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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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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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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교회와신앙>측 글에 대한 소견
   토론이나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피차간에 별 소득이 없는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였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성경을 중심으로 목사들이 하는 지상 토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하였으나 역시 토론은 토론임을 깨닫게 된다. "목소리가 고조되었다"는 말에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나, 성경절을 가지고 분명하게 설명해놓은 부분은 제쳐두고, 설명을 위해서 덧붙인 말을 가지고 비평하는 형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매월 주제에 대하여 충분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여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측은 사람들의 견해를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하는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안식일교회의 구원론에 대한 성경적 근거와 설명은 이미 9월호 지면에 충분히 제시되었다. 11월호에서 월터 말틴의 말을 인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미 소개된 대로 월터 말틴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 종교학자이다. 그는 안식일교회의 교리를 장기간에 걸쳐 매우 깊이 연구하였으며, 안식일교리, 영혼문제, 2300주야 등 여러 문제에 대하여 신랄한 비평을 가하였다. 그러나 그의 최종적인 결론은, 안식일교회가 일반 개신교들과 교리상 차이점들이 있기는 하나 정통 기독교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이다.
  본 지상 토론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모든 증거 자료들을 제시하겠지만, 대다수 저명한 학자들의 견해나 세계적인 조류는 안식일교회를 결코 이단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와신앙>측에서는 소수 학자의 견해와 그릇된 정보에 기초한 단편적인 연구를 통하여 내린 결론을 좀처럼 고치려들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기대하는 바도 아니지만, 장로교 통합측은 세계적인 분위기와 흐름을 분명하게 파악해 보기를 바란다.
 
분명한 답변을 기대하는 질문들
1. 안식일이 폐지된 것인가? 안식일은 살아있으나 요일만 변경된 것인가?
  <교회와신앙>측은 11월호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구약에서는 중요하게 지켜졌지만 신약에서는 폐한 것이기 때문에 안식일 준수는 더 이상 강조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 교리의 근본이 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1항 7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일정한 시간을 정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합당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명령을 발하여,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 그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간의 첫째날로 바뀌어졌다. 성경에는 이 날이 주의 날(主日)로 불리워져 있다. 이 날은 세상 끝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부가되어 있다.
"만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율법주의적이라고 한다면, 즉 모세 시대만을 위해서 제정된 의식적(儀式的)인 명령이라고 한다면, 모세 시대 이전의 안식일에 대해서는 설명할 길이 없게 되며, 첫째, 둘째, 여섯째, 그리고 기타의 계명들 또한 의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남은 계명들은 분명히 의식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넷째 계명만을 의식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골든 H. 클락 지음, 나용화 옮김, 장로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1990년판, 262쪽>. 
  이 상반되는 두 내용 중 어느 것이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인지를 밝혀주기 바란다. 그리고 안식일이 폐지되었다면, 십계명이 모두 폐지된 것인지, 안식일 계명만 폐지된 것인지도 분명히 밝혀주기 바란다.

   2. 일요일 예배의 기원을, 좀더 확실하게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밝혀주기를 바란다. 
  <교회와신앙>측은, 주일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자발적인 부활의 기념일이며 예배일로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매우 애매한 주장이다.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 주이트(Jewett)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가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 모든 학자들은 한 가지 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첫 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의 기념일로 축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 사건에다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발생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옛부터 인정되고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요일 예배와 관습이 그 정확한 기원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폴 주이트, 주일의 참 뜻, 옥한음 역, 36>
  이 '이상한 일'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 있기를 바란다.

3. 다니엘 8장과 9장의 2300주야를 장로교회측에서는 어땋게 해석하는가?
이번 호에서 <교회와신앙>측은 안식일교회의 2300주야와 조사심판에 대하여 비평을 할 것이다. 집을 짓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남이 지어논 집에 들어가 흠를 잡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이번호에서 2300주야에 대한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해석이 함께 다루어지기를 기대하나, 혹시 그렇지 못하면 다음호에서 꼭 다루어 줄 것을 당부한다. 상대방의 해석이 틀리다면 바른 해석을 제시해야 마땅한 것이다.

