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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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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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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 화잇과 안식일교회
김대성
  지난 호 <교회와 신앙>측 글에 대한 소견
  안식일교회의 구원론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난 호 원고에 이미 설명이 되었으므로 재론할 의사가 없으며, 그 외의 문제로 지적한 부분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을 더하고자 한다.
 
  ① 이단을 규정하는 방식에 대하여 
  장로교 통합측이 총회에서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에 대하여 필자는 안식일교회측과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을 문제로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교회와신앙>측 필자는, "어느 교단에서든지 이단을 규정할 때 이단들을 불러서 물어 봐야 할 아무 의무도 권리도 없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안식일교회도 그런 방식으로 다른 교회를 이단시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교회 자체 내에서는 교리를 달리하는 다른 교파를 이단시하고 어떤 통일된 견해를 정리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공식적인 총회에서 결의를 하거나 그 결의된 사실을 공론화하고자 할 때에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논의되는 내용 중에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말에 세계적인 종교학자 월터 마틴(Walter Martin)이 안식일교회의 이단성 여부를 연구하고자 할 때에 그 연구하려고 하는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질문들을 본 교회 대총회에 보내왔고, 본 교회는 그것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책으로 만들어 보낸 바 있다. 객관성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한 개인도 그러한 방식을 취하는데, 한 교단이 상대방의 교리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없이 표면적인 현상이나 단편적인 연구 결과에 의한 그릇된 정보를 가지고 총회에서 이단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경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② 수(數)에 대한 언급에 대하여 
  필자는 지난 호에서 "만약 한국의 안식일교회 교인수가 1000만 명이 된다면 아무도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형식으로 수에 대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그 이전 문장들을 보면 왜 그러한 논리를 사용했는지 배경이 있지만, 수의 논리를 사용한 이유에 대하여 한 가지 부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한때 장로교 통합측에서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입장을 바꾸어 그 결정이 취소되었다. 처음에는 어떤 이유로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정했는지, 그리고 나중에는 어느 편의 입장이 달라져서 무슨 명분으로 그 결의를 취소했는지 그 과정과 이유를 밝혀주기 바란다.

  ③ 「사도신경」문제에 대하여
   필자는 지난 호에서 이단의 분별 기준으로 자주 사용되는 사도신경의 모순점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교회와신앙>측에서는 그것은 한 개인의 견해이지 이단논쟁의 핵심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물론 그것이 이단 논쟁의 핵심은 아니다. 그러나 사도신경 고백 여부를 이단 판별의 기준으로 제시한 T씨는 한때 한국 기독교계 이단 사이비 문제의 권위자였고 지금도 서점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는 이단 문제 서적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단 문제를 다루는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다르다면, 그리고 T씨의 기준을 한 개인의 견해라고 한다면, 예장 통합측에서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단 판별의 공식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성경 외의 다른 계시는 존재하지 않는가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비평하는 사람들은 '안식일교회는 성경 외에 엘렌 화잇의 계시를 주장하여 화잇을 선지자로 믿고 있으니 이단'이라고 말한다. 성경 이외에 다른 계시나 선지자를 인정하면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구약 요엘 2장 28절과 29절의 말씀을 살펴보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 29).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초기교회 오순절에 내린 성령의 역사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사실과 예언들이 이중으로 적용(예 : 구약에 나타난 수많은 메시야적 예언들, 겔 28장의 두로왕과 천사장 루스벨, 마 24장의 예루살렘 멸망과 예수의 재림 등)되고 있듯이, 이 말씀도 그리스도 교회가 탄생되는 시점인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가 마치는 시점에 있게 될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를 동시에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욜 2:23 참조). 베드로는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욜 2:28-31; 행 2:17)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베드로가 살던 그 당시를 '말세'로 본 것이다.
  그리고 요엘 2장 31절은 성령의 큰 역사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빛 같이 변"할 것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암시하고 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실제로 해와 달의 변화를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로 묘사하고 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29). 
  다시 요엘 2장 23절의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이 이른 비와 늦은 비 성령의 역사를 예언하고 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여기에서 "이른 비"는 파종을 전후하여 내리는 비이고 "늦은 비"는 추수를 전후하여 곡식이 여물어 추수하도록 내리는 비이다. 따라서 주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 또 한 번의 '말세'에도 성령의 큰 역사가 있을 것인데 이것을 "늦은 비"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이외의 계시나 예언의 역사를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태도라고 생각된다.
  고린도전서 12장 8절부터 11절의 말씀을 보면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성경 말씀에 의하면 예언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하나의 은사인 것이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계시와 예언을 관련시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30, 31). 이 문맥을 보면 성경 이외에는 다른 계시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편지서에서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살전 5:19-21)라고 권면하였다.
  물론, 안식일교회가 이러한 보편적인 예언의 은사나 계시를 엘렌 화잇에게 적용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 외의 다른 계시를 젼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비평가들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내용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그러나 계시나 예언을 다룰 때에 그것이 성경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검증하고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이다.
  이러한 논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식일교회는 '방언의 은사'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언의 은사'는 인정하는가?". 안식일교회가 방언의 은사를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안식일교회는 초기교회의 사도들이 외국인들에게 전도할 때에 나타났던 방언의 은사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을 믿고 기대하고 있다. 현재 많은 보수적인 개신교회들도 고린도전서 14장의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엘렌 화잇은 어떤 사람인가
  엘렌 하몬(결혼전 이름)은 1827년 미국 메인주 골햄에서 태어났다. 8명의 형제들이 있었고 전 가족들은 감리교회의 신실한 신자들이었다. 학교를 다니던 중 등교길에 만난 사고(코에 돌맞음)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3년간의 교육을 마지막으로 학업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은 초등학교 3년이 전부였다.

