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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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7(97년 2월호)
--영혼불멸과 영혼멸절--
안식교의 내세관(來世觀)은
여호와의 증인의 것과 유사하다
지난 호들의 글에 대하여
A. 형식적인 측면에서
논쟁이 여러 번 진행되었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형식적인 측면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1. 김대성 목사는 고증(考證)을 선명하고 친절하게 하지 않고 있다
김대성 목사의 글을 보면 자신의 주장의 근거가 기록되지 않은 곳이 많고, 있어도 그것이 안식교 학자의 책에서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일반 역사에서 가져온 것인지, 기성교회 학자의 주장인지 선명하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주장에 대하여 너무 짧게 인용하고 있어서 의미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것을 선명하게 밝혀주어야 그것이 입장의 차이인지, 아니면 자료의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건인 르네상스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과 일반 학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지 않던가?
본 논쟁에서 실예를 몇 가지만 들겠다. 김목사는 96년 11월 호에서 마틴과 훼크마의 논쟁 중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을 인용하면서도(125쪽) 어디에 기록된 내용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12월호 "비성서적 일요일(주일)예배, 그 기원과 역사"라는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 초대교회 교부들이 "유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구약의 하나님 대신 신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며 이교도와의 동질화를 위해서는 안식일 대신 당시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의 예배일인 일요일 예배를 교회에 도입하게 된 것이다"고 하였다(152쪽).
그런데 이렇게도 중요한 말에 어떤 교부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해괴한 소리를 했으며, 그리고 그 기록은 어떤 책에 있는 내용인지 밝히지 않았다. 필자가 알고 있기에는, 교부들이 이교도들이 태양신을 섬기고 있기에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태양신을 섬기는 미트라의 축제일인 12월 25일을 일부러 예수님의 탄생일로 만든 것이라는 일반인의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런 해괴망측한 글을 인용하면서, 고증도 없는 글을 사용해 사람들을 적당히 미혹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일반 학자의 잘못된 견해 내지는 안식교 학자가 지어낸 조작품일 것으로 사료된다. 다음 호에서 밝혀주기 바란다.
또한 콘스탄틴 황제가 321년 3월 7일에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서 일요일을 휴업하도록 명령했다고 고증을 들었는데, 그 근거도 밝히지 않았다(153쪽). 실수인지, 김목사의 상습인지, 아니면 머리 속에서 나온 작문인지 알 수가 없다.
2. 자신들의 교리로 비판해도 된다고 말한 공식문서는 소위 <기본교리 27>(시조사 발행)이란 책인데, 자신은 그 책을 중심해서 변증하지 않고 있다
안식교 목사들은(김대성 목사를 포함해서) 기성교회에서 자신들의 교리적인 잘못을 비판할 때마다 한 말이 있다. 다른 책으로 하지 말고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책, 즉 <기본교리 27>을 근거로 해서 비판해 달라는 것이다.
장로교 교리를 일개 장로교인이 쓴 어떤 책을 근거로 해서 비판하면 되겠느냐고 역공을 한 자들이 안식교인들이었다. 심지어 화잇의 글도 안식교의 교리를 비판할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대성 목사는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기본교리 27>를 한 번도 인용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전호의 조사심판 교리에서도 <기본교리 27>에 의하면, 다니엘서 9장 25절에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라고 해 놓고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 중건영인지, 예루살렘 성읍 중건영인지, 그것도 중건영이 내려진 때인지, 완성된 때인지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김대성 목사는 이 교리서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3. 아직도 자신들이 옳아서 이단이 아니란 말인지, 필자가 자신들을 몰라서 이단이 아니란 말인지, 기성교회 기준으로도 이단이 아니란 말인지 도무지 선명하지 않다
김대성 목사의 글을 읽어 보면, 그는 본 논쟁의 초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 논쟁은 안식교가 이단이냐, 아니냐는 것을 따지는 장이다. 기성교회에서는 안식교가 이단이란 것이요, 안식교에서는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교는 기성교회를 음녀라고 하고 있고, 기성교회는 안식교를 이단이라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식교 편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길외에 논쟁의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즉 자신들이 옳아서 이단이 아니라든지, 또는 상대방이 이해를 잘못해서 이단이 아니라든지, 아니면 이해도 바르게 했고 자신들과 기성교회가 다른 점도 사실이지만, 기성교회의 교리적인 기준에 의해서도 이단이 될 차이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목사의 글에는 이 점이 언제나 선명하지 않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 가지 입장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기성교회로부터 이단이 아니라는 말만 듣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래야 효과적으로 기성교인들을 미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B. 내용적인 측면에서
1. 화잇의 거짓 계시에 대하여
지난 호에 부족감이 있어 화잇의 거짓 계시 몇 가지를 더 밝히고 싶다.
