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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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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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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3(96년 10월호)
--엘렌지 화잇과 안식일교회--
  안식교의 창시자 엘렌 지 화잇은 거짓 선지자이다
             공동집필/ 최삼경•진용식
 
 
  전호의 안식교측 김대성 목사의 글에 대한 변증
  1. 들어가는 말
  이번에 <교회와신앙>에서 안식교 측과 지상토론을 가지게 된 것은 한 쪽의 견해만을 듣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고 있는 개신교 성도들에게도, 반대로 개신교를 바벨론적이라고 보고 있는 안식교인들에게도 어떤 것이 진리인지 알게 하자는데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신교인들이 보고 있는 본 <교회와신앙>에만 이 논쟁의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평형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안식교인들이 많이 보고 있는 월간 <교회지남>에도 함께 발표될 수 있기를 기대했고 또한 요구했다. 그렇게 할 때 제삼자에게 공정한 논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안식교인들이 안식교가 참 진리 교회라고 믿고 있는 주관적인 진심에도 부합될 것이며, 나아가 진리는 옳은 편에서 승리한다는 확신에도 부합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안식교 측은 <교회지남>에 이 논쟁 내용을 게재하지 않고, 단지 이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만을 알리는 작은 광고을 <교회지남>에 내보내는 쪽을 택했다. 이는 안식교인들이 이 글을 읽으면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볼까 염려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비록 <교회지남>에 광고를 하는 방법도 차선으로 가능하다고 합의하고 논쟁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필자(진용식) 편에서는 많은 안식교인들이 이 논쟁을 지켜보기를 바라는 아쉬운 마음이 있어, 어떠한 방법으로든 실질적으로 많은 안식교인들이 이 논쟁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안식교 측에 다시금 요구해 본다.
 
  2. 1888년에 안식교의 구원론이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벗어나는 대전환을 이루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안식교 측의 김 목사는 주장하기를, 원래는 안식교가 율법주의적인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믿음을 강조하는 구원론으로 대전환되었다고 하였다. 김 목사는 적어도 안식교가 과거에는 율법주의였음을 시인한 것이다. 즉 과거의 안식교의 구원론은 율법주의였으나 1888년 이후의 구원론은 믿음에 의한 구원론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는 율법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낳게 되고, 따라서 많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첫째, 김 목사의 말이 맞다면 1888년 이전의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은 어디에서 왔는지 밝혀야 한다.
  필자가 볼 때 1888년 전에는 율법주의적이었으나 그후로 율법주의를 벗어났다는 김 목사의 말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일단 1888년 전에는 자신들이 율법주의였음을 시인한 점만 가지고 생각해 보자. 화잇을 중심해서 성경연구 대회를 만들었던 1848년을 안식교의 창시로 본다면, 약 40여 년간 안식교는 율법주의 속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누구의 가르침과 주장에 의하여 40여 년간 율법주의 속에 있었다는 말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화잇의 주장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도 화잇은 안식교의 선지자로 군림하고 있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김 목사는 그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은 화잇에게서 오지 않았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화잇을 율법주의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화잇을 율법주의자로 만들고 화잇을 버릴 것인가? 답을 기다려 본다.
  둘째, 김 목사의 말이 맞으려면 과거의 잘못된 가르침을 확실히 공개하고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김 목사는 주장하기를,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구원론이다. 이 구원론이 잘못되어 있으면 다른 교리가 아무리 성서적이라도 그것은 이미 기독교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고 하였다. 김 목사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중요한 안식교의 구원론이 1888년 이전에는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김 목사는 표현하기를 약간의 수정이 아니라 '대전환'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그간에 잘못 가르쳐 왔던 구원론이 무엇이었는가를 공적으로 선언했어야 했고, 과거의 안식교가 이단적인 구원관인 율법주의적인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한 회개가 있어야 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안식교는 이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나 회개가 없었다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회개는 김 목사와 한국의 전 안식교인들은 물론 전 세계의 안식교인들이 다 회개해야 할 일일 것이다.
  더욱이 필자는 두 가지가 의심스럽다. 첫째는 시작이 잘못된 안식교가 오늘날 어떻게 바른 교리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율법주의적인 구원관, 즉 이단적인 구원관에서 어떻게 바른 구원관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 둘째는 그렇다면 안식교의 창시자요 선지자는 화잇이 아니라, 바로 화잇의 구원관을 뒤엎고 바른 구원관을 세운 와그너와 죤스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셋째, 김 목사의 말이 맞으려면 화잇의 계시인 예언의 신이 거짓 계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안식교에는 자타가 부정할 수 없이 소위 예언의 신(계시)을 받은 선지자 화잇이 있다. 안식교의 거의 모든 교리가 화잇의 계시의 인도를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교리들은 조사심판, 2300주야 해석, 그리고 음식문제 등이다. 화잇의 계시는 교리뿐 아니라 안식일 시간, 교회운영, 심지어 옷차림에까지 관계된다.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인 예언의 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고 보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성서기초교리, pp. 327-328). 그렇게 볼 때 김 목사의 말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화잇의 계시인 예언의 신이 1888년까지 안식교를 잘못 인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약간의 수정을 하는 정도가 아니고 대전환을 해야 할 정도였다니(필자는 대전환이란 말을 김대성 목사에게서 처음 듣는다) 화잇의 계시는 어디서 온 것이었다는 말인가?
 