  경건한 신앙을 위해서 항상 열심히 노력하던 엘렌 하몬은, 밀러의 재림 운동의 결과로 파생된 1844년 10월 대실망의 경험이 있은 지 약 2개월 후인 12월 어느 날, 경건한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남포틀랜드의 어느 한 가정에서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 참석자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현저한 임재를 느꼈다. 이때 엘렌에게 계시가 임하였다. 계시를 받는 동안 호흡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울기도 했으나 계시가 끝나면서 호흡은 다시 계속되었다.

  그의 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으며, 1915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성경과 역사와 그리스도인의 생활 등에 관한 2,000여 회의 계시를 받아 교회의 발전과 교인들을 바르게 교육하는 일에 공헌하였다. 그가 저술한 책은 49권이며 5,000개 이상의 기사들을 각종 정기 간행물에 기고하였다. 그의 저술은 종교, 교육, 건강, 사회 문제, 예언, 출판, 영양, 절제, 경영, 가정 문제 등 광범위한 영역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를 다룬 책으로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책 [정로의 계단](Steps to Christ)은 13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억부 이상이 보급되었다. 또한 그의 저서들 중 건강에 관한 개념들과 내용들은 당시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현대 의학과 과학이 발달되면서 그 모든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엘렌 화잇의 영감성과 표절시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배제하고 인간영감설을 받아들인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기자들, 즉 사람을 감동하시고 그들의 사상에 영감을 주시거나 계시를 주신 것이고, 기자는 그것을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배경을 토대로 하여 자기의 필치로 기록했다. 그래서 성경의 각 책들은 그 어휘가 다르며 기자의 교육과 교양을 반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의 글에 대해서도 글자 하나하나에 계시와 영감이 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자신의 언어와 필치로 기록해야 했고, 그의 영감된 사상을 글로 표현할 때 이미 다른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내용들 중에 자신이 기록하고자 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글들이 있으면 그것을 차용해서 쓴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 환경이나 시대적 배경에서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며 위법도 아니었다. 사실상 성경의 기자들도 영감 받은 사상을 기록할 때 이미 기록되어 있는 글들을 차용해서 쓴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 모세 - 자기보다 250여 년 전에 존재한 함무라비 법전(CH)으로부터 여러 가지 개념과 문체를 차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령을 반포하였다.
② 솔로몬 - 잠언은 솔로몬 자신이 다 기록한 것이 아니고 여러 다른 계층의 사람들의 사상을 차용하여 수집한 부분도 많이 있다.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전 12:9, 10). 
③ 이사야 - 이사야 2장 2-4절과 미가서 4장 1-3절의 평화운동 내용에 유사성이 있지만 누가 원저자이고 누가 복사자인가 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이사야 36-39장과 열왕기하 18-20장의 히스기야 시대 사건의 기록 내용도 유사하나 원저작자가 누구인지 문제시하지 않는다. 
④ 역대상, 하는 사무엘상, 하와 열왕기상, 하의 내용과 상당 부분이 같은 내용들이다. 
⑤ 복음서의 기자들 - 마가복음의 95%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누가는 복음서를 계시와 예언적 꿈을 통하여 저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성령의 지도하에 다른 작품들을 연구한 과정을 거쳐 복음서를 저술하였다. ⑥ 유다서와 요한계시록 - 두 책보다 약 150여 년 전에 익명의 저자가 기록한 위경서인 에녹서에 나오는 자료를 사용한 부분이 있다(에녹서 1:9과 유 1:14, 15; 에녹서 40:1과 계 7:9; 에녹서 86:1과 계 9:1; 에녹서 90:26과 계 20:15; 에녹서 91:16과 계 21:1 등 비교).

