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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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6(97년 1월호)
--2300주야와 조사심판--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화잇이 만든 조작물이다
지난호의 글에 대한 반증
1. 조용기 목사 문제에 대하여.
이런 무익한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김대성 목사는 '이단'이란 말과 '사이비'란 말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김목사가 모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예장 통합측에서 순복음교회를 사이비성이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런 중요한 논쟁에서 모르면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 그리고 이단이라고 한 번 규정하면 절대로 해제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안식교가 이단인 점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 시 말해 둔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네가 악하다고 내가 선하다는 증거가 아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도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모순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통합측의 조용기 목사에 대한 사이비성 결의와 해제는 신중하지 못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김대성 목사 자신은, 그보다 더 신중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누가 주도했는지는 몰라도 안식교에서는 김대성 목사와 함께 <기독저널>의 이흥선 씨를 초청해 안식교가 이단이 아니라고 확인하는 집회를 했으니 말이다.
이흥선 씨는 처음에는 - 그렇게도 한국교회의 이단연구가 신중하지 못하다며 소위 '재검증' 작업을 하던 중에 -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맹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다가 이제 안식교를 이단이 아니라고 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준의 한 개인의 처사는 신중하고 통합측의 처사는 신중하지 못하다고 보는 안식교 측의 기준은 무엇인가? 통합측에서는 안식교를 이단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신중하지 못하고, 이흥선 씨는 안식교를 이단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신중한가?
안식교인들은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 씨를 이단이라고 보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이흥선 씨는 김기동 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누구의 '잣대'가 옳은가? 이흥선 씨가 안식교를 이단이 아니라고 보는 그 자만 옳고, 김기동 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그 자는 틀렸는가? 이제 안식교는 이단을 보는 척도를 이흥선 씨의 자에 맡겨 김기동 씨도 이단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2. 화잇의 빗나간 예언들에 대하여.
필자는 화잇이 했던 예언 중에 빗나간 계시 몇 가지를 소개함으로 화잇이 거짓 선지자인 것을 증명했다. 이에 대하여 안식교측은 화잇의 원래 문장이 그렇지 않다고 변증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호에 안식교 측이 반증한 몇 가지 예언들에 관해 재반증을 하려고 한다.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대성 목사는 참 선지자에 대한 성서적인 기준으로 ① 성경 말씀에 맞아야 하며, ② 말씀이 실제로 응해야 하며, ③ 생활에 있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있어야 하며, ④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인정해야 한다는 네 가지를 제시했는데, 사실 필요충분한 기준을 제시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예언 성취 여부에 따라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다는 김대성 목사의 전제를 그대로 인정하며 본 논쟁을 시작하겠다. 필자가 볼 때는 김대성 목사의 변증은, 오히려 화잇이 거짓 선지자임을 더 명확하게 밝혀 주었다고 본다.
먼저 김목사에게 부탁이 있다. 이 논쟁 후에도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을 하기 원한다면 그가 말하는 원문을 충분히 밝혀 주기 바란다.
1)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하여.
화잇은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노예제도가 없어짐으로 화잇의 예언은 빗나가게 되었고 화잇은 거짓 선지자가 된 것이다. 필자가 이 부분에 대하여 비판하자 안식교 측에서는 화잇의 노예제도 예언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킨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서 예언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더라도 화잇의 예언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화잇의 노예 제도에 대한 예언이 한 곳에만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김목사의 말처럼 조건을 붙여서 예언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화잇이 노예제도에 대하여 어떻게 예언하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다음의 글을 통하여 확인해 보자. 다음의 글은 안식교인들에게 현재도 널리 읽혀지고 있는 것으로 안식교의 출판사인 시조사가 번역 발행한 <화잇의 초기문집>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나는 노예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무지 가운데 가두어 둔 노예들의 영혼들에 대하여 책임 져야 할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노예들의 죄악들이 주인에게 전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지 가운데서 타락하여 하나님과 성경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으며 주인의 채찍밖에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짐승보다도 더 낮은 수준에 있는 노예들을 하늘에 들이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심 많은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실 것이다. 반면에 주인들은 마지막 일곱재앙을 만날 것이며 둘째 부활에 다시 일어나 고통을 받다가 마지막 비참한 죽음을 당하여야 할 것이다"(엘렌 지 화잇, 시조사, 초기문집 p.283).