2300주야란 무엇인가?
구약성경 다니엘서에는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2장에서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꿈에서 본 신상을 통하여 세속적인 인간 나라의 역사가 끝나고 돌나라(하나님의 나라)로 종결되는 인류의 역사를 예언하고 있다(2:44). 다니엘 7장에서는 네 짐승과 열뿔, 그리고 작은 뿔의 상징을 통하여 교회와 관련된 세계 역사와 함께,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정체를 밝히면서, 그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날 것을 밝히고 있다(7:26, 27). 그리고 8장에서는 작은 뿔이 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 작은 뿔,  즉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조직적으로 훼방하고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혼란케 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계시 중에 다니엘은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게 된다.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때까지 이를꼬 하매"(단 8:13).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다니엘 8장 14절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은 다시 "이 이상(異像)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단 8:17)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2300주야에 대한 이상은, 이 세상 역사의 끝에 전개될 하나님의 심판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멸망에 관한 것이다.
 
2300주야 해석
  다니엘은 이 이상을 본 후에 수일을 앓았고, 다시 금식 기도를 하던 중,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의 세부적인 면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1. 2300주야의 실제적 기간은 얼마인가?
2300주야(晝夜)는 2300일(日)을 나타낸다. 그러면 묵시 가운데 나타난 2300일은 실제 역사적 기간에서는 얼마나 되는가?
  성경에는 예언에 나타난 역사적 기간을 산출하는데 있어서 1일을 1년으로 환산하는 원칙이 있다. 민수기 14장 34절에는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40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라는 언급이 있고, 에스겔 4장 6절에서는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라고 하였다. 물론 성경의 모든 하루를 1년으로 하라는 말은 아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역사적 서술" 부분이 있고, "상징적 예언" 부분이 있다. 심지어는 다니엘서와 같은 예언서에도 그러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에 대하여  "3년을 기르게 하였"(단 1:5)다든가, 또 그들의 식생활을 "열흘 동안 시험"(단 1:12)한 일이라든가, 느브갓네살 왕이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단 4:16)를 지나겠다는 것은 역사적 서술 부분이므로, 그러한 날들을 1년으로 환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2300주야에 대한 것은 "상징적 예언"에 속하는 부분이므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성소정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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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기초한 이러한 계산법은 안식일교회에서만 사용하는 원칙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대부분 학자들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원칙이다. 안식일교회의 예언 해석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다니엘서  9장 27절의 "한 이레(7일) 동안의 언약"이라는 말을 "7년 계약"이라는 말로 번역해 놓았다.
그러므로, 2300주야라는 기간은 실제 역사에는 2300년에 해당하는 것이다. 
2. 2300주야는 언제 시작되는가?
"2300주야 까지니"라는 말에는 반드시 그 시작점을 말하는 "부터"가 나와야 해석의 실마리가 잡히는 것이다. 
다니엘 9장 24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300주야 기간 중에 유대인을 위한 기간이 70이레로 정해졌다.

▷- - - -  유대인을 위한 기간 - - -◁
어떤 사람들은 그 70이레와 2300주야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다니엘에게 전하기 위하여 내려온 가브리엘이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3)고 말한 것을 보아, 분명히 직전에 보았던 2300주야에 관한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면 2300주야의 시작점이 될 유대인을 위한 기간은 언제 시작되는가?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9:25).
  유대인을 위한 기간, 즉 2300주야의 시작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1) 예루살렘 중건 명령은 언제 내려졌는가?
구약 성경 에스라를 보면, 예루살렘 중건 명령이 다음과 같이 세 번 내려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보완 관계에 있음 을 보게 된다.  
① 주전 537년 : 고레스의 조서(에스라 1:1∼4; 5:13; 6:3; 역대하 36: 22, 23).
② 주전 520년 : 다리오의 조서(에스라 6:1,8∼11).
③ 주전 457년 : 아닥사스다의 조서(에스라 7:7∼26).
  위의 세 가지 조서 중에서 어느 것이 다니엘 9장 25절에 해당하는 중건 명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위의 명령은 예루살렘 성전 중건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 전체를 중건하는 일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건령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위하여 정해 주신 기간이므로 유대인들에게 행정적 자치권이 부여된 이후라야 하는 것이다.

   ① 고레스가 조서를 내렸을 당시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의 인도로 유대인들 42000여 명이 귀환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한 70년간의 포로 생활이 일단 끝난 것이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우선 성전 건축에 착수했으나, 사마리아인과 주변 이방인들의 방해로 완성을 보지 못했다. 
   ② 다리오 Ⅰ세(522∼486 BC)의 조서는, 유대 지도자들의 요청에 의해 고레스의 조서를 확인한 후(스 6:1∼12) 공사 재개를 위해 조서를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주전 516년에 중건 공사를 끝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예루살렘 성 전체를 복구하는 일이나 정치, 행정, 종교의 완전한 자치권은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③ 아닥사스다(465∼423 BC)의 조서(스 7:17, 12∼26)는 예루살렘과 유다에 행정적 자치권을 부여하는 명령이었으며, 이로부터 유대 민족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신정 체제의 자치(自治)를 실시하게 되었다. 신앙과 정치의 회복을 이루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귀환령과 함께 돌아온 에스라와 그 일행은 성읍을 건축하고,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는 일을 계속하여, 성전이 아닌 성읍 재건을 마무리하게 된다(스 4:12, 13 참조). 

