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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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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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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측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

                                                           -    -

 

  글을 열면서

 

  기독교계 일부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약칭 :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또 일각에서는 안식일교회를 성경에 매우 충실하고 건전한 정통 개신교회로 보고 있다. 안식일교회를 깊이 바르게 아는 사람들도 있고, 잘 모르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10회에 걸쳐 본 지면에 연재되는 이 글은, 이단 시비에 대한 변증으로서 보다는 안식일교회를 좀더 바르게 알리는데 목적이 있음을 밝혀 둔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특별히 이단성 시비가 많을 뿐 아니라 군소 교단들이 대형 교단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이단 언도(?)를 받는 일들이 좀 잦은 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예장 통합측에 속한 목사가 발행인으로 되어있는 월간 잡지 [교회와 신앙]이 공정한 입장에서 안식일교회측 목사와 공개적으로 지면 토론을 시도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지면 공개 토론이 교단 차원이 아니라 피차간 개인 자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서 양자간에 좀더 정확한 정보가 교환되고 보다 깊은 이해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

  성경은 하나인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기독교 종파는 수백개에 달한다. 성경의 동일한 문맥을 두고 해석을 달리하는 인간의 아집과 편견과 무지의 결과일 것이다.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각 교파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 자신이 속한 교회를 정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결론은 아무나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며 함부로 내려서도 안 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종파들이 서로가 서로를 이단이라고 하며 기독교회들 간에 심한 대립과 갈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피차간에 서로를 이단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소수의 집단이 더 이단처럼 보이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한 교파가 자() 교파의 신조를 기준으로하여 신조를 달리하는 타() 교파를 이단으로 정했을 경우에 그것을 상대적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상대적 이단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이단인 것이다. 객관적 이단이란 성경을 기준으로하여 가려져야 하는 것인데,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과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성경에 의한 절대적 이단을 분별하여 시비를 가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보자.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1).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4:12).

 

  한국 교회의 이단 규정, 과연 정당한가?

  1995 9 25일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총회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이단으로 결의했다고 한다. 어떤 절차를 거쳐서 무엇을 기준으로하여 이단이라는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안식일교회측과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상대를 이단으로 정한 것은 너무 경솔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중세 종교 암흑 시대에 종교 재판을 통해서 이단을 규정할 때에도 "먼저 이단으로 의심받은 사람에게 신앙을 고백하고 사면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다음"피고가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그를 재판관 앞으로 끌고와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심문하고 형을 선고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브리태니커, 한글판, 19, 593). 물론 안식일교회가 피고의 입장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개방되고 현대화된 20세기 말에 한 교단이 다른 교단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이단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어차피 한국 교회의 이단 규정이 일방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라는 교단이 ''이라는 교단을 이단으로 정했다고 해서 ''이 성서적으로 이단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단'이라는 말을 듣는 것 자체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교단 '' ''보다 그 규모가 크고 교인수가 훨씬 많으면, 기독교 언론 기관들의 편파적인 보도가 얼마든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서점을 통한 선교의 길도 차단되어 ''은 막대한 피해를 보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므로, 이러한 지면을 통해서 양자간의 좀더 공정하고 올바른 인식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단 분별 기준의 문제

  아무런 토의없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이단으로 결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전반적으로 한국 교회가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도 문제가 된다. 이단 감별사로 유명했던 T씨가 제시한 이단 분별의 기준을 보면, 그 첫번째가 "사도신경 신앙고백 여부"라고 되어 있다(탁명환, 기독교 이단 연구, 1990년판, 75). 주기도문도 아니고 십계명도 아니고 성경에 명백히 나와 있지도 않은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단으로 정하는 것이 과연 성서적인가?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을 정하려면 철저히 성경적이어야 한다. 예들 들면, 성경에 명백히 나와 있는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요일 4:2,3).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 4:12)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길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자 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는 죽은 자의 부활이나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으면 얼마든지 이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교회를 이단이라고 정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의 모체가 된 것은 서기 400년경 라틴어로 된[로마교회 구 신조](the Old Roman Creed)임이 밝혀졌으며, 그 뒤로 계속 수정되어 서기 700년경 지금의 것과 같은 내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제목은 사도신경으로 되어 있지만 사도들이 만든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도 아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를 만들었으며, 서기 900년경이 되어서야 동방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들이 사도신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처럼 사도신경 신앙고백 여부가 이단 판별의 기준이 된다면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고 니케아 신조를 사용하는 동방의 모든 교회들은 우선 이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단 판별의 기준으로는 합당치 않은 '사도신경 신앙고백 여부'

  대체적인 내용이 성서적으로 구성된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타나 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