1) 링컨의 남북 전쟁에 대한 예언
화잇은 링컨이 남북 전쟁에서 패배할 것에 대해서 예언을 하였다. 필자가 화잇의 이러한 빗나간 예언에 대하여 비판하자 김목사는 영문 <교회증언> 1권 259쪽의 문장을 인용하여 변증하였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문장 하나를 소개한 것으로, 화잇이 말한 예언은 그런 것이 아니다. 먼저 이에 대한 화잇의 예언들을 살펴보자.
"나는 하나님의 백성 곧 그의 특수한 보배인 그들이 이 혼란한 전쟁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대개 이 전쟁은 모든 점에 있어서 그들의 신앙과 반대되는 까닭이다"(영문 교회증언 1권 361쪽).
"영국이 선전 포고를 할 때에는 모든 국가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참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 전쟁(General Confusion)이 일어날 것이다"(위의 책 259쪽). "전쟁은 승리로 인도하기는 불가능 한 것같이 보인다"(위의 책 256쪽).
"우리 민족이 연합해 있었더라면 강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분리하였으니 그는 망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위의 책 260쪽).
이와 같은 화잇의 예언과는 달리 링컨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영국은 선전포고를 하지도 않았으며, 전체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고, 미국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왕성하여 세계 최대 강국이 되었으니, 화잇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가 성취되지 않았다.
화잇의 잘못된 계시를 하나 더 소개하여 화잇이 사기 예언가였음을 선명히 하고 싶다.
2) 돼지고기에 대한 화잇의 계시
안식교는 레위기 11장에 있는 부정한 음식을 철저히 금하고 있다. 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교리도 역시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주장된 것이다. 특히 안식교인들이 금하는 부정한 음식의 대표적인 것은 돼지고기이다. 화잇은 돼지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받은 계시가 있었다. 그것을 살펴보자.
안식교는 처음부터 부정한 음식을 금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안식교인들도 부정한 음식들을 먹었고 화잇도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말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1859년에 안식교 내에 돼지고기를 금해야 한다는 A씨 부부가 있었다. 이에 대하여 화잇은 계시를 받고 다음과 같이 편지를 보냈다. 즉 "나는 그대들이 자양분 있는 식물을 섭취하기를 거절함으로써 그대들의 몸을 괴롭히는 일에 관하여 그대들이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영문 교회증언 1권 205쪽)고 하였다. 즉 화잇은 자양분 있는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이 그릇된 관념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말이다. 화잇이 선지자이며 위의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안식교인들이 자양분 있는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은 그릇된 관념임에 분명하다.
화잇은 돼지고기에 대하여 그가 받은 계시를 계속해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들은 음식에 관하여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 "나는 돼지고기에 관한 그대들의 견해가 이를 그대들 자신에만 적용한다면 손상되지 않을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들의 판단과 의견에 의하여 그대들은 이 문제로써 (믿음의) 표준을 삼았다"(위의 책 206∼207쪽)고 하였다. 즉 화잇의 계시는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교리를 믿음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안식교가 화잇을 선지자이며 그의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돼지고기를 금하는 교리를 믿음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 런데 안식교인들은 대부분 돼지고기 문제에 있어서 화잇이 이런 계시를 말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과연 먹으라는 교리인가, 먹지 말라는 교리인가?
2. 토요일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필자 편에서 볼 때 김대성 목사가 토요일 안식일이 옳다고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성교회의 주일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다,
둘째, 역사적으로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주일을 삼았다,
셋째, 성경에 주일을 지키라는 근거가 없고 ,오히려 신약 성경에서도(히 4:9 등)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씩 변증해 보자.