  3. 현재 가르치는 교리를 가지고 비판하라는 말에 대하여 
  김 목사는 안식교의 교리가 과거의 것과는 많이 다르게 수정되었고 앞으로도 수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 가르치고 있는 교리를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 목사의 주장처럼 사람들의 주장이나 교리는 수정되고 발전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변할 수 없으며 하나님도 변하시지 않는 분이시다. 특히 그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도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수정될 수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계시인 성경 말씀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 때문에 절대로 수정될 수 없음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는 다른 교파의 창시자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화잇이 있다. 그리고 그 계시를 예언의 신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 계시들에 의하여 안식교의 교리들이 세워진 것이다. 안식교인들은 화잇이 받은 계시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라고 믿고 있는데, 이는 화잇의 계시에 의한 교리들은 계시처럼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화잇이 받은 계시가 수정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 화잇의 계시성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화잇 자체를 포기해야 가능할 터인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장로교는 칼빈의 교리를 수정할 수 있다. 칼빈의 주장을 계시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오늘날 칼빈의 구원관을 폐기하고 수정해야 한다면 마땅히 칼빈도 함께 폐기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4. 안식교가 율법주의로 보이는 것은
          성화를 강조했기 때문이란 말에 대하여
  김 목사는 주장하기를, 안식교의 구원교리를 비판할 때 안식교에서 성화를 강조하는 부분의 인용문들만을 사용하여 안식교를 율법주의로 비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즉 안식교에서도 칭의를 강조하는 부분에는 전혀 율법주의적 요소가 없다는 말이요, 단지 성화의 문제를 칭의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러한 주장을 하면서 성경이나 장로교회의 웨스트 민스터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성화와 계명을 강조하는 부분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과연 그러한가?
  필자나 기성교회가 율법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성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은 분명히 성경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안식교의 구원교리를 율법주의로 비판하는 것은 안식교의 칭의 교리와 구원론 자체가 율법주의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안식교가 말하는 칭의라는 용어는 개신교와 같으나 그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칭의는, 안식교의 주장처럼 율법에 대한 완벽한 순종과 전혀 상관없이,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값없이 입혀주시는 그리스도의 공로이다. 그러나 안식교 선지자 화잇이 주장하는 칭의는 어떤가? 다시 한번 화잇의 글을 인용해 보자. 이는 성화에 관한 부분의 인용문이 아니고 칭의에 대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화잇은 혼인 예복의 비유를 칭의로 소개하면서 말하기를,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때에 우리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의 뜻안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의 생각은 그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드디어 우리는 그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곧 그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그는 무화과 잎사귀의 옷이나 죄로 인하여 헐벗고 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의 완전한 순종을 의미하는 당신이 친히 주신 의의 두루마기를 보시게 된다."(엘렌 지 화잇, 시조사, 실물교훈, p. 324)라고 하였다. 
  이러한 화잇의 칭의는 개신교의 구원론으로 말하면 성화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식교의 화잇이 가르치는 구원과 칭의는 행위, 행실, 율법의 순종이 칭의에 조건이 되고,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행실이 칭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화잇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의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은 저희의 행실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품성은 우리가 행한 것으로 나타나고야 말 것이다"(위의 책, p. 325)라고 하였다. 화잇의 이러한 주장은 성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칭의 자체를 인간의 행실로, 율법의 완전한 순종으로 보는 율법주의적인 주장에서 나온 말이다.
  독자들이 주의깊게 살펴보면 알겠지만, 필자가 인용했던 화잇의 글들은 성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두 구원과 칭의에 관계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안식교의 율법주의적인 주장은 칭의의 문제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화 문제도 그러하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개신교의 성화는 구원받은 자의 삶에서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화의 결과는 구원받은 자의 상급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성화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교의 성화는 기성교회의 것과 다르다. 용어는 같으나 그 의미는 전혀 다른 율법주의적인 것이다. 안식교에서는 구원의 조건으로서 성화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잇은 말하기를, "우리의 품성 가운데 점이나 흠이 있는 한 우리 중 아무라도 하나님의 인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엘렌지 화잇, 교회에 보내는 권면 2권, p. 596)고 하였다. 즉 완벽한 성화만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 조건이라는 말이다.
  또 화잇은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때에 그는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시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p. 61)고 하였다. 이 말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이 완전히 재현된다는 말은 완전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완전히 성화된 품성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신다는 말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성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에서 이런 결론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김 목사는 분명히 구원은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했고, 안식교가 전에는 율법주의적이었음을 인정했으며, 나아가 화잇의 일련의 주장들은 구원 문제가 아니라 성화 문제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화잇의 주장들이 성화를 위한 문제인가, 구원 즉 칭의 문제인가 하는 점을 밝히는 일만 남게 되었으며, 만일 화잇의 주장 중에 칭의 문제를 율법주의적으로 주장했다면 김 목사의 입장에서도 화잇은 율법주의적인 이단임에 틀림이 없게 되었다. 김 목사는 다음 호에 필자가 제시한 화잇의 말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기 바라며, 그에 따라 더 깊은 변증을 계속하겠다.
 