  이 문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단이 된 아리우스파의 신조에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점차로 퍼져 나가다가 결국 8세기에 가서는 개정된 사도신경에 정식으로 삽입된 것이다. 이 표현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면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되어 계셨던 삼일 동안"지옥"에 다녀오셨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신경의 내용 중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라는 말은 원래 "거룩한 가톨릭 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라고 되어 있는 것을 무리없이 번역해 놓은 것이다. 물론 '가톨릭'이라는 말을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모든 교회에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그것은 가톨릭 교회를 구체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가톨릭 교회를 믿사오며", 이러한 표현이 들어있는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하여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또한, 신경(信經)의 내용 중에 "성도가 교통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교통'이라는 것은 그 문법적인 성격으로 보아 성만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이 '교제'를 이 세상에 살아있는 성도들 뿐만 아니라, 죽은 성도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성자숭배와 죽은 사람에게 기도하는 교리적 근거로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와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사도신경을 가장 옹호하고 두둔하는 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이며, 성 토마스(St. Thomas)는 이 신경에 대하여 고의로 무지하게 되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죄로 간주했다. 이러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서로 사용하지 않는다고하여 이단으로 정한다면 이미 이단의 판별 기준은 그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이단]이라는 말의 오용

  교회사를 더듬어보면, '이단'이라고 하는 용어가 정당하게 사용되는 경우 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이 나타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선 성경 가운데서 '이단'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던 사도행전의 예를 보자.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24:5,14).

  신약 성경의 이단 시비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고수해온 인간적인 전통을 거부하고 그들과는 다르게 가르치는 나사렛 예수와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잘못 사용되기 시작한 '이단'이라는 말은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도 재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고수해온 전통적인 개념을 부인하고 트렌트 종교회의의 결정사항과 어긋나게 가르치는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이 저주받을 이단으로 정죄되어 생명까지 위협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진 것이다. 청교도의 정신으로 시작된 미국의 개신교 역사에서도 동일한 양상이 반복되었다. 로마 교황이나 국왕이 교회의 머리[首長]가 된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이단자로 정죄되어 더 이상 거처할 곳이 없게 된 회중파 청교도들이 미국 동부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에는, 정교일치(政敎一致)를 주장하는 저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침례교도와 퀘이커 교도들을 추방하거나 이단으로 정죄한 후 목매달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와 같이 '이단'이라는 말이 자주 오용된 과거의 역사로 미루어보아, 그 말은 결코 함부로 사용할 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말을 남용하는 한국 교회의 풍토는 매우 우려할만한 상태가 되었다. 여러 '이단 감별사'(?)들이 인쇄물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앞다투어 '이단' 보고를 하고 있다. 이미 언급된 바와같이 이단을 정하는 자()가 틀려있기 때문에 그 자를 가지고 재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며, 사분오열되어 있는 한국 교회의 풍토에서 이단 시비를 가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교단 '' '' ''이 서로를 인정하여 정통이라고 자처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교단 ''이 교단 ''을 이단으로 정했는데 교단 ''이나 '' ''을 이단으로 정하지 않았을 경우, 그 관계가 매우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는 교단이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을 경우, 한국에서는 '' 교단이 '' 교단을 이단으로 결정했는데 미국에서는 같은 '' 교단이 같은 ''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는 세계적 조류를 읽어야

  이단 규정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예장 통합측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이단 판결을 내려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이단시하는 것은 중세의 교권 시대를 연상하게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140년에 가까운 역사를 통해서  전세계 209개국에 선교하여 900만명에 이르는 신자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조직체인 안식일교회를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단 한 번의 토의 과정이나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도 없이 이단으로 단정해 버릴 수가 있는가?

  안식일교회의 이단 여부에 대하여 질문을 받은 빌리 그래햄 복음 협회(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에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내용전문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음).

  "Dr. Walter Martin, in his excellent book The Kingdom of the Cults, includes a chapter on Seventh-day Adventism in which says, 'It is my conviction that one cannot be a true Jehovah's Witness, Mormon, Christian Scientist, Unitarian, Spiritist, etc. and be a Christian in the Biblical sense of the term, but it is perpectly possible to be a Seventh-day Adventist and be a true follower of Jesus Christ despite certain heterodox[unorthodox] concepts'."

