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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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신앙>측
안식교의 구원론은 율법주의 구원론이다
-공동집필/ 최삼경•진용식-
I. 지난호 김대성 목사의 글에 대한 반증
본지 전호(1996년 7월호)에 김대성 목사의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이라는 글에 의하면, 안식교는 자신들이 성경적인 교회이며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안식교를 이단으로 규정한 한국교회의 시각은 안식교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며 일방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즉 안식교는 성경적인 면에서 비판할 수 있는 절대적 이단이 아니라, 교단간에 신조의 차이나 안식교를 잘못 인식하여 내려진 판단에 의한 상대적인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안식교 측의 주장에 대하여 다음의 몇 가지를 먼저 반증 및 비판하려고 한다.
1) 1995년 9월 25일에 통합측 교단이
안식교의 이단성을 밝힌 점에 대하여
김 목사는 '한국교회 이단 규정, 과연 정당한가?'라는 소제목 하에서, 1995년 예장 통합측 총회에서 안식교를 이단으로 결의한 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들을 불러서 물어 보지 않고 이러한 결의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이러한 이의를 제기한 것 같다. 예장 통합측에서 1995년 9월 25일 총회시, 안식교의 이단성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그 동안 안식교가 이단인지 모르고 있다가 그제야 이단임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미 통합과 합동이 갈라지기 전에 안식교를 이단으로 결정했던 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내용성 있게 밝힌 것으로 안식교의 이단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김 목사는 안식교를 이단으로 결의할 때 왜 당사자인 자신들을 불러서 물어 보지 않았느냐고 했는데, 이는 맞지 않는 말이다. 어느 교단에서든지 이단을 규정할 때 이단들을 불러서 물어 봐야 할 아무 의무도 권리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자가당착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안식교도 기성교회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를 이단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언제 그들을 불러서 물어 보고 이단이라고 했는가? 그리고 가톨릭이나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언제 안식교가 기성교회나 가톨릭 관계자들을 불러서 물어 보고 했는가? 이는 대부분의 이단들이 하는 공통적인 소리로서 스스로 모순됨을 증명하는 꼴이다.
사실은 교리적인 면에서나 윤리적인 면에서나 기성교회가 안식교를 비판하는 강도보다, 안식교가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강도가 더 크고 잔악했음을 김 목사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2)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이라는 말에 대하여
김 목사는 상대적 이단이 있고 절대적 이단이 있다고 하였다. 상대적 이단은 어떤 교파가 자신들의 신조를 기준으로 하여 자신들과 다른 교파를 이단으로 정한 경우를 말하고, 절대적 이단이란 성경적으로 분별하여 규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김 목사의 말에 필자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김 목사의 말은 안식교가 성경적인 이단이 아니라 ,교리적인 이단이 된 것처럼 하여, 자신들의 이단논쟁을 피해가는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김 목사는 다음과 같은 모순을 낳고 있다.
첫째, 누가 성경적으로 이단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성경에 대하여 해석적인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과 모든 신학자와 모든 교파가 다 마찬가지다. 모든 교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교리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다. 바로 자신이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는 그것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한 것을 교리라고 본다. 그러나 분명히 대칭되는 두 가지 사상이 있을 때 어느 하나가 성경적이라면 다른 하나는 반대로 성경적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객관적으로 어느 교리가 성경적이요, 어느 것이 비성경적인지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로가 성경적으로 옳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런 수평적인 논리로 속일 수 있는 것은 어린아이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이 말 속에는 기성교회 교리의 입장에서 보면 안식교는 이단이요, 반대로 안식교의 입장에서 보면 기성교회가 이단이라는 말일 것이다.
필자는 전호에서도 말했지만 안식교인들이 이단이 아니라는 주장은 자신들이 성경적이고 기성교회는 비성경적이라서 이단이 아니라는 말인지, 아니면 기성교회 편에서 보아도 안식교는 이단일 수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안식교 편에서 볼 때 기성교회가 이단이라는 말인지, 심지어 단지 어떻게든 이단논쟁을 피해감으로 효과적으로 기성 교인들을 안식교로 끌어가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김대성 목사의 말에 의하면 기성교회 교리에 의하면 안식교는 이단일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반대로 안식교의 입장에서는 기성교회가 이단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본 이단논쟁의 초점은 선명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김 목사는 다음 호에 이 점을 수단적인 진실이 아닌 목적론적인 진실 속에서 선명하게 밝혀 주기 바란다.