  5.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을 인용하는 점에 대하여
  김 목사는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함에 대한 말씀을 인용하면서(약 2:17, 24, 26), 믿음을 강조한 구절들과 행함을 강조한 구절들이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안식교도 그렇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야고보서의 말씀이 율법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율법주의적인 가르침이 아닌 것처럼, 율법주의적으로 보이는 안식교의 가르침도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한 김 목사의 말과는 반대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많은 안식교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변호하는데 이 야고보서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야고보가 강조한 행함을 율법의 행위로 보기 때문에, 자신들의 율법의 행위를 강조할 때마다 야고보서의 행함에 대한 구절들(약 2:20-26)을 인용하여 변증하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일례로 안식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고인이 된 우필원 씨는 그의 책 '진리의 샘' 108-109쪽에서 야고보서 2:20-26의 말씀을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받는 증거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행함은 율법을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믿음에 나타나는 행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믿음의 행함과 안식교인들이 강조하는 율법의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율법의 행위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며, 믿음의 행함이란 율법의 행위에 관계된 것이 아닌 믿음에 따라 나타나는 행함인 것이다. 예컨대 비가 올 줄을 믿었기에 우산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우산을 준비하는 일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다. 비가 올 것에 대한 믿음에 따른 행함인 것이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라합의 경우를 살펴보자(약 2:25). 라합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했는데, 라합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단 말인가? 그녀가 안식일을 지켰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라합은 창녀였고 자기 민족을 속이고 적국의 첩자를 숨겨준 사람으로서, 율법의 행위로 보면 오히려 정죄받아야 할 사람인 것이다. 라합이 인정받은 행함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다(약 2:21).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한 약속의 성취를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죽여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음으로(히 10:17-19) 이삭을 드렸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21-22)고 하였다. 이는 율법의 행위나 율법의 순종의 행위가 아니고, 믿음에 의한 행함인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고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율법의 행위를 보시고 의롭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 행함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야고보서의 행함에 대한 강조는, 결코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말씀이 아니고, 믿음에 의한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식교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전히 안식교는 율법주의이다. 소위 예언의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화잇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바뀌거나 수정된 일이 없으며, 안식교는 여전히 율법주의적인 계시들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안식교의 율법주의적인 교리는, 안식교가 화잇의 계시를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수정될 수 없기 때문에 화잇을 버리기 전까지는 율법주의인 것이다.
 