이 글에서 화잇은 크리스천으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무서운 두 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 문제는, 무지한 노예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반인과 달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히는 점은 노예들의 죄는 주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잇의 주장은 노예에게는 부활도 천국도 없다는 말인데 무엇을 평가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점에 대하여 김목사는 대답해 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 문제는, 이 예언대로 한다면 노예제도가 일곱 재앙이 내릴 때까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식교에서 말하는 일곱 재앙은 말세의 재림 직전에 있을 계시록의 7재앙을 말하는 것인데, 아직도 안식교에서 말하는 일곱 재앙은 내리지 않았다. 화잇은 이 예언에서 노예의 주인들이 일곱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으니, 이 예언이 성취되려면 일곱 재앙이 내릴 때까지 노예의 주인들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고 당시의 노예의 주인들도 다 죽었으나 아직 일곱 재앙은 내리지 않았으니 화잇의 예언은 빗나간 것이다. 화잇은 어떤 조건을 붙여서 예언한 것이 아니다. 화잇은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갈 것이라는 확신 하에 그런 예언을 한 것이다.
그러니 김목사는 원문을 인용하여 이렇고 저렇고 하느니 차라리 '화잇의 말은 성경이 뭐라고 하던지 사실이 어떠하던지 상관없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2) 살아서 재림을 맞을 사람들에 대한 예언.
1856년에 안식교 대총회에서 화잇은 그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살아서 재림을 맞이할 사람들이 있다고 예언했다. 이 점은 김목사도 인정했다. 실질적으로 김목사는 그 예언이 틀렸다고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김목사는 두 가지 점을 들어 빗나간 예언이 아니라고 했다. 첫째는 화잇이 그 대표자들의 순종을 조건으로 한 예언을 했다는 점이요, 둘째는 재림은 미래적인 것이지만 현재적인 것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바울도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이러니 화잇의 예언이 잘못되었다면 바울의 예언도 빗나간 것이냐고 반문하였다.
김목사의 말은 다음과 같이 잘못되었다.
첫째, 우선 대표자들의 순종을 조건으로 한 예언이란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잘못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대표자들의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말이 웬말인가? 몇몇 사람의 순종이 예수님의 재림을 결정한다는 말인가? 이런 사탄적인 소리도 있는가?
둘째, 몇몇 사람의 순종을 조건으로 한 예언이란 말과, 바울의 재림론을 동시에 인용하여 화잇의 거짓 예언을 변증하는 것이 모순된다. 화잇의 예언이 바울의 재림론으로 합리화될 수 있다면, 순종을 조건으로 재림이 결정된다는 말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주 강림 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 4:15)는 말은, 바울이 재림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다. 이 구절은 단지 재림을 고대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화잇의 예언은 자신이 재림을 고대한다는 말이 아니며, 계시 중에 이 총회에 있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일곱 재앙을 만나고 더러는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가 있다는 계시였다.
그리고 김목사처럼 바울의 말을 화잇의 거짓 예언을 합리화하는 말로 인용한다면, 시한부종말론도 잘못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밀러의 1844년의 재림주장은 잘못되었다고 하는가?
셋째, 화잇의 예언의 본래 뜻은 김목사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화잇의 말을 인용해 보자. 김목사의 말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이 총회에 출석한 무리들을 보았다. 천사는 말하되 더러는 인내의 밤이 되고 더러는 마지막 일곱 재앙의 대상이 되고 더러는 살아서 지상에 남아 있어서 예수께서 오실 때에 변화하게 될 것이다"(MWHC. p.102).
화잇은 그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더러는 인내의 밤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인내의 밤이 되기도 전에 다 죽었고, 더러는 일곱 재앙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일곱 재앙이 내리기도 전에 다 죽었다. 또 살아서 재림을 맞아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다 죽었다. 한 마디로 화잇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다. 재림이 연기되었다는 김목사의 말은 하나님께서 연기될 것을 모르셔서 화잇에게 잘못된 계시를 주셨다는 말이 되고 만다. 즉 하나님께서 실수를 하셨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3) 천체에 대한 계시.