우선 본호에서는 순서에 따라 안식교가 성경적으로 이단이라는 점을 기성교회의 보편적인 교리를 기준으로 밝히도록 하겠다.
3) 이단의 정의에 대하여
김 목사는 안식교 이단 규정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단의 정의에 대한 기준이나, 이단이라는 용어의 오용에 대하여 말하였다. 김 목사의 주장에 대하여 몇 가지를 비판하겠다.
첫째, 이단의 분별 기준에 대하여
김 목사는 T씨가 이단 분별 기준으로 말했던 사도신경의 문제를 비판하였다. 물론 이 사도신경 문제로 이단을 구별하려는 것은 기성교회의 하나의 기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단논쟁의 핵심은 아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그의 본명도 밝히지 못한 채, 한 개인의 말을 인용해 놓고 비판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첫째, 이름을 T씨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 둘째, 그것은 한 개인의 견해로서 그 사람에 대하여 비판할 문제인데, 이 논쟁에서 개신교가 안식교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모든 기준인양 호도하는 것은 소나무 숲에서 전나무 한두 그루 보고 그 숲을 전나무 숲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는 것은 사도신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안식교가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 문제는 더 깊은 논쟁을 요하나 지면상 생략하겠다.
둘째, 진리는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에 대하여
김 목사는 진리는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김 목사의 말에 대하여 필자도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다수이기 때문에 진리가 되고 소수이기 때문에 이단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김 목사는 안식교가 기성교회에 비하여 숫자가 열세이기 때문에 이단이 된 것처럼 말하였다. 김 목사는 말하기를, "한국의 안식일 교회 교인 수가 1,000만 명이 된다면 아무도 안식일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동시에 김 목사는 세계에 900만 명에 이르는 신자를 가지고 있는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였다. 우선 이단의 문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옳은 말을 하면서, 반면에 안식교의 숫자가 900만명이니 어쩌니 말하는 것은 네모난 삼각형 같은 모순된 소리다. 또한 안식교의 숫자가 적어서 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으로 했다면, 안식교는 이단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숫자만 늘리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한국에서 안식교보다 적은 수의 교인을 가진 교단들이 많은데 그들이 그 이유로 이단 비판을 받고 있는가? 또는 안식교보다 더 많은 교인 수를 가지고 있는 교파인데 이단 비판을 받고 있는 경우는 없는가? 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안식교의 수의 열세 때문이 아니라, 비성경적인 교리 때문인 것이다.
셋째, 이단이라는 말의 출발과
이단이란 말을 오용하고 있다는 말에 대하여
김 목사는 예수님이나 바울이 그 당시 이단시되었던 내용을 가지고 이단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의미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김 목사의 주장은 대부분의 이단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식교가 이단시하는 통일교와 천주교측에서 같은 형식의 말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리고 이단이란 말이 사도행전 24장에서는 유대교가 기독교를 이단이라고 함으로 그릇되게 사용되었지만, 성경에는 이단이란 말을 올바로 사용한 경우가 더 많은데도 김 목사는 왜 그 말은 하지 않고 바로 역사적인 문제로 비약하였는가? 성경에 보면 갈라디아 5:20에도, 디도서 3:10에도, 베드로후서 2:1에서도 이단이란 말을 적그리스도에게 사용하였다. 그런데도 김 목사가 성경에서 이단이란 말의 부정적인 사용만을 말하는 것은 위의 성구를 몰라서가 아니라 기성교회의 안식교에 대한 이단 결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려는 잘못된 목적에서 나온 고의적인 실수같이 보인다.