  화잇은 거짓 선지자이다
  1. 화잇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한다
  화잇의 문제는 본 논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안식교가 바른 기성교회로부터 정직하게 이단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를 원한다면 화잇를 거짓 선지자로 인정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게 하면 안식교는 안식교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교회에서 화잇을 거짓 선지자로 비판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의 계시관이다. 개신교의 계시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무결한 계시로서 성경만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또 성경만으로 충분히 구원받고 믿음의 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단들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안식교 역시 이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엘렌 지 화잇을 예언의 신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말세의 마지막 선지자로 믿고 있고, 그의 글들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예언의 신의 증언'이라 하여 제2의 성경과 같이 믿고, 성경의 해석, 교회정치, 예언해석 등 모든 교리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안식교의 '성서기초교리'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 교회라 주장하는 교회는 그 속에 예언의 선물이 나타나야만 한다고 우리는 믿는 바이다. 우리는 화잇 부인이 그 예언의 선물을 가졌으며 그의 저서들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한 계시와 더불어 교회를 이끌어 성서에로 돌아가게 하지만 … 예언의 신이 주신 지시들을 쫓아야 한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들을 사랑하고 순종하여야 한다"(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p. 335)라고 하였다. 즉 화잇이 참 교회의 특징인 예언의 신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화잇의 계시들에 의하여 교리, 교회정치 등 모든 문제를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교는 말하기를, "출애굽 운동을 첫 번째 지도하실 때 그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실 수단으로 여호와께서 그 속에 예언의 신을 허락하셨다. 그가 두 번째 그 손을 펴사 열 국에서 남은 백성을 이끌어 내시는 재림운동을 지도하실 때 그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실 수단으로 예언의 신의 동일한 선물을 주시리라고 기대할 것이다. 남은 교회에 관한 예언은 바로 이 일을 요청한다"(위의 책, p. 327)고 하였다. 즉 모세가 계시를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듯이 예언의 신의 계시가 말세의 남은 백성인 안식교를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교는 주장하기를, "예수의 증거를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전 시대에 그 백성을 인도하고 보존하신 예언의 신의 은사를 가진다는 뜻이다"(위의 책, p. 328)고 하였다. 즉 안식교는 예언의 신의 은사를 받은 화잇의 계시에 전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성경 외에 다른 계시의 인도를 받고 있는 안식교를 어찌 이단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2. 안식교의 변증을 예상하여
  이렇게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 안식교를 비판하면 안식교는 다음과 같이 변증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래서 미리 안식교의 변증을 다음과 같이 예상해 본다.
  첫째,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인 예언의 은사를 왜 부인하느냐?
  둘째, 화잇의 계시들이 성경적이며 경건한 유익을 주는 것들이다.
  셋째, 화잇의 업적들이 그의 계시성을 증거한다.

  이러한 변증을 예상하여 미리 비판을 해보겠다.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에 대하여 비판할 때마다 여러 가지의 은사 중에 화잇의 계시는 하나인 예언의 은사일 뿐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렇다면 안식교가 화잇의 계시를 고전 12장의 여러 가지 은사중 하나의 수준으로 인정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를 예언의 신이라고 하여 참 교회의 특징으로 주장하고 있다. 
  안식교는 주장하기를, "참 교회라 주장하는 교회는 그 속에 예언의 선물이 나타나야만 한다고 우리는 믿는 바이다. 우리는 화잇 부인이 그 예언의 선물을 가졌으며"(위의 책, p. 335)라고 하였다. 참 교회, 남은 무리의 특징은 계시록 12장 17절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라고 했는데, 그 예수의 증거가 곧 대언의 영(예언의 신)이며(계 19:10), 그 대언의 영을 화잇이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잇의 계시는 남은 무리, 참 교회의 특징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교는 예언의 신의 계시가 여러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로 보지 않고 화잇 한 사람에게 임한 계시로 보는 것이다. 
  안식교의 '성서기초교리'에는 "이 목적을 위하여 주께서는 당신의 대리자를 택하셨는데 이들은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대롱거리는 연약한 자 중 가장 연약한 자였다. 그 시기가 지난지 두 달이 못되어 메인 주, 포클 랜드에 사는 당년 17세의 엘렌 지 하몬양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이르렀다"(위의 책, p. 330)고 하였다. 이처럼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를 남은 교회의 특징으로 하나님의 특별히 주신 계시로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안식교는 방언의 은사, 특히 하나님께 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은사(고전 14:2)나 통역, 영분별의 은사 등을 인정하고 활용하지 않으면서도 안식교가 화잇의 계시만을 예언의 은사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안식교는 또 화잇의 계시들이 성경적이며 경건한 유익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변증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만으로도 완전무결한 계시가 분명한데 왜 하나님께서 또 다른 계시를 주셔야 한다는 것인가? 화잇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받아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교훈들을 가르치고 있다.
 