1) 기성교회의 주일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분명히 안식교인들이 제일로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이 점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시 더 많은 지면과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논쟁할 필요를 느낀다. 필자가 보기에는 넓은 의미에서 율법의 완성과 폐해짐의 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으로 보인다.
기성교회의 주일개념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는 안식교측의 지적 중에 맞는 말이 있다. 기성교회 교인들 중에는 구약의 안식일이 아예 주일인줄로 아는 성도도 있다. 그리고 안식일과 주일 관계에 있어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연속성이 있는지, 또는 없는지도 모르고 있는 교인들도 많다. 그래서 안식교를 통해 주일개념을 정리하도록 하는 것으로 믿는다. 마치 초대교회 수많은 이단들의 자극에 의하여 정통 신학이 형성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성교회 편에서 보면 이단은 정통 신학을 형성시켜 주는 부정적인 도구인데 안식교에 대하여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①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말과 폐해졌다는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폐해졌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었다.
② 그런 점에서 안식일이 폐해졌다는 말도 맞고, 완성되었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말도 맞다.
③ 오늘의 주일은 분명히 안식일 개념에서 온 부분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 중심의 종교가, 주일 중심의 종교로 바뀌었다고 보아야 더 맞다고 본다.
④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의미와 방법은, 안식교가 안식일을 지키는 의미와 방법과는 다르다. 안식교가 안식일의 '날'을 강조하는 의미와 목적은 아무래도 율법주의에서 왔다고 본다.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몽학선생에 매여 있는 것이며, 육체의 예법에 매여 개혁의 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1주일 중에 하루가 주의 날이 아니라 7일이 주의 날인 것이다.
이 점은 분명히 안식교 측에서 다시 논쟁을 하기를 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 보아서 깊이 있게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본다.
2) 역사적으로 태양신을 섬기는 날로 주일을 정했다는 문제에 대해서
필자는 이 점에 대하여 안식교가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교부들에 의해서 복음이 우리에게 전수되었고, 또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안식교는 그렇게 보지 않지만). 왜 안식교는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직접 들은 교부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서 주일을 정했다는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김대성 목사의 두 가지 모순과 잘못을 지적해 보자.
① 역사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이교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주일 문제와 성탄절 문제는 다른 부분이 있지만, 주일도 태양신에서 왔고 성탄절도 태양신에서 왔다고 같은 주장을 하기 때문에, 성탄절에서 실예를 들어보자.
분명히 12월 25일은 미트라를 섬기는 날이었다. 그러나 교부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하여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정했다는 주장은 무지한 소치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은 정반대라는 점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태양신을 섬기기 위하여 성탄절을 만든 것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것을 일반 학자의 의견에 의하여 증명해 본다. 이 점이 콜롬비아 물리학 교수였던 찰스 패너티란 사람이 쓴 <세계문화 벗겨보기>(이형식 옮김, 도서출판일출, 1996)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
패너티에 의하면, 12월 25일 성탄절은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후에 콘스탄틴에 의해(337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부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태양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86∼87쪽). 그래서 320년의 한 신학자는 "우리는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교도와는 달리, 태양을 만드신 이를 축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정반대가 아닌가. 이 점을 김대성 목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로마인들이 일요일에 태양신을 섬겼다는 이유만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하여 이 날을 정한 결과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논리가 가능하다. 안식교인들이 지키는 토요일은 토성신을 섬기는 날이다. 로마에서도 역시 토성신을 섬겼다. 그렇다면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토성신을 섬기기 위함인가?
② 스스로도 모순된 논리이다.
누구나 자기를 재는 자와 다른 사람을 재는 자가 같아야 한다. 안식교의 조사심판이니 2300주야 문제는, 밀러가 만든 1884년 10월 22일의 시한부종말론에서 나온 것으로, 화잇이 그 의미를 바꾸어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밀러가 말한 날짜와 같고 상당한 부분에 있어서 성경해석이 같으면서도 그 의미를 조금 바꾸었다고 하여, 안식교가 시한부종말론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안식교이다.
그런데도 주일이, 이방인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날과 같다는 점과, 불신자들인 일반 역사가들이 보는 견해에 의하여 교부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 주일을 만들었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펴고 있으니, 참으로 자가당착이 아니고 무엇인가?