이단이란 말을 사용하고 이단을 규정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충분히 옳은 것이요, 비록 교회사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사용된 경우가 있지만 이는 교회사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이 정의된 용어인 것이다. 법을 나쁘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법이란 말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넷째, 이단논쟁은 구원론과 기독론에 제한된다는 말에 대하여
이단논쟁의 핵심을 구원론으로 본 것은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김 목사가 이단논쟁을 기독론에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기독론으로만 제한하여 이단논쟁을 피하려는 꾀같이 보인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단논쟁이 기독론에서 가장 많았지만, 그 이유는 바로 구원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이나 교회론이나 계시론이나 다른 교리에서도 이단논쟁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4) 안식교와 성경
김 목사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에 미혹되어 재림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시 성경을 연구하여 당시의 여러 교파 교리들 중 좋은 점들을 편집 정리하여 안식교를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안식교는 자신들이 가진 교리가 비성서적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언제든지 바꿀 수도 있으며 새로운 성서적 교리가 있으면 받아 드릴 수 있다고 그럴듯하게 말하였다. 이러한 김 목사의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 있다.
첫째, 안식교의 교리가 여러 교파의 교리들을 편집해서 다른 개신교회들과 유사성이 있다고 해도 이단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안식교가 여러 교파로부터 어떤 교리들은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이단적인 교리들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들을 살펴 보면 자신들이 일으켰던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점, '오직 성경' 대신 성경 외에 다른 계시인 화잇의 계시를 '대언의 영'이라고 주장하는 점, 성경의 근거 없는 '조사 심판'을 창작하여 주장하는 점, 오직 믿음 대신 율법주의 구원 교리를 주장하는 점 등이다. 이러한 안식교가 다른 개신교회들과 약간의 유사성이 있는 교리가 있다 하여, 이단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둘째, 문제는 김 목사의 말처럼 성경이다.
김 목사는 안식교의 질문에 대한 빌리그래함 복음협회의 답변을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조류는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변증하였다.
그러나 이 말도 자신이 주장한 '진리는 숫자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는다'는 말과 모순된다. 왜냐하면 누가 말했느냐보다, 무엇을 말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빈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안토니 훼케마(Anthony Hoekema, 1963) 박사는 안식교를 세계 4대 이단 중 하나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론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지 않는 학자나 단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몇 개인이나 단체가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정통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식교는 비성경적인 교리들 때문에 이단으로 비판을 받는 것을 알아야 한다.
II. 안식교의 구원론은 율법주의 구원론이다
1) 율법주의와 화잇
율법주의란 무엇인가? "율법주의란 칭의나 구원의 수단으로써 인간의 선행과 율법의 준수를 주장하는 이론을 말한다"(성광문화사, 신학사전 p. 536). 기성교회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율법주의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정의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안식교의 구원 교리는 한 마디로 율법주의이다.
화잇의 글을 직접 살펴 보자.
"그의 율법은 그의 품성의 사본인 동시에 모든 품성의 표준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지상 생애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표현한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지게 될 때에 주께서는 저들을 하늘 가족을 구성할 만한 자들로 인정하시게 된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실물교훈, pp. 326-327).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부합된 것만이 심판 때에 능히 설 수 있다"(위의 책, p. 328).
"그리스도의 의는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죄라도 가리워 주지 않을 것이다"(위의 책, p. 328).
"율법은 여전히 우리를 그리스도께 나가게 하는 대리자로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한다"(알론조 제이 워너, 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p. 101).
"율법은 모든 인류의 품성을 저울질하는 것이니 이 착오 없는 시험에 의하여 중량이 부족하다고 선고를 받는 자는 다 형벌을 받아야 한다"(위의 책, p. 102).
"심판에 설 준비를 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이 계명은 심판 때에 품성의 표준이 될 것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쟁합, p. 484).
화잇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완전한 품성이며 완전한 품성의 표준은 완벽한 율법의 준수라는 말이다. 또 믿음의 의를 이루는 것도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어찌 율법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왜 안식교를 율법주의라 하는가?
일반적으로 기성교회에서 안식교를 율법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안식교 측에서는 결코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안식교는 율법주의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이에 필자(진용식)는 안식교를 28년 동안 직접 경험했고 또 기성교회 목회자로서 양편의 주장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성교회에서 안식교를 율법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안식교는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엘렌지 화잇, 시대의 소망 2권, pp. 21-23).