  화잇은 성경에 용어조차도 없는 조사심판 교리, 성경이 가르치고 있지 않는 채식교리, 비성경적인 시한부 종말론 교리 등의 계시를 받아 안식교를 만든 것이다.
 
  안식교의 주장대로 화잇의 계시가 하나님의 계시라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조사심판교리나 채식교리 등 미흡한 부분이 있어 화잇에게 새로운 계시를 주셨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결국 성경은 완전하지 못한 계시가 되고 결함이 있는 계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 외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화잇의 계시는 결코 예언의 은사가 아니고 비성경적인 사단의 계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식교는 화잇이 참 선지자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의 예언의 성취(렘 28:9)를 들어서 변증한다. 그래서 필자는 화잇의 빗나간 수많은 예언들을 소개함으로 그의 사단성을 입증하고 싶다.

  화잇은 1856년에 안식교 총회에서 계시를 보았는데 그 총회에 출석한 자들 중에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40년이 지난 지금 그 총회에 출석한 자들은 다 죽었다. 그래서 그 예언은 빗나가고 말았다. 또 재림 때까지 노예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도 빗나갔으며, 미국의 남북전쟁시 링컨을 비난하고 이 전쟁에서 링컨이 패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빗나갔다. 그외에도 많은 예언을 했으나 거의 빗나간 것들이었다(참조: 최반석 저, 화잇 부인의 거짓 예언들).
  이처럼 화잇의 예언들이 빗나간 것들을 볼 때 화잇은 거짓 선지자가 분명하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기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신 18:21-22)고 하셨다.

  어떤 예언은 맞고 어떤 예언은 틀렸을 때 분명히 그 계시는 사단의 계시라고 보아야 맞다. 성경의 말씀대로 적그리스도의 영으로도 기적과 이사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화잇의 빗나간 예언들은 그의 사단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믿는다.

  다음으로 안식교는 화잇의 업적을 들어서 그녀가 참 선지자라고 변증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안식교는 주장하기를, "17세의 연약한 몸으로 재림운동에 참여하여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된 이 여성의 펜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 권의 책들만큼 높은 영적 수준에 있는 책들을 쓴 일이 없다. 그 저서들 자체가 증거한다"(위의 책, p. 336)고 하였다. 즉 화잇이 쓴 많은 저서들(약 46권)을 볼 때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참 선지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잇은 그가 받은 계시를 기록하여 많은 서적을 저술했는데, 사실은 그 저서들의 내용중 80%가 표절된 것이었음을 폭로하는 기사가 미국 뉴스위크지(1981년 1월 19일 발행)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안식교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표절된 글들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있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또 안식교는 화잇이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참 선지자라고 변증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참 선지자라고 할 수 없다. 많은 이단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인정하고도 다른 교리에서 이단성을 드러내어 이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3. 화잇은 성경에 예언된 거짓 선지자가 아니면 무엇인가?
  성경은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에 대하여 예언하고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 화잇은 성경에 예언된 거짓 선지자가 아닌지 예언된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거짓 교사와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딤전 4:1-5).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3:9).

  이 본문들에 의하면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들의 다른 교훈의 특징 중 하나는 음식을 금하는 것이다. 이 예언대로 안식교의 화잇도 음식물에 대한 계시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음식물에 관한 그의 계시를 기록한 저서들로 '가정과 건강', '음식물에 관한 권면' 등이 있다. 이 책들에 기록된 화잇의 계시들은 육식을 강력하게 금하고 채식을 강조하는 것들이다.

  화잇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이 육식에 대항하여 굳게 서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내게 제시되었다. 하나님께서 만일 당신의 백성이 이 기별에 유의하기를 원하시지 아니 하신다면 저들이 깨끗한 피와 명석한 정신을 갖기 원할진대 육식의 사용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기별을 30년동안이나 그들에게 전하셨겠는가? 육식을 함으로써 동물적 성질이 강화되고 영성은 약화된다"(엘렌 지 화잇, 시조사, 교회에 보내는 권면 2권, p. 412)라고 하였다. 이렇게 화잇은 육식을 금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고 30년 동안이나 그 교리를 전했다고 하였다. 채식교리는 성경에 없는 것이며, 주님께서도 육식을 하셨고(눅 24:42-43), 백성들에게도 친히 나누어 주셔서 먹게 하셨던 육식을(요 6:11) 금하고 채식을 주장하는 화잇이 성경에 예언된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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