 이더솨임(Alfred Edersheim)의 글을 앞뒤를 바꾸어 가며 표절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계시는 화잇이 받은 것이 아니라 알프렡 이더솨임이 받은 것이요, 마지막 선지자는 화잇이 아니라 이더솨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화잇의 표절문제를 기사화했던 미국의 뉴스위크지(Newsweek)는 "이 차용은 한 곳에서 한 문장을 옮겨 쓰고 다른 곳에서는 한 말을 옮겨 쓴 것이 아니고 그의 저서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화잇의 표절은 김목사의 주장과 같이 문학적인 차용이 아니고 철저한 표절이었다. 나아가 뉴스위크지는 "화잇의 저서 80%의 것이 초기 저작자들로부터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고 하였다(1981년 1월 19일자 종교란). 이 문제는 다음에도 계속 취급하기로 하겠다.
(4) 화잇의 글들과 성경과의 관계에 대하여
김목사는 화잇의 모든 글들은 성경을 대체할 수 없고 성경에 의하여 판단 받아야 하며 성경만이 최종 규범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형식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화잇의 계시가 성경과 정반대되는 문제가 많은데 이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중에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화잇은 성경이 교훈하지 않는 채식교리의 계시를 받았는데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경에 육식을 금한 적이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식을 하였으며, 선지자나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육식을 했으며, 예수님도 고기를 잡수셨고(눅 24:42-43), 백성들에게 먹이셨고(요 6:11), 그리고 제자들에게 먹이셨다(요 21:9-10).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이러한 교리를 가르치지 말라고까지 명령하고 있다(히 13:9). 이로 보아 화잇의 채식교리는 성경의 기준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인데 김목사는 어떻게 변명할 것인다.
안식교는 말로는 성경으로 화잇의 글들을 판단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화잇의 글들로 성경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5) 화잇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는 점에 대하여
김목사는 화잇을 칭찬하는 몇몇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여 화잇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고 주장하였다. 우선 그 말이 두 가지로 모순되고 우스운 일로 보인다.
하나는 성경으로 증명하지 않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진정한 객관은 없다. 오직 하나님과 성경이 객관이다. 화잇을 칭찬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라면 화잇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칭찬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동시에 들어봐야 어느 정도 객관적이지 않겠는가? 이단자 문선명 교주도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모은다면 화잇보다 더 많을 것이며, 그것은 사회주의자 마르크스(Marx)에게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들먹이며 객관이니 어쩌니 하는지 모르겠다.
(6) 그래도 화잇을 선지자로 보는 점에 대하여
김목사는 안식교가 화잇의 선지자성을 인정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화잇을 선지자로 믿는다는 것이다. 특히 김목사는 화잇이 성경의 선지자들보다 사업의 범위가 훨씬 넓고 다양한 선지자라고 주장하였다. 즉 화잇은 선지자로서 성경의 선지자보다 더 크고 많은 일을 하는 선지자라는 것이다. 안식교가 존재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식교의 주장대로 화잇이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면 그의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되어야 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1%도 오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자와 그 계시를 분별하는 시금석은 예언의 성취에 있는 것이다(신 18:22).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화잇을 평가해 볼 때 화잇은 거짓 선지자가 분명하다. 이는 화잇의 빗나간 많은 예언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가 있다는 1856년 안식교 대총회의 예언(MWHC.p.102),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된다는 예언(Spiritual Gifte.p.193, EWP. p.276, EGWHC. p. 337), 미국의 남북전쟁시 아브라함 링컨을 비난하고 그가 패할 것이라고 한 예언(EGWHC. P. 118-124) 등 많은 실패한 예언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김목사는 이런 점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한 마디도 변증하지 못했음을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특히 화잇은 계시 가운데 목성과 토성, 천왕성 등을 보았는데 목성에서 네 개의 달들을 보았다고 했으며, 토성에서 일곱 개의 달들을, 천왕성에서 여섯 개의 달들을 보았고, 토성에서 주민들을 보았는데 키가 크고 위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곱 개의 달을 가진 별에서(토성) 에녹을 보았다고 하였다"A Word to The little Fock p.22, The Great Second Advent Movement. p.260-261)
그런데 최근의 천문학은 목성과 토성이 화잇이 본 것들보다 더 많은 달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표하였다(목성은 12개, 토성은 열 개). 화잇은 당시의 미개한 천문학에서 배운 대로 계시를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화잇의 계시가 거짓 선지자의 사단의 계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김목사는 어떻게 위의 엉터리 계시가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변증을 해주기 바란다.