화잇은 계시 가운데 목성과 토성, 천왕성 등을 보았는데 목성에서 네 개의 달들을 보았다고 했으며 토성에서 일곱 개의 달들을, 천왕성에서 여섯 개의 달들을보았고 토성에서 주민들을 보았는데 키가 크고 위엄있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곱 개의 달을 가진 별(토성)에서 에녹을 보았다고 하였다(A Word to The little Fock p.22, The Great Second Advent Movement. pp.260-261). 그런데 최근의 천문학은 목성과 토성은 화잇이 본 것들보다 더 많은 달들을 가지고 있음을 발표하였다(목성은 12개, 토성은 10개로 밝혀졌다). 화잇은 당시의 미개한 천문학에서 배운 대로 계시를 보았던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화잇의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 거짓 선지자의, 사단의 계시가 분명하다고 비판하자 김목사는 이에 대하여 변증하기를 화잇이 계시를 볼 때 주위 사람들이 목성 또는 토성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지 화잇이 직접 별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김목사의 말에 의하면 화잇을 거짓 선지자로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 화잇의 계시를 각색한 것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김목사의 말대로 화잇이 계시를 볼 때 옆에서 "이는 목성이다! 토성이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바로 화잇의 남편이었던 화잇 장로였고, 또 한 사람은 제1차 재림 총회 발기인이었고 안식교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죠셉 베이츠(Joseph Bates)였다. 특히 화잇의 남편인 화잇 장로는 화잇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만일 이 사람들이 계시를 잘못 이해하고 말한 것이었다면, 계시를 본 화잇이 바로 이를 수정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화잇의 승인을 얻었기에 공식적으로 그 말을 발표했던 것이요, 그에 대하여 화잇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잇의 남편이요 대변자격인 화잇 장로는 1847년에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난해 11월 톱샴(Top sham)회의에서 엘렌(자기 부인 화잇을 의미함: 필자주)은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세계들에 관한 묵시를 보았다. 그는 여러 유성들에 가 보았는데 목성, 토성 그리고 또 하나에 갔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상으로부터 깨어난 후에 그는 각 별들의 위성에 대하여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A Word to The little Flock p.22).
또 1891년 1월 27일 현장의 목격자인 트루스데일(M. Truesdall)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가 목성의 달들을 큰 목소리로 센 다음에 이어서 토성의 달들을 센 후에 토성의 허리띠(rings)의 아름다운 모양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주민들은 키가 크고 위엄 있는 사람들로서 지구의 주민들과는 아주 다르다. 죄가 이곳에 들어온 일이 없었다' 라고"(The Great Second Advent Movement. pp.260∼261).
이와 같이 현장의 목격자이며 화잇의 대변자격인 사람들이 발표한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에, 비록 화잇이 직접 발표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화잇이 이를 정정하지 않은 것이다. 화잇이 이에 대하여 정정하지 않았던 만큼, 이는 화잇의 말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만의 하나, 자기 남편이나 트루스데일(M. Truesdall)부인이 화잇의 계시를 잘못 이해하였거나 잘못 발표한 것이라면 그가 마땅히 밝혔어야 했을 것이다.
잘못된 줄 알고도 수정하지 않았다면 화잇은 인격적으로도 거짓된 사람이란 말이요, 남편이기에 잘못을 시정하지 않았다면 인정이 하나님의 계시보다 앞선다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선지자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화잇이, 어떻게 잘못 전달된 계시를 그냥 두고 볼 수 있다는 말인가?
또 화잇은 자신의 말로 유성들(Planets)에 가 보았다고 하였다. 유성이란 태양계를 도는 천체를 말하는데, 태양계에 네 개의 위성, 일곱 개의 위성을 가진 별이 있는가? 토성과 목성외에 무엇인가? 화잇의 유성 계시는 당시의 미개한 천문학에 근거하여 목성과 토성에 대한 것을 계시로 본 것임에 분명하다(미국 남북전쟁에 관한 화잇의 빗나간 예언에 대하여는 지면 관계로 다음에 비판할 것이다).
안식교의 조사심판 교리는 성경적인가?
조사심판 교리는 기성교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지만, 안식교 교리의 기초요, 큰 기둥이 되는 것으로서,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식교의 교리 중 가장 큰 성경적인 오류 중 하나는, 소위 2천 3백 주야와 조사심판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조사심판 교리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1844년 10월 22일까지는 하늘 성소에 계시다가, 그날에 드디어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고, 그때부터 그곳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조사하고 계신다는 교리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들어보지도 못한 1844년 10월 22일인가? 그것은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재림을 주장했던 밀러라는 사람의 시한부 재림 운동이 거짓임이 밝혀지자, 실패한 그 재림 운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화잇이 교묘히 만들어 낸 교리이기 때문이다.
이 교리를 주장하기 위한 성경 구절로는 다니엘서 8장 14절의 2천 3백 주야의 예언이다. 안식교는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2천 3백주야(일)를 2,300년으로 계산하고, 계산의 기산점을 주전 457년으로 잡고, 거기에다 2,300년을 더하니까 소위 1844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식교의 핵심이 되는 2천 3백주야 문제, 즉 조사심판 교리는 시한부종말론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부정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인가?