  성경의 이와 같은 예들을 살펴볼 때에 다른 사람의 글을 차용했다고 해서 영감받은 것이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엘렌 화잇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적 상황으로 보아 다른 사람의 글을 차용한 것이 고의적인 속임수나 오늘날의 용어로 '표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표절'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사상이나 기사 등을 취하여 자기의 것으로 삼는 행위"(웹스터 2판, 1087)로서 한 저술가가 의도적으로, 그리고 명예욕이나 재물 이득욕을 가지고, 다른 저술가의 문학적 자료들을 자신의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위법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적 차용'이라는 것은 타인의 사상 또는 문체를 이용하거나 채택하는 행위로서, 저작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작품이나 단어를 공정하게 사용하였는지, 차용이라는 특수 목적에 부합되게 사용하였는지 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이 문학적 차용은 표절과는 다른 것이다.
  '표절' 시비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제기된 사소한 문제들이 있으나,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는 이미 1951년 리뷰 앤드 헤럴드사에서 발행된 [엘렌 화잇과 그녀에 대한 비평들](Ellen G. White and Her Critics)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세한 설명을 다 해 놓았다. 혹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면 문제를 제시할 때 출처를 확실하게 밝혀 줄 것을 제안한다.
 
  엘렌 화잇의 글들과 성경과의 관계
  엘렌 화잇의 저술들은 결코 성경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글들은 성경과 같은 수준에 놓일 수 없다. 그의 모든 글들은 오직 성경의 기준에 의하여 판단을 받아야 하며 그것에 종속되어야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만이 모든 교리의 기초라는 종교 개혁의 원칙, 즉 "오직 성경만이"(Sola Scriptura)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엘렌 화잇은 본 교회의 주요 교리들이 성립되고 발전해 가는 동안 교회의 창시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교리들은 성경 연구를 통하여 성경에 기초하여 나온 것이며 계시에 기초하여 교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엘렌 화잇 자신도 성경이 교회의 최종적 규범이라고 믿었으며 또 그렇게 가르쳤다. 1851년에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책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추천합니다"(초기 문집, 78).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는 다시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권위 있고 확실한 계시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은 품성의 표준이요 교리의 계시자요 체험의 시금석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서문, ⅶ). 그는 평생동안 이러한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엘렌 화잇 자신이나 안식일교회 교인들은 엘렌 화잇의 글들을 성경처럼 생각하거나 성경과 동등한 권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과 화잇의 저술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보는 것이 본 교회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그의 글들은 ① 사람들을 성경으로 바르게 안내하는 역할을 하며 ② 성경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③ 성경의 원칙을 실 생활에 적용하는 일에 세부적인 가르침을 제공한다.
 