(7) 화잇의 표절된 글들을 대언의 영이라고 하는 점에 대하여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를 '대언의 영', '예언의 신'이라고 부른다. 즉 화잇이 보통 선지자가 아니라 계시록 12:17과 19:10의 예언된 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 12:17의 남은 자손이 안식교인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안식교인들은 계시록 12:17의 남은 자손의 특징인 하나님의 계명은 안식교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말하며, 예수의 증거는 화잇이 받은 계시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식교의 성경해석과 주장은 아전인수, 비성경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 김목사는 기성교회가 비판하려면 계시록 12:17의 해석을 제시하라고 한다. 김목사의 이러한 주장을 보고, 한 때 안식교인이었던 필자(진용식)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직도 안식교인들은 이 계시록의 해석을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김목사가 이렇게 요구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계시록 12장 17절을 해석해 보자.
1) '남은 자손'은 안식교인을 말하지 않는다.
본문에는 용(사단)이 공격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 있다. 안식교는 이 '남은 자손'을 안식교라고 해석하였다(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p.292-297). 김목사도 역시 그렇게 주장하였다.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말세의 남은 자손, 즉 참 교회는 안식교이며 참 교인이 되려면 안식교인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남은 자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의 남은 자, 남은 자손은 어떤 교파나 단체, 조직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은 유형적인 교회 속에 거듭난 하나님의 참 백성들인 무형적인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어느 시대나 남은 자는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남은 자 사상이 많이 있는데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지 하나님의 참 백성과 참 백성이 아닌 자들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도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남은 자란 교파나 조직이나 교리에 남은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남은 자인 것이다. 이로 보아 안식교가 남은 자손이 아니라, 모든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가지신 백성이 남은 자손인 것이다.
2) '하나님의 계명'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은 자손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고 하였다. 안식교는 이 본문의 하나님의 계명을 십계명으로 해석하고, 특히 안식교가 강조하는 안식일 계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또한 안식교의 성경 해석의 오류이다.
본문의 계명이 십계명이라는 근거는 없다. 계명은 십계명을 말하는 때도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시 19:8, 계 1:2). 본문에서의 '계명'은 십계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은 계시록의 다른 구절에 나타난 표현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본문의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라는 표현을 1장 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고 했고, 1장 9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라고 했으며, 6장 9절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본문의 '계명'은 말씀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남은 자손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다. 즉,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수호하고 말씀을 세우는 사람들인 것이다.
3)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는 화잇이 아니다.
안식교는 본문의 남은 자손의 특징으로 나타난 '예수의 증거'를 화잇이 받은 계시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계시록 19장 10절의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말씀에서 '대언의 영'은 "한 선지자로 말미암아 행사되는 은사"(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p. 328)라고 해석하여 그 한 선지자가 화잇이라는 것이다. 기성교인들이 볼 때 얼마나 억지스러운가? 실제로 안식교인들은 화잇의 책들을 '예언의 신'이라고 부른다. 즉, 남은 자손의 특징인 예수의 증거가 그들의 선지자 화잇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증거'는 무엇인가? 안식교에서 예수의 증거를 화잇의 계시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의 이단성을 드러내는 요소 중에 하나이다.
사도 요한은 같은 책 14장 12절에서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하였다. 즉, '예수의 증거'를 '예수의 믿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화잇의 계시가 '예수의 믿음'이라는 말이다. 결국 안식교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화잇을 믿는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 5:11)고 말하였다. 예수의 증거란 예수를 증거하는 복음을 말하는 것이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 사람은 영생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요 5:39)고 하셨다. 예수의 증거는 절대로 화잇의 계시가 아니고 성경 말씀이요, 말씀의 핵심 내용인 예수를 증거하는 구원의 복음이다. 남은 자손의 특징은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이다. 즉, 예수를 증거하는 복음을 가진 자를 말하는 것이다.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를 예수의 증거라고 주장하나 남은 자손은 사도들에 의한 성경계시를 주장하고 복음을 예수의 증거로 가진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라"(요일 5:9).