1. 연대 계산이 잘못되었다.
예언의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것은 성경에 근거가 없는 오류이다. 안식교에서는 "예언의 하루라고 한 것은 1년을 상징한 것임을 알았다"(민 14:34, 겔 4:6)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오류이다. 예언의 1일을 1년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성경적 근거가 없다.
안식교는 민수기 13장 34절과 에스겔 4장 6절을 성경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본문들의 내용은 예언의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라는 뜻이 아니다. 민수기 14장 34절은 이스라엘 정탐꾼이 땅을 탐지한 날수대로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할 것을 말한 것이지 ,예언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또 에스겔 4장 6절도 이스라엘이 범죄한 날수대로 에스겔 선지자가 1년을 1일로 계산하여 고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키고 있지만 ,그것이 예언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라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성경의 어느 곳도 예언의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라고 언급한 곳이 없다.
2) 성경의 어느 예언도 1일을 1년으로 계산되어 성취된 것이 없다.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성경에 이미 성취된 예언들도 '1일=1년'으로 해석하는 원칙에 따라 1일이 1년으로 성취된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예언의 모든 연대의 성취는 1일을 1년으로 성취된 사실이 없다.
실제 성경의 예언과 성취를 살펴보자. 홍수 직전의 7일간과 40일의 강우예언(창 7:4)은 1일을 1년으로하여 성취되지 않았고 실제 40일간의 홍수로 성취되었고, 아브라함 자손의 400년간의 유리표박 예언(창 15:13)에서도 1일을 1년으로하여 성취되지 않고, 떡 맡은 관원장,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의 3일간(창 40:12-20)의 예언도 실제 3일에 성취되었으며, 바로의 7년간의 기근 예언(창 41:25-31)도 1일은 1년이 아닌 7년간으로 성취되었으며, 70년간의 포로 기간의 예언도(렘 25:11) 실제 70년이었다.
성경의 어느 예언도 1일이 1년으로 계산되어 성취된 것이 없다. 누가 예언의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라고 했는가? 안식교의 모순을 살펴보자.
안식교는 다니엘서 4장 16절의 '일곱 때'의 예언은 7년으로 해석하면서 다니엘서 7장 25절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반으로 계산하지 않고 1,260년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일곱 때도 2,520년으로 계산을 하던지, 아니면 "한 때, 두 때, 반 때"를 3년 반으로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겠는가?
2. 기산점이 잘못되었다.
안식교는 2천 3백 주야와 70이레의 예언의 기산점을 에스라 7장의 아닥사스다 왕이 명령을 내린 기원전 457년으로 잡는다. 이것은 아닥사스다가 내린 명령(스 7, 457년)의 시기를, 예루살렘 성전 중건의 역사 속에, 다니엘 9장에 예언된 예루살렘 중건영의 시기로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식교의 해석을 안식교 선지자 화잇 부인의 글을 통하여 먼저 확인해 본다.
"그러나 에스라 6장 14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건축되었다고 하였다. 곧 최초로 조서를 내리고 다음에 이를 계승하고 또는 이를 완결한 세 왕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낙성되었은즉 세 번째 조서를 내린 때로서 2천 3백 년의 기점을 삼는 것은 예언의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조서가 내린 서기전 457년을 기산점으로 잡는 때에는 70주일에 관한 예언에 포함된 모든 사건이 다 성취된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화잇, 대쟁투 합본, p.366).
이와 같이 안식교는 세 번의 성전 건축영 중에, 에스라 7장의 세 번째 아닥사스다의 건축영(기원전 457년)으로 성전이 완공되었으므로, 2천 3백 주야의 기산점을 기원전 457년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A.D. 457년을 기준으로 하여 2천 3백주야에서 나온 2,300년을 더하여 1844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토록 중요한 2천 3백주야 문제가, 그 기산점부터 잘못된 점을 살펴보자.
1) 예루살렘 성전은 서기전 516년에 완공되었다(스 6:15-18).
안식교의 선지자 화잇은 기원전 457년에 아닥사스다가 내린 영으로 성전이 낙성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의 성전중건 역사를 살펴보면, 성전은 다리오왕 육 년 아달월 삼일(주전 516년)에 분명히 완공되었다(스 6:15-18). 즉 안식교가 말하는 성전 중건영이 내린 해인 기원전 457년보다 ,59년 전인 기원전 516년에 이미 성전은 완공된 것이다. 화잇의 명백한 오류이다.