3) 성경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말에 대해서
김대성 목사가 성경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열거한 성경구절 중에 대답할 필요와 가치가 있는 것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사도행전 20장 7절이요, 다른 하나는 히브리서 4장 9절이다. 하나씩 대답해 본다.
① 사도행전 20장 7절의 "안식 후 첫날"이 토요일 저녁부터라는 말에 대하여.
본문의 "안식 후 첫날" 시점을 토요일 저녁으로 보는 김대성 목사의 성경 해석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다른 성구의 해석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만일 이 날이 토요일 안식일에 모였다가 그 밤에 떡을 떼고 말씀을 강론한 날이라고 한다면, 마태복음 28장 1절, 마가복음 16장 2절, 누가복음 24장 1절, 요한복음 20장 1절의 똑같은 안식 후 첫날도 토요일 저녁부터라는 말인가? 그러면 아마 이런 말이 될 것이다. "안식 후 첫날 즉 토요일 저녁이 되려는 미명에"(마 28:1).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즉 토요일 저녁 새벽에". 참으로 이상한 말이 되고 말지 않는가.
왜 위의 본문에서는 안식 후 첫날을 토요일 저녁부터라고 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김목사의 말대로 토요일 저녁부터라고 치더라도,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모였다가 떡을 떼었는지, 주일을 지키려고 토요일 날 모였는지는 본문이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사도들이 주일을 지키려고 모였다고 하면 큰 일이 나니까 그것만을 막아보려고 고안해 낸 억지 해석이 아니겠는가?
둘째, 이 문제에도 자가당착적인 요소가 있다. 안식교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다. 그런 의미로서 토요일 해진 후 그 밤부터가 안식 후 첫날이라는 안식교의 기준에 의하면, 바로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닌 것이다. 안식일은 이미 지난 것이다. 안식교의 기준에 의해서 보더라도 '안식 후 첫날'은 주일인 것이다.
결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킨다는 사실만으로, 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율법주의적으로 그 날 지키기를 고집하고, 구원의 조건처럼 하고, 주일 지키는 것을 음녀라고까지 비판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안식교는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② 히브리서 4장 9절에 나오는 "안식할 때"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에 대하여.
안식교인들의 의식으로서는, 그리고 문법적인 구조 속에서는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주의깊게 연구하지 않고 선입견에 의해 해석하기 때문에 생긴 잘못이다.
첫째, 사실 문법적으로 보아도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안식일에 해당되는 헬라어 '사바톤'(sabbaton)은 구약 히브리어 '사바트'(shabbath)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사바트'는 '안식일'로도 되어 있고 '안식'으로도 되어 있다. 많은 곳에서 주로 안식일로 되어 있지만(출 16:25; 20:8, 10, 11; 31:13; 레 16:31; 19:3; 23:11, 32, 38; 민 15:32; 28:9, 10; 신 5:12, 15 등등), 그러나 얼마든지 '안식'으로 되어 있는 곳도 많다. 레위기 25:2; 25:4; 26:34, 35, 43; 신 5:14 등에서 '안식'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에는 '안식일'로 번역해도 문맥이 통하는 곳도 있지만, 거의 안식으로 번역해야만 되는 것들이다. 다 안식일로만 번역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 히브리서 4장 9절의 '사바티스모스'(sabbatismos)도 얼마든지 안식일이 아닌 안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서도 '사바톤'을 '안식일'로 번역하지 않고 '안식'으로 번역한 것이다(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
둘째, 문법적으로는 물론, 더욱이 신학적으로는 그런 해석을 할 수 없다. 성경을 언어학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언제나 신학적인 해석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문의 안식을 안식일로 해석하면 앞뒤의 말이 맞지 않는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우리가 누릴 미래의 영원한 안식을 뜻하고 있다. 김목사의 말대로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를 "안식일을 지킬 때가 남아 있도다"라고 한다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 때까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을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데, 그리고 수 천년 동안 안식일을 지켜왔는데 아직도 안식일을 지킬 때가 남아 있다고 하니, 문맥상, 신학상, 시제상, 어느 것도 맞지 않는다. 안식교인들은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날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그보다 만일 위의 '안식'을 '안식일'로 해석하면, 역시 자가당착적인 해석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똑같은 '사바톤'으로 되어 있는 골로새서 2장 16절의 안식일은 토요일 안식일이 아닌 절기 안식일로 해석하고, 여기 히브리서 4장 9절의 '사바티스모스'(sabbatismos)는 토요일 안식일로 보니, 얼마나 자가당착적인 해석인가. 골로새서 2장 16절을 문법적으로 해석하려면, 히브리서 4장 9절도 문법적으로 해석하여 토요일 안식일이라 해야 할 것이고, 골로새서 2장 16절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려면, 히브리서 4장 9절도 신학적으로 해석해서 안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3. 2300주야 문제에 대하여
1) 1일 1년의 문제
김목사는 역사적 서술의 연대는 그대로 이지만 상징적 예언은 하루를 1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다니엘서 4장의 느부갓네살의 일곱 때 예언을 역시 1일 1년 설에 의하여 계산해서 예수님이 1914년에 오셨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그 꿈의 내용은 모두 상징적인 것이다. 큰 나무, 철과 놋줄로 동이는 것 등 모두가 상징적이다. 그리고 그 연대 역시 예언적인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을 인정하려는가, 아니면 1일 1년 설에 의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일곱 때가 무엇인지 해석해 주기 바란다.