예수의 증거인 성경의 복음이 아닌 화잇의 계시를 주장하는 그 자체를 볼 때 안식교는 성경이 말하는 남은 자손 속에 낄 수 없는 것이다.
4) 화잇의 표절된 계시는 결코 '대언의 영'이 될 수 없다.
안식교는 화잇이 받은 계시가 계시록 19장 10절의 대언의 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안식교인들은 화잇의 글들을 '예언의 신(대언의 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김목사는 이러한 안식교의 잘못된 해석을 주장하면서 기성교회의 해석을 제시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대언의 영'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안식교는 이 구절에 어떤 해석을 붙여서 화잇에게 꿰어 맞추어 오류를 범하고 교리를 만든 것이다.
'대언의 영'은 무엇인가? 성경에 있는 대로 '성령'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의 뜻은 대언의 영(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에서는 "...예수를 증거하는 것은 대언의 영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이러한 명백한 말씀을 안식교는 '한 선지자를 말하는 것이며 그 선지자는 화잇'이라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대언의 영은 한 선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도 예수를 증거하는 모든 대언자(복음 전하는 자)들에게 계속 역사하고 계신다.
안식교는 화잇을 선지자라고 주장하지만 화잇은 참 선지자가 아니다. 그의 잘못된 예언들, 그리고 성경에 없는 교리, 표절 문제 등을 볼 때 화잇은 거짓 선지자가 분명하다. 성경은 성경 이후에 다른 선지자에 대한 예언은 없으나 말세에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는 많은 경고를 주고 있다(마 24:11, 딤전 4:1-4 등). 사단은 화잇 같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단을 만들고 많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성도들은 이에 주의해야 한다.
Ⅱ. 안식교의 안식일 개념을 비판한다
안식교인들은 구약의 안식일을 지금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교회는 다른 모든 구약의 계명이나 율법들과 함께 그 의미는 인정하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이유 때문이다.
(1)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이며 그림자로서 신약시대에는 폐하여 졌다
구약에서 아무리 중요한 율법이라도 신약에 와서 폐한 것이라면 그것을 형식적으로 지켜야 할 의미는 없다. 안식일 문제가 그렇다. 구약에서는 중요하게 지켜졌지만 신약에서는 폐한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 준수는 더 이상 강조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성, 속)의 구별이 없어졌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엡 2:11-22). 구약 시대에는 성•속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법이 있었다. 즉, 이스라엘과 이방인, 레위인과 일반인, 거룩한 곳, 부정하고 정한 것, 거룩한 날 등의 규례들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이러한 성•속의 구별이 모두 없어졌다. 구약에 구별했던 규례들이 폐한 지금, 다시 구약의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율법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1)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어졌다(엡 2:11-19).
구약에는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별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외에는 이방인이라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반열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구약의 이러한 법은 엄격하여 이방인과의 교제를 금하고 이방인은 기업을 얻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구별이 폐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5, 18)고 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으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2) 신약 시대에는 레위인과 일반인의 구별이 없어졌다(벧전 2:9)
구약의 제사장은 아무나 할 수 없고 오직 구별된 레위인만이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별은 엄격하여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레위인과 일반 백성이 구별되어 제사장은 언제나 레위인 중에서 아론의 자손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없어지고, 레위인이 아니더라도 거듭난 성도는 누구든지 영적인 제사장이된다는 것이다(벧전 2:5-9). 또한 신약에서는 목사도(롬 15:16) 은사와 소명을 받은 자는 누구나 절차를 따르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이다"(벧전 2:5).
3)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곳, 즉 성전의 개념이 없어졌다(신 12:5, 11, 14, 마 18:20, 고전 3:16, 엡 2:21).