2) 안식교가 말하는 예루살렘 중건영 에스라 7장 즉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예루살렘 중건영이 아니다.
안식교는 2천 3백 주야의 기산점을 에스라 7장의 아닥사스다의 영으로 주장하고 있다. 즉 이 명령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 중건영도, 성읍 중건영도 결코 아니다. 누구든지 성전 건축령이라고 하는 에스라 7장을 읽어보라.
그 내용 자체가 성전 건축령(예루살렘 중건영)이 아님을 확일할 수 있다. 아닥사스다(주전 457년)의 조서는 성전 건축령이 아니고, 이미 중건된 예루살렘에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영'인 것이다. 예루살렘의 중건영은 에스라 1:1-4에 기록되어 있다.
다음의 예루살렘 중건의 역사를 살펴보면 안식교의 오류를 쉽게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중건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 기원전 536년 예루살렘 중건영(고레스 원년, 스 1:1).
◇ 기원전 535년 성전 건축 중단.
◇ 기원전 520년 재차 중건영(다리오 2년, 스 4:24, 6:11).
◇ 기원전 516년 성전 완공(다리오 6년, 스 6:15-18).
◇ 기원전 458년 에스라 귀환영(아닥사스다 7년, 스7:7).
◇ 기원전 445년 성벽 건축령(아닥사스다 20년, 느 2:1).
◇ 52일만에 완공(느 6:15).
사실 주전 516년에 이미 성전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안식교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다 보면 화잇이 거짓 선지자가 되고 안식교의 모든 교리가 흔들리게 되니까 다음과 같은 임기응변적 변명을 하게 되었는데, 살펴보자.
안식교의 학자인 신계훈 씨는 그의 안식교 변증서에서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
"기억할 것은 파괴된 예루살렘의 성전의 재건영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城)과 거리 등을 포함한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영임을 본문에서 확인해야 한다"(신계훈,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p.406).
신계훈 씨는 안식교의 교리적인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재빨리 성전 건축령이 아니고 ,성읍 재건영이라고 변명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가 살아 생전에 현재의 안식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우필원 목사의 입장과도 같다. 이는 오히려 안식교의 모순된 교리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안식교의 창시자인 화잇은 성읍이란 말은 아예 하지 않았으며, 분명히 성전 건축령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음 화잇의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그러나 에스라서 6장 14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이(성읍이라고 하지 않았다: 필자 주)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건축되었다고 하였다. 곧 최초로 조서를 내리고, 다음에 이를 계승하고, 또는 이를 완결한 세 왕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낙성되었은즉, 세 번째 조서를 내린 때로서 2천 3백년의 기점을 삼는 것은 예언의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화잇, 대쟁투 합본, p.366).
"성전의(역시 성읍이 아니다: 필자 주) 중건 봉사에 관한 칙령은 세 차례에 걸쳐서 내려졌다. 그러나 그 명령이 지시한 일은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이 반포되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 기간의 인정이 기원전 457년에 비롯한다는 것을 안다"(성서기초교리, p.208).
이와 같이 화잇이 성전이라 했으니, 화잇을 인정하면 안식교의 변증자 신계훈 씨의 변증은 변증으로서의 가치가 없게 된다. 즉 안식교인에게 이렇게도 중요한 교리에서 화잇을 기준으로 하면, 그렇게도 기성교인들을 미혹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신계훈 씨의 변증서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는 가짜가 된다. 그러나 반면에 만일 신계훈 씨의 주장을 인정하면, 화잇 부인을 스스로 거짓 선지자로 만드는 것이 되고 만다. 안식교인들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에스라 7장의 조서 내용을 누구든지 직접 읽어보라. "거리 성읍 등을 포함한 성읍 재건영"이라는 흔적은 아무데도 없다.
3) 연대 기산점을 성전 건축령으로 해도 모순되고, 성읍 재건영으로 해도 모순된다.
안식교 목사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누구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김대성 목사도 어떤 주장을 할지 모르겠다. 안식교인들은 다니엘 9장의 예루살렘 중건영을 성전 건축영으로 보기도 하고, 성읍 재건영으로 보기도 한다. 필자가 안식교의 연대 기산점 기원전 457년의 모순을 지적하자, 안식교 목사 신계훈 씨는 다니엘서의 예루살렘 중건영은 성전 건축령이 아니고 성읍 재건영이라고 주장했고, 고인이 된 우필원 목사도 같았다.