  엘렌 화잇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엘렌 화잇은, 여러 비평가들의 말이나 혹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비평가들의 말만 듣고 선입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남의 책을 표절해 가며 거짓을 예언하거나 헛된 속임수로 사람들을 미혹하거나 교주처럼 행세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평범하고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다. 엘렌 화잇이 살던 당시의 많은 사람들과 그의 저술을 깊이 연구한 사람들이 그의 인격의 진실됨이나 그의 저술의 영감성을 증언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1878년 당시 미국의 한 저술가는 그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화잇 부인은 놀라우리만큼 잘 조화된 지적 구조를 가진 한 여성이다. 그의 관용성, 영성, 양심적 태도 그리고 이상적 면모는 뛰어난 특징이다. 그의 단순하고 성실한 개성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한 우의를 얻게하며 용기를 주었다"(American Biographical History of Eminent and Self-Made Men of The State of Michigan, Third Congressional District, A. P. 108, 1878).
  전 역사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고고학자로 불리우는 윌리엄 F. 올브라이트 박사가 1950년대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던 시절, 그의 지도하에 박사 학위 공부를 하던 앨저 존스라는 학생으로부터 엘렌 화잇의 서적들을 소개받았다. 올브라이트 박사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 화잇 여사의 생애와 사업과 사상들을 직접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주요 저서 중의 하나인 [석기 시대로부터 기독교까지]의 서론에서 최근 250년의 역사 동안에 그가 전정한 '선지자'로 간주한 다섯 명의 사람들 중의 하나로 엘렌 화잇을 거명하였다(cf. William Foxwell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 Monotheism and Historical Process [Baltimore, MD : The Johns Hopkins Press, 1957], 19; Roger W. Coon, A Gift of Light [Hagerstone, MD :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83], 52).
  1960년에 미국 방송 회사(ABC, American Broadcasting Company)의 뉴스 해설자였던 폴 하비는 16문단으로 된 엘렌 화잇 특집 기사를 썼다. 내용은 이러한 것이었다.
"옛날 옛적, 한 백 년 전에 엘렌 화잇이라는 이름의 한 젊은 여성이 살았다. 그는 아이처럼 연약했고 오직 문법학교 밖에 필하지 못했고(사실은 그가 초등학교 3학년도 다 마치지 못했다), 아무런 전문 교육을 받은 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가면서 '건강한 생활'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기사들과 책들을 기록하였다. 그의 시대로 말하자면 의사들이 아직도 손도 씻지 않은 채로 방혈(放血)을 하면서 수술을 하던 시절이었음을 기억하라. 이 때는 아직도 야만의 언저리를 맴도는 정도의 의학적 무지의 시대였다. 하지만 엘렌 화잇은 영양에 관하여 참으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저술했기 때문에, 그가 지시한 많은 원칙들 가운데서 두 가지만 제외한 모든 것들이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입증되었다"(Coon, 53).
  폴 하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화잇 여사가 참으로 옳다는 사실에 관한 여러 가지 실례들을 열거했다. 그 후 9년이 지난 다음에 하비는 미국의 한 신문에 안식일교인들이 심장마비와 호흡기 질병과 암에 걸리는 비율이 낮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이 엘렌 화잇의 시대를 앞서가는 권면과 선지자적 지식의 덕분이라고 하였다.
  컬럼비아 대학교 사범대학의 교육학 교수였던 플로렌스 스트레이트마이어 박사가 한 번은 워싱턴 D.C.의 안식일교회 교사들의 회의에 초청을 받아서 연설을 하였는데, 그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래에 와서 엘렌 화잇이 저술한 [교육]이라는 책이 나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세기가 바뀔 때 기록된 이 책은 그 시대 보다 50년 이상을 앞서가는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학교 교육을 3년밖에 받지 못한 한 여인에 의하여 기록되었음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책의 철학이 가진 넓이와 깊이는 나에게 경탄을 자아냈다. 균형잡힌 교육, 조화있는 발달, 그리고 원칙에 입각한 사고와 행위 등에 대한 개념들은 참으로 앞서가는 교육적 개념들이다. 사람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교육 목표, 부모의 책임을 가르치는 일, 어린 아이에게 자제를 강조하는 것 등은 세상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상들이다"(Coon, 55).
  엘렌 화잇에 대하여 비평을 하려면 그의 사상이나 글들이나 그의 사업들을 좀더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한 후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지극히 피상적인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혹은 그 방대한 저술들 가운데 몇 가지 내용들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비평하면서 거짓 선지자로 매도하는 일은, 미국 어느 한 시골 구석진 공항에 잠깐 내렸다가 돌아와서 미국을 비판하는 일과도 같은 것이어서 결코 올바른 비평이나 정상적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 개신교회의 상당수 목회자들이 엘렌 화잇의 책들을 구입하여 읽고 설교에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언해 둔다.
 