  그렇다면, 유대인을 위한 70이레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주전 457년 아닥사스다가 내린 조서에 의한 것임이 확실하다.

3.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의 출현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단 9:25).

457 BC 예루살렘 중건령

457 BC          408 BC                             27 AD(메시야 출현)
주전 457년으로부터 일곱 이레(49년)가 지나면 주전 408년이 되고, 408년에서 다시 62이레(434년)가 지나면, 주후 27년이 된다. 
▶ 질문1 : 434년에서 408년을 빼면 26년이 되는 것이 아닌가?
▶ 대답1 : 수자에는 영(0)이 있기 때문에 직접 빼면 정답이 나오지만, 연대에는 영(0)년이 없기 때문에 뺀 후에 1을 더해 주어야 정답이 나오게 된다. 
▶ 질문2 : 그러면 주후 27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가 일어났는가?
▶ 대답2 : 예수께서 만 30세 되시던 해인 주후 27년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나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시어,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로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셨다. 
 
▶ 질문3 : 예수의 탄생으로 서력 기원이 시작되었다면, 예수님의 나이가 만 30이 되는 해는 서기 31년이 되어야 하는데 왜 27년이며 4년의 차이는 무엇인가?
▶ 대답3 : 서력기원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즉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나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로마의 건국 연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예수님 탄생 이후 약 520년이 지난 후, 엑시구스라는 학자가 매년 돌아오는 부활절 축제일 날자를 미리 계산하다가, 예수님 탄생을 1년으로 하면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예수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연대가 만들어졌는데, 예수의 탄생을 로마건국 연대 754년으로 보고 그 해를 서기 1년으로 시작한 것이다.
  약 700여 년이 지난 서기 1200년경 로저 베이컨이라는 학자가 도서관에서 옛 역사를 연구하던 중, 예수님 당시 헤롯 왕이 로마 건국 연대로 750년에 죽은 기록을 발견하였다. 그렇다면, 예수 탄생은 로마 건국 754년이 아니라 750년이 되는 것이고, 그 동안 사용하던 역사적 연대에 4년의 차질이 생겨 매우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연대를 그대로 두고 예수의 탄생을 주전 4년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주전 4년에 탄생했다면 서기 27년에 만 30세가 되는 것이므로, 2300주야 기간 중에 포함된 메시야의 출현 예언은 매우 정확한 성취를 이룬 것이다.

4. 메시야의 죽음과 예루살렘의 멸망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유대인을 위하여 정해진 70이레 중에 7이레와 62이레, 즉 69이레가 지난 후에는 그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고, 예루살렘 성(城)도 멸망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면 그 메시야의 죽음은 언제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까지 지상의 성소에서는 수많은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짐승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었다. 그 제사와 예물이 언제 끝이 났는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7).
  위의 성경절에서 '그'가 누구인가? 이전 성경절 중에서 나온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거나 "한 왕의 백성"일 것이다. "한 왕의 백성"이라는 말 에서 주체는 "백성"이지 "한 왕"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백성'을 받는 대명사일 수가 없고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그 이레(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것은 무슨 뚯인가? 우선 70이레 중에서 남아 있던 한 이레의 절반이 언제인지 아래의 도표를 살펴보자.