② 안식교는 완전성화, 즉 완벽한 품성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알론조 제이 워너, 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pp. 102, 108; 왕대아, 시조사, 최대의 책에서 얻는 문답, pp. 107-108).
③ 안식교는 현세에서 완전성화(품성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위의 책, p. 107; 엘렌지 화잇, 시조사, 실물교훈, p. 61; 교회에 보내는 권면 2권, p. 596). 완전한 품성의 변화란 율법의 완벽한 준수를 말한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대쟁투합본, p. 484).
④ 안식교는 율법을 완전히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가려뽑은 기별 1권, p. 272; 왕대아, 시조사, 최대의 책에서 얻는 문답, p. 122).
⑤ 안식교는 율법(십계명)은 창세 전부터 존재했고 영원까지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가려뽑은 기별, p. 274).
⑥ 안식교는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마지막 날의 구원을 얻기까지 성화(율법준수)를 통하여 유지되고 성숙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신계훈, 빛과 소리,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p. 440).
⑦ 안식교는 폐한바 된 구약의 모세의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라고 하기 때문이다(부정하고 정한 음식을 가리는 문제, 토요 안식일 문제 등).
3) 안식교의 율법주의적 구원관은 무엇이 잘못인가?
살펴본 바와 같이 안식교는 율법주의의 구원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율법주의 주장들을 하나씩 성경적으로 반증해 나가면서 율법주의가 얼마나 비성경적이며 무서운 이단인가를 증명하겠다.
첫째,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식교의 구원교리가 율법주의라고 하는 첫번째 이유는 비록 믿음을 말하고 있지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복음에서 이탈하여 구원받기 위하여 율법의 행위를 첨가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안식교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1차 구원은 믿음으로 얻으나 재림 시에 얻는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구원이라고 한다(계 22:12; 마 16:27; 약 2:19-22; 살후 2:8).
둘째, 은혜의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나 영광의 천국에는 법을 행한 자라야 들어간다고 한다(계 22:12; 마 7:21-23).
반증해 보자.
다음의 성구 자체로 충분한 변증이 될 것으로 믿는다. 로마서 3:20을 보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되어 있다. 역시 갈라디아서 2:16에서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되어 있다.
둘째, 인간의 노력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바로 율법주의의 주장이다. 안식교의 이러한 가르침을 율법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의 안식교의 가르침들을 먼저 화잇의 글을 통해 살펴 보자.
"구주의 순종의 생애는…인류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엘렌지 화잇, 시조사, 시대의 소망 2권, pp. 21-23; 성서기초교리, p. 101).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자들은 다 의롭지 못하며 순종할 수가 없다는 '사단'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위와 같음).
"우리의 품성 가운데 점이나 흠이 있는 한 우리 중 아무라도 결코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교회에 보내는 권면 2권, p. 596).
반증해 보자.
첫째, 인간의 노력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가 없다. 성경에 보면 분명히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롬 3:20)고 되어 있다. 사도 바울도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라고 고백하며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함을 탄식하고 있는데(롬 7:14-25), 안식교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으며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적인 주장을 하고 있으니, 안식교인 중에 누가 율법을 완전히 지킨 사람이 있는가? 필자가(진용식) 28년 동안 안식교회에 있었으나 ,율법을 지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나 완전하게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자는 하나도 만나 보지 못했다.
둘째,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십자가의 구속이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기에 우리의 죄를 구속하신 것인데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면 예수님의 구속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성경은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고 했다.
셋째, 생전에 완전성화(품성의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세에서 완전성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식교의 또 하나의 율법주의 주장이다. 현세에서 성화가 가능하다고 성화, 곧 품성변화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안식교의 가르침들을 화잇의 글에서 살펴 보자.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때에는 그는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시게 되는 것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실물교훈, p. 61).