2) 기산점 문제
김목사는 기산점을 457년에 맞추기 위하여 다니엘 9장 25절의 '예루살렘 중건영'은 성전 건축영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 전체를 중건하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김목사가 선지자로 신봉하는 화잇은 성전 건축영이라고 말했으니(대쟁투 합본 366쪽) 누가 옳은가?. 화잇의 말대로 성전 건축영이라고 하면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기 때문에 맞지 않게 된다. 그러나 김목사의 말대로 성 전체를 중건하라는 영이라면, 화잇이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시인하고 성전 건축에 관련된 에스라 6장 14절을 인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조사심판 문제
안식교는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 정결'을 대속죄일의 성소 정결의 의미로 해석하여 조사심판의 교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의 정결은 대속죄일의 정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속죄일에 사용된 정결은 '타헤르'(taher)로서 "이 날에 너희를 속죄하여 정결(taher)케 하리니 너희가 여호와 앞에서 정결(taher)하리라"(레 16:30)고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속죄의 뜻으로 쓰여진 정결(taher)은 민 8:6, 겔 43:26, 레 14:11 등이 있다.
그러나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 정결은, '타헤르'가 아닌 '짜다크'(tsadaq)로서, 대속죄일이나 심판의 의미가 아닌 '복구', '회복'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의 성소 정결을 공동 번역, 현대어 성경 등에서는 '복구'로 번역하였다. 왜 이러한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 정결을, 대속죄일의 정결로 보는지 모르겠다. 안식교의 성경 왜곡 기술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김목사는 1844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를 지지한다는 성경 구절들로, 전 12:14, 고후 5:10, 히 9:27, 행 17:31, 계 14:7, 벧전 4:17 등을 제시했는데, 이 구절들은 안식교가 말하는, 1844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조사심판에 대한 것들이 아니다. 성경 어느 구절이 1844년부터 조사심판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가? 이 구절들은 재림과 함께 있을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4) 다니엘 9장 27절의 잔포한 자 문제
김목사는 70이레의 예언을 안식교의 해석에 맞추기 위하여 본문의 '그'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였다. 이는 안식교의 비성경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그'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인가 살펴보자.
본문에서 '그'는 첫째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정하였으며, 둘째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켰고, 셋째 잔포했으며, 넷째 미운 물건 즉 우상을 세울 것이며, 다섯째 황폐케 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러한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 누구와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정하였는가? 예수님께서 언제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켰는가? 매일 드리는 성전의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후에도 계속되다가, 로마의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잔포한 자였는가? 예수님께서 언제 우상을 세웠는가? 예수님이 황폐케 하는 자인가?
비성경적인 안식교의 내세관
이제 본호의 본론인 내세관 문제를 생각해 보자. 안식교의 내세관은 기성교회와 상반된다. 아니 안식교의 내세관은 영원 지옥을 부인하고, 인간의 육과 영의 분리에 대해서도 부인함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영혼 멸절의 문제와 영원 지옥의 문제를 살펴보자.