  엘렌 화잇은 선지자인가
  엘렌 화잇은 스스로 자신을 선지자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선지자라고 부를 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선지자라는 직함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청년 시절에 '당신은 선지자입니까'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여호와의 사자(使者, messenger)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직함을 주장해 본 적이 없다. 왜 내가 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이 시대에는 자신을 선지자라고 대담하게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업에 치욕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며, 나의 사업은 '선지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A Messenger", Review and Herald, July, 26, 1906, p.8).
  여기에서 화잇이 자신의 사업이 "선지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성경의 선지자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죄를 지적하고 깨우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던 일반적인 개념의 선지자들이 하는 일보다는 그 사업의 범위가 훨씬 넓고 다양함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상 엘렌 화잇의 활동 범위는 이미 언급된 대로 종교, 교육, 의료, 건강, 출판, 가정, 경영, 사회, 영양 등 인간의 삶과 관계된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하고 있어서, 종래의 선지자들이 하던 활동 내용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된 말씀에 기초하여 엘렌 화잇의 선지자성을 인정한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용(사단)의 최후 공격 대상이 될 여자(교회)의 남은 자손, 그들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고수하는 자들은 분명히 사단의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안식일교회는 하나님의 계명 속에 명시된 안식일을 포함하여 그의 계명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또 하나의 특징으로 주어진 "예수의 증거"는 과연 무엇인가? 계시록 19장 10절을 보면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Spirit of Prophecy)"이라고 하였다. '대언의 영'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예언(Prophecy)의 신(神, Spirit)" 혹은 "예언(Prophecy)의 정신(Spirit)"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마지막 시대에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반드시 예언적 안목이 있어야 한다. "확실한 예언"은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벧후 1:19)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예언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은 세상 역사나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관심이기도 한 것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남달리 안식일을 포함한 하나님의 계명을 강조하며 예언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용(사단)의 마지막 공격을 받게 될 여자의 남은 자손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졌다고 하는 계시록 12장 17절에 나오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가 보다 넓고 깊은 예언적 안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엘렌 화잇의 저술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믿는다. 그래서 엘렌 화잇을 통해 주어진 저술들을 계시록 12장 17절에 기록된 "예수의 증거"(예수에 대한 증거, 예수께서 주신 증거)로 보며, 이것을 예언의 선물(혹은 예언의 신)이라고 한다. 본 교회에 있어서 엘렌 화잇과 그의 저술들은 구원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교회론과 관련된 것이다.
  <교회와신앙>측에서 혹시 이 부분에 대하여 비평할 의사가 있으면, 비평과 함께 장로교회에서 해석하는 계시록 12장 17절의 의미를 반드시 제시하여 줄 것을 당부한다. 대안이 없는 비평은 비평을 위한 비평에 불과한 것이다.
 
  결론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기초는 성경이다. 그리고 성경의 약 25%는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회에 있어서 예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 증인들이 나타나서 예언의 말씀을 오용한 결과 누적된 문제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계나 일반인들이 '예언'이라는 말 자체에 대하여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갖게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현대인들이 점성술사나 자칭 예언가나 점보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세상의 장래나 자신의 미래를 묻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회는 '예언'을 무시하거나 덮어 둘 것이 아니라 '예언'을 펼쳐서 불안한 세상의 장래일을 올바르게 조명하여 사람들에게 제시할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다음의 말씀을 주의하여 볼 것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 22:7).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 
  요한계시록이라는 책 이름(아포칼룹시스) 자체가 "덮여져 있던 것을 벗겨낸다"는 뜻이다. 기독교회가 이렇게 예언서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계속 덮어두고 있거나 올바른 해석을 제시하지 못하면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다. 지난 1992년 휴거 파동이 전국을 휘몰아칠 때에 기독교계가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것은 예언에 대한 확실한 안목이 결여된 결과였다. 그때에 안식일교회에서는 휴거의 잘못된 점들을 낱낱이 지적하여 전국 10대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게재한 바 있다. 특별히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에 처한 기독교회는 예언에 대하여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면밀하게 연구하여 시대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진리를 찾고자 하는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할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이다.


7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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