  "마르틴 박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항목을 포함하고 있는 그의 명저 종파들의 왕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크리스찬 사이언티스트, 유니테리언, 강신술교도 등은 성서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없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비록 저들이 약간의 이설적[비정통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빌리 그래햄 선교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그의 저서를 인용할만큼, 마르틴 박사가 이단 사이비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는 하지만, 그와 견해를 달리하는 학자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조류에 비추어 생각하면, 세계 기독교와 동일한 노선을 추구하고 있을 예장 통합측은 안식일교회에 대하여 너무 성급하게 이단 결정을 내린 것 같다. 몇몇 교리적인 측면에서 안식일교회가 일반 개신교회와 약간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제 앞으로 9회에 걸쳐서 설명이 되겠지만, 그 정도의 교리적 차이는 서로 정통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개신교파들 사이에도 얼마든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1619년에 있었던 그 유명한 도르트(Dort)회의의 결과, 아르미니우스의 예지예정설(豫知豫定說)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정통파 칼빈주의는 구원에 있어서의 무조건적인 선택, 즉 예정설을 정통 교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지예정설을 전부 혹은 일부라도 믿고 있는 감리교를 비롯하여 성공회, 감독교, 루터교, 일부 침례교, 오순절교회는 모두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장로교회와 위에 열거된 여타의 교회들이 모두 함께 정통 기독교회로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예정설과 예지예정설은 서로 상반되는 견해로서 사실상 공존이 불가능한 것이지만, 편의상(?) 혹은 서로가 대형 교단이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안식일교회가 우세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러하듯이, 만약 한국의 안식일교회 교인수가 1000만명이 된다면 아무도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진리는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간에 서로 다른 견해가 발생할 수 있다. 대분분의 경우 성경 해석상의 차이에서 오는 불가피한 경우들이다.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비유와 상징과 은유로 말씀하신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성경을 유한한 인간들이 해석할 때 서로 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는 것이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의 다소(多小)로 진위를 가려서는 안 된다.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가 살던 시대에, 지고의 권세를  가지고 있던 절대다수의 교권이 [천동설](天動說)을 주장한다고 해서 지동설 진리가 변경될 수 없었듯이, 지금도 교권이나 어떤 대형 교단이 정했다고 해서 비진리가 진리로 바뀌거나 진리가 비진리로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이단'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해서도 안 되겠지만, 한 때 이단으로 정죄하다가 교세가 커지면 입장을 바꾸어 정통이라고 인정하는 일도 석연치 않은 점이다.

 

  성경을 믿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구원관이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4:12)는 말씀이 기독교 구원관의 본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인정하여(요일 4:2,3), 그 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간의 죄 사함과 구원이 이루어지고( 5:8-10) 그것을 믿음으로 영생한다는 구원의 도리( 3:16; 4:12)를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중추가 되는 것이다.

  그 이외의 문제로 혹시 교회나 교파간에 어떤 이질적인 문제와 견해 차이가 발생하면 피차간에 자리를 함께하여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모든 것을 성경으로 검토·검증하여 견해 차이를 좁히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한 후에 마지막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 의견이 다른 하나의 분파로 보면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교파를 하나의 분파(cult 혹은 sect)로 간주하는 일은 있어도 '이단'(heresy)이라는 마지막 결론은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이단' 감별을 너무 쉽게 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단과 정통의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인간의 몫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진리에 대한 안식일교회의 자세

  안식일교회는, 장로교, 회중교, 감리교, 제칠일침례교, 루터교 등 여러 교파로부터 나온 재림 신자들이 1844년의 대실망을 경험한 후, 여전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신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신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안식일교회는 각 교파로부터 나온 사람들이 진리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한 결과로 탄생된 교회인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교회는 각 교회의 성서적 진리들을 모두 수용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루터교회로부터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정신을, 재세례파로부터는 성인(成人) 신자의 침례, 정교 분리의 원칙, 죽은 자의 무의식, 재림을 고대하는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생활 등을, 메노나이트 재세례파로부터는 세족예식, 의료 봉사, 심령의 성결과 함께 육신의 성결을 위한 건강 생활, 그리고 금주, 금연 등의 절제 원칙을, 칼빈의 장로교회로부터는 성경적인 예배, 성경의 권위에 절대 복종, 율법의 복음적 기능, 장로제도 등을, 침례교회로부터는 물에 잠기는 침례, 회중의 교회 행정 참여(대의제) 등을, 제칠일침례교회로부터는 제칠일안식일 준수를, 웨슬레의 감리교회로부터는 중생과 성결, 성령의 사역, 예정론에 대응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론 등을, 구세군교회로부터는 구호봉사와 자선 사업 등을, 모라비아 형제회로부터는 지역 제한을 받지 않는 세계 선교의 정신을, 그리고 가톨릭교회로부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여, 그야말로 성서적인 진리는 모두 수용하고자 하는 정신으로 교회의 기초를 놓게 된 것이다.

  지금도 안식일교회는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현재 고수하고 있는 교리 중에 비성서적인 요소가  드러나면 즉시로 포기할 수 있는 준비와 새로운 성서적 진리가 밝혀지면 언제라도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오직 성경대로 올바른 신앙을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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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장, 목사

안식일교회 논쟁2(96 9월호)

--안식일교회의 구원론--

3부에서 계속

출처 :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u6La&fldid=Qlnd&datanum=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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