A. 영혼은 멸절되고 없어지는가?
안식교에서는 '영혼'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사상과 같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죽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지옥을 부정한다.
기성교회의 주장과는 달리, 육이 죽고 영혼이 살 수 없으며, 인간의 죽음이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는 것도 부인하는 것이다.
안식교의 이러한 주장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하시겠느냐는 논리를 깔고 있다.
이러한 안식교의 주장이 맞는 소리인지 이제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누가복음 8장 55절에 야이로의 딸은 영혼이 떠났다가 영이 돌아오니 곧 살아났다. 사도행전 7장 59절을 보면 스데반이, 육신이 죽으면서 "내 영혼을 받으소서" 라고 기도했다. 육신이 죽을 때 영혼도 함께 없어진다면 어떻게 영혼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도 "내 영혼을 받으소서" 라는 기도를 드렸다. 살아 있는 생명 자체가 영혼이라면 육신의 생명이 끊어질 때 영혼도 없어지는 것인데, 무슨 영혼을 받아 달라는 부탁이 필요하겠는가? 분명히 육신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다.
B. 영원 지옥은 있는가?
영원 지옥에 대해서 안식교는 부정한다. 성경은 분명히 '영원한 불'(마 18:8), '예비된 영영한 불'(마 25:41), '영원한 불의 형벌'(유 7) 등으로 영원 지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안식교는 이러한 본문들에 나오는 '영원한' 이라는 단어가 '아이오니오스'(aionios)로서 한도 끝도 없는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 '세상', 한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영원 지옥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신계훈,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202∼203쪽).
안식교의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영영한(aionios) 불'에 들어가라고 하였고(41절), 역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aionios)생'에 들어가라고 하였는데, 같은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쓰여졌다. 여기에서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한 '세대'나 한 '세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얻을 영생 '아이오니오스'(aionios)도 한 세상으로 끝나는 영생이 되고 말 것이다. '영(aionios)생'이 한이 없는 생명을 말하듯이, '영(aionios)벌'도 한이 없는 영원 지옥을 뜻한다(41절).
또 마가복음 3장 29절에서 성령 훼방죄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했을 때에도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사용함으로, 한 세대나 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의 말씀을 마태복음 12장 32절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따라서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어떤 때는 안식교의 말대로 한 세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했으나, 지옥을 표현할 때의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분명 영원 지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가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한 세대로 해석하여 영원 지옥을 부인하는 것은, 얼마나 성경을 자신들의 선입견으로 보고 있는가를 밝혀 주는 내용들이다.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사용된 구절들을 좀더 살펴보자.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aionios)을 주노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4장 17∼18절에서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aionios) 영광의 충만한 ...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aionios)이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aionios)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했으며,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에서는 "영원한(aionios)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했으며, 디모데후서 2장 10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aionios)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했으며, 히브리서 9장 15절에서는 "영원한(aionios) 기업의 약속을 얻게하려..."라고 했으며,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서는 "영원한(aionios)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라고 했으며, 베드로후서 1장 1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원한(aionios) 나라에 들어감을..."이라고 했으며, 그리고 유다서 1장 7절에서는 "영원한(aionios)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라고 했다. 안식교는 이렇게 많은 성구들을 다 어떻게 하려는가?
만일 안식교의 주장대로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한 '세대'나 한 '세상'으로 해석하여 영원 지옥을 부인하게 된다면, 우리의 구원받은 영생 또한 영원한 것도 아니고, 하늘 나라도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받을 영광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되고 만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깊게 연구하면 알 수 있는 것을, 얼마나 자신들의 교리의 자로 보고 있으면 이런 자가당착적인 실수를 하겠는가? 우리가 받을 영광이 영원한 것처럼, 지옥의 형벌도 영원한 것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정도는 성경 전체의 원문을 면밀히 분석하고 글을 썼어야 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옥을 없애려고 천국의 영원을 한 세대로 바꾸겠는가? 아니면 천국을 살리기 위하여 지옥을 영원한 지옥으로 바꾸겠는가? 신계훈 씨가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는 책에서 그가 말하는 어둠이 빛이고 그가 말하는 빛은 어둠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면상 안식교의 영혼멸절 문제와 지옥 부재설에 대하여 충분한 변증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다음 호에서 다시 취급할 것이다.*
1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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