특히 화잇의 이 말을 주의하여야 한다. 이 말에 의하면 예수님은 영원히 재림하시지 못하실 것이다. 아무도 생전에 완전성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현세에서는 인간으로서는 완전성화(품성변화)가 될 수 없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현세에서 완전성화가 불가능함을 가르치는 성경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열왕기상 8:46, 잠언 29:9, 로마서 3:10, 야고보서 3:2, 요한일서 1:8 등이다. 또한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뇨"(잠 20:9)라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안식교인들은 완전성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자들로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란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계속 성화되어 가다 성화가 완성되는 때가 오는데, 주님의 강림하실 때로서 그때에 흠도 점도 없는 몸으로 순간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고전 15:16 하반절). 우리는 영광스러운 그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의 품성 가운데 점이나 흠이 있는 한 우리 중 아무라도 하나님의 인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화잇의 말보다 더 완벽한 율법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넷째, 한번 얻은 구원은 상실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식교에서도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하여 말하고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식교를 율법주의라고 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어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고, 얻었던 영생도 상실하게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안식교 목사 신계훈 씨의 변증서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구원과 영생을 약속 받았던 사람도(요 5:24)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 그 이름이 제외될 수 있는 것이다(마 10:32-33).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고전 9:27)하여 자신의 '몸을 쳐 복종'(고전 9:27)시키고 '날마다 죽는'(고전 15:31) 경험을 계속하는 사람, 곧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같이 하리라'(계 13:22)는 최고의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한번 구원받으면 언제나 구원받는 것'이라는 막연한 보증을 믿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신계훈, 빛과 소리,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p. 440).
반증해 보자.
첫째, 한번 얻은 구원이 결코 상실될 수 없다는 믿음은 성경의 확고한 보증 위에 서 있다. 안식교인들은 받은 구원이 불완전하여 항상 넘어질까 불안해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진정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성경의 확고한 구원의 보증에 의해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성경구절들은 이를 확실히 해 주고 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9).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고전 1:8).
그 외에도 에베소서 1:12-14, 4:30, 베드로전서 1:3-5, 히브리서 10:14, 유다서 1:24-25, 요한복음 17:11, 12, 15, 로마서 5:8-10, 로마서 8:29-30, 고린도전서 10:13, 요한복음 6:35, 히브리서 12:28, 로마서 8:1 등에 같은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의 확실한 보증들을 막연한 보증이라고 하는 안식교인들이야말로 화잇의 거짓 계시를 막연하게 보증으로 믿고 있다가 불행한 결과를 당할 것이 분명하다.
둘째, 영생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구원은 상실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속죄함을 받고 얻은 구원의 생명은 곧 영생이다. 다시 죽는 생명은 영생이 아닌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요 3:36),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마다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라고 하였다.
믿고 영생을 얻은 자가 구원을 상실하게 된다면, 그 구원이 어찌 영생이라 할 수 있겠는가?
4) 안식교의 율법주의적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안식교는 율법주의 교리를 고수하다가 1870~1880년대에 와그너(Waggoner)와 존스(Jones)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받아들여(오만규, 재림교회사, pp. 127-140) 율법주의적인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안식교 측에서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안식교는 율법주의의 교회가 아니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진 교회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안식교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성경적인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는 전혀 다른 율법주의적인 칭의를 말하고 있다. 칭의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의롭다고 선언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나, 안식교는 비록 '믿음의 의'라는 용어를 말하고는 있으나 성경과 다른 것이요, 결국 율법주의적 믿음의 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식교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에 대하여 화잇의 글을 먼저 살펴 보자.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는 때에…우리는 그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곧 그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실물교훈, p. 224).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그에게 요구하신 것은 당신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아담에게 요구했던 완전한 순종 곧 흠이 없는 의, 주님의 안목으로 보실 대 결점이 없는 상태를 요구하신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가려뽑은 기별 2권, p. 486).
"그리스도의 의는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죄라도 가리워 주지 않을 것이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실물교훈, p. 328).
안식교가 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의롭다고 선언받는 칭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하는 예수님의 도우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칭의란 무엇인가? 성경적인 칭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의)를 전가하여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칭의는 인간이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이다(롬 3:20-24; 갈 2:16; 빌 3:9).
둘째, 칭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롬 5:18-19).
셋째, 칭의는 즉각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롬 5:1).
안식교는 이러한 성경의 믿음의 의와는 반대로, 믿음을 이용해서 점진적으로 흠도 점도 없이 예수님처럼 되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인들은 지금도 그 무거운 율법주의 교리에 눌려서 품성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진리를 깨닫기를 늘 기도하고 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갈 3:9).*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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