구약에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곳(성전)이 따로 있어서 그곳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드릴 수가 없었다(신 12:13).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고(마 18:20), 어느 곳이든지 성도가 모인 곳이 성전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고전 3:16). 만약 지금도 거룩한 곳의 구별이 있다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다. 또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고 말씀하셨다.
4) 신약 시대에는 부정하고 정한 것에 대한 구별이 없어졌다(겔 36:17, 민 19:9, 레 5:3, 히 9:13, 롬 14:14).
구약에는 부정하고 정한 것의 규례들이 있어서 죽은 시체나 무덤이 부정하고, 경도 하는 여인이 부정하고, 출산한 산모가 부정하고, 짐승이나 물고기 등도 부정하고, 정결한 것이 따로 있었다. 이러한 규례들이 엄격하여 부정한 것은 먹거나 만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부정과 정결의 규례는 다 없어졌다. 만약 지금도 부정과 정결의 규례가 있다면 경도하는 여인은 부정하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하며,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부정하니 정결의 규례를 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고 함으로 성•속의 구별이 없어졌음을 선언했다.
5)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날과 보통 날의 구별이 없어졌다(골2:16, 롬 14:6, 갈 4:10-11).
구약에는 거룩한 날(절기, 월삭, 안식일 등)과 보통 날을 구별했다. 이러한 날 중에 안식일에 대한 구별은 철저했다. 만일 안식일을 범하게 되면 돌로 쳐죽이라는 엄격한 법도 있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이러한 구별이 없어졌다. 거룩히 구별했던 안식일 구별도 다른 성•속의 구별이 폐한 것처럼 이미 폐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14:5)고 함으로써 날에 대한 성•속의 구별 없이 이 날이나 저 날이나 모든 날이 같다고 선언한 것이다.
(2) 구약에서조차 이미 안식일이 폐하게 될 것이 예언되었다
신약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은 구약에 미리 예언되어 있다. 안식일에 대해서도 다른 모든 절기와 함께 폐할 것이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기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명절을 폐하겠고"(호 2:11)라고 분명하게 되어 있다. 이 본문에 폐할 것이 예언된 이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을 말하고 있다. 절기, 월삭을 함께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안식일이 안식교인들의 말처럼 만약 절기 안식일에 대한 것이면 '절기와 월삭'을 함께 쓸 리가 없다.
안식일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대로 신약 시대에 십자가에서 폐한 것이다. 지금도 성•속을 구별하여 안식일을 주장하는 안식교는 아직도 구약 시대의 율법주의 유대교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 실체가 이루어짐으로 모형과 그림자는 폐했다(히 4:1-6, 마 11:28)
참 안식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마 11:28). 참 안식의 그림자에는 안식년이 있었고 안식일이 있었다. 6년만에 1년을 쉬는 안식년이나,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안식일은 모두 다 참 안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인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고 하시고,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심으로 예수께서 참 안식의 실체임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안식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을 완성하심으로, 안식년이나 안식일을 폐하게 된 것이다. 바울도 이점에 대하여 분명히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고 말했다.
(4)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다(마 12:1-8)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셨는가? 그렇지가 않은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자주 공격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신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태도를 잘 알 수가 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1-6).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지적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두 가지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 하나는 다윗이 그 함께 한 자들과 제사장만이 먹게 되어 있는 진설병을 먹어서 규례를 어겼으나 죄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했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는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 안에 있는 제자들이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다윗이 그와 함께 한 자들과 같이 성전에서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먹었던 것처럼, 안식일을 범한 것이다. 또한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범한 것처럼,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신 것이다.
(5) 제사장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마태복음 12장 5절에 보면,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고 함으로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신약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제사장들이기 때문에(벧전 2:9) 안식일 율법에 해당되지 않는다.
(6) 신약 성경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한 구절은 한 곳도 없다
안식일 교회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일이 하나님의 표징이며, 하나님의 인이며, 마지막 기별(세 천사의 기별)이며, 참 교회의 특징이며, 폐하지 않은 계명이라면 왜 신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 한 곳도 없는가? 또 지켰다는 기록도 없는가? 이것은 성경이 보여 주고 있는 바대로 안식일이 폐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8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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