    457 BC          408 BC                         27 AD      31       34
 
  나머지 한 이레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은 서기 31년이다. 서기 27년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로서 사역을 시작하신지 3년 반이 되는 서기 31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제사를 계속 드려오던 성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 51).
  예수께서 운명하시던 순간,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다. 성소 제도와 제사가 끝난 것이다.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에물을 금지"할 것이라는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이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한 이레"를 따로 떼어서, 지상 역사의 마지막에 두고 휴거로 시작되는 전 3년반 환란과 후 3년 반 환란 기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우선 연속되는 기간 70이레 중에서 한 이레를 따로 떼어서 아무 성경적 근거도 없이 멀리 밀어낸 것도 문제이며, 1일 1년 원칙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 이레(7일)를 7년으로 계산하는 것도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유대인을 위해서 따로 정해진 70이레는 어떻게 끝이 났는가? 위의 도표를 보면 70이레는 서기 34년에 끝이 난다. 서기 34년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것이 70이레의 종결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사도행전 7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경건한 집사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순교 사건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본격적인 핍박이 시작된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1, 4).
  서기 34년에 있었던 스데반 순교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넘어 다른 민족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육적 이스라엘을 위해 정해진 70이레 기간(490년)은 끝이 나고 영적 이스라엘, 즉 교회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후 서기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과 그 군대들에 의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되고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1948년 독립하기까지 길고도 고달픈 유랑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2300주야의 종결과 성소정결의 의미
그러면, 예루살렘 중건령과 함께 시작된 2300주야(년)는 언제 마쳐지는가? 이미 언급한 대로 영(0)년이 없는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주전 457년에 시작된 2300주야는 주후 1844년에 마쳐지게 된다(2300-457+1=1844).

     457 BC    유대인을 위한 기간     34 AD                           1844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다니엘 8장 14절의 말씀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2300주야가 끝나면 "성소가 정결하게" 되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구약의 성소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한된 지면에 성소 문제를 충분히 다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본적인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매일 드리는 제사 - 성소의 주요 기능은 제사이다. 제사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또 한 가지는 해마다 드리는 제사이다. 매일 드리는 제사는 제사장이 날마다 정한 시간에 드리는 상번제와 백성들이 속죄를 위해서 드리는 번제들이 있다.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레 6:12, 13). 
제사를 드릴 때에는 제물을 태우는 일과 함께 제물의 피를 받아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에 피를 뿌리는 의식을 행하게 된다. 사실상, 속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레 4:4, 14, 15, 24, 29)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성소의 장(帳) 앞에 일곱 번을 뿌리"(레 4:5-7, 16-18, 25)는 의식을 거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휘장은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뿌려지는 피 때문에 항상 더럽혀져 있는 것이다.  
2. 해마다 드리는 제사 - 이와 같이 더럽혀진 상태를 1년에 한 번씩 정결케하는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1년에 1차 드리는 제사이다.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의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년 일차 속죄할 것이니라"(레 16:33, 34).
일년 일차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날은 7월 10일 대속죄일이다. 이 날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1년간 성소로 옮겨진 온 이스라엘의 부정과 지성소와 회막과 번제단을 정결케하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레 16:16∼19).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회개하지 않은 죄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어(심판하여) 진밖에서 돌로 쳐 죽임으로 백성 중에서 끊어버리는 일을 하였다.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부정한 자들을 가려내는 일을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2300주야가 마쳐지면서 성소가 정결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조사 심판의 의미와 시작
  2300주야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성경에도 없는 [조사 심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부터 문제를 삼는다. 그런 논리로 하면, [삼위일체]라는 말이나 [칭의]라는 말이나 다 성경에 직접 언급된 용어가 아니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용어는 성경의 개념을 정리하여 만든 성서적 단어들이기 때문에 ,용어 자체를 가지고 문제를 삼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조사심판]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양과 염소, 혹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내는 성경에 나타난 심판의 개념을 하나의 단어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용어를 [재림전 심판]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심판 개념은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①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모든 것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며 행한대로 갚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② 심판의 시기가 정해져 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 14: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그리스도의 성소 사역과 조사 심판
  2300주야가 종결되면서 시작되는 조사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욥 34:23)기 때문에 심판에 긴 시간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성소 정결이 이루어진 1844년 이후로는 언제라도 예수께서 재림하실 수 있는 시기이며, 지금의 이 시기는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유예 기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조사 심판 개념은 성소 제도와 직결되어 있다. 성소에는 죄인이 어떻게 죄를 해결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함께 살게 되는지에 관한 인간 구속의 원리가 명백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지상 성소의 제사장의 봉사를 통해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찾아낼 수 있다. 
  지상 성소에 있어서 제사장의 봉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뜰에서의 번제단 봉사와 성소에서의 중보 사업, 그리고 지성소의 심판의 국면을 들 수 있다.
  하나의 모형으로 진행되던 성소 봉사는 성소의 실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실제적인 국면이 전개된다. 
① 예수님의 뜰(번제단) 봉사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② 예수님의 성소 봉사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 12).
③ 예수님의 지성소 봉사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이미 언급한 대로 성소의 정결은 지성소 봉사, 즉 심판의 국면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속 사업을 위하여 마련된 성소의 원형, 즉 하늘 성소에서 지성소의 봉사를 수행하고 계시며, 조만간 지성소 봉사를 마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데려가시기 위해 재림하실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1∼13).


1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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