그러나 같은 안식교의 목사인 김상래 씨는 또 위의 사람들과는 달리 성전이나 성읍 재건영이 아니고, 성전과 성읍 재건영이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는, 전에는 화잇에게서도, 신계훈 씨에게서도, 우필원 씨에게서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말을 했다.
김상래 씨의 말을 들어보자.
"위에서 살핀 것을 요약하면, 이 '예루살렘 중건영'은 '예루살렘 회복과 건축령'이 된다.
그러면 이 '예루살렘'의 범위는 어떻게 되는가? 성전만인가? 성읍만인가? 이것은 예루살렘이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될 때의 상태를 살펴보면 그 범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파괴된 것을 회복하고 건축하라 했으니 무엇이 파괴된지를 알면 그 범위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열왕기하 25장 8-1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빈천한 국민을 그 땅에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이 때 파괴된 것은 '성전, 왕궁, 성읍' 등 모든 예루살렘 도성내 건축물뿐 아니라 그 국민의 자치권마저 파괴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중건영'은 이 파괴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성전, 성읍, 왕궁, 자치권'이 모두 '회복되고 재건되는 영'이어야 한다"(김상래, 또 기록되었으되, p.199).
그런데 또 화잇의 이론을 따라 쓰여지고 안식교 한국연합회에서 발행한 <성서기초교리>에서는 분명히 성전 중건영이라고 주장하였다.
"성전의 중건과 봉사에 관한 칙령은 세 차례에 걸쳐서 내렸다. 그러나 그 명령이 지시한 일은 아닥사스다 왕의 명령이 반포되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 기간의 인정이 기원전 457년에 비롯한다는 것을 안다"(성서기초교리, p.208).
이와 같이 같은 안식교 안에서도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러면 과연 안식교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안식교가 말하는 예루살렘 중건영은 성전에 대한 것인가, 성읍에 대한 것인가?
그토록 중요한 교리에, 왜 이토록 각기 다른 주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누구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해야 할까? 그것은 당연히 안식교 선지자 화잇의 주장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화잇의 주장은 또다시 살피더라도 분명히 성전을 말하고 있다.
"에스라서 제7장에 이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곧 서기전 457년에 바사왕 아닥사스다로 말미암아 포고된 조서는 그 가장 현저한 것이다. 그러나 에스라서 제6장 14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바사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건축되었다고 하였다. 곧 최초로 조서를 내리고 다음에 이를 계승하고 또는 이를 완결한 세 왕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낙성되었은즉, 세째번 조서를 내릴 때로써 2천 3백년의 기점을 삼는 것은 예언의 당연한 요구일 것이다"(화잇, 대쟁투 합본 p.366).
이와 같이 화잇은 분명히 성전 건축령이라고 말했고, 화잇이 인용한 에스라서 6장 14절의 본문 자체가 기원전 516년의 성전 봉헌식에 성전 건축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3. 1844년과 조사심판 교리가 잘못되었다.
안식교는 2천 3백 주야의 예언의 끝을 1844년으로 해석하여, 그때부터 조사심판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때에야 비로소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성소 봉사, 즉 조사심판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안식교는 "이 해는 곧 주후 1844년이니 하늘 성소가 깨끗하여 지기 시작한 해이다. 예수께서 1844년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사 조사심판을 시작하셨다"고 하였다.
안식교의 이 교리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면,
첫째는 예수께서 1844년까지 하늘 성전의 성소에 계시다가 1844년에야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것이며,
둘째는 1844년 이후 예수께서는 하늘의 지성소에서 성도들의 죄를 일일이 조사하는 조사심판을 하시는 중이라는 것이다.
기성교인들에게는 생소한 이 교리가 안식교의 기둥같은 교리인 것이다.
이 교리의 오류에 대하여 다음의 몇 가지로 반증해 보자.
첫째, 이 교리는 성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화잇의 환상에 근거하였다.
이 교리는 2천 3백 주야의 잘못된 해석과, 화잇의 환상에 근거하여 주장되는 교리로서,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신구약 성경을 망라하여도, 1844년에 예수께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이나 조사심판이라는 말은 한 군데도 없다. 다만 화잇이 만들어낸 교리일 뿐이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 즉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안식교는 1844년에 예수께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하나,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1844년에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승천 즉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명백히 기록되었다. 살펴보자.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이 본문에 나오는 성소는 지성소를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이미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에서는 지정소라고 번역하였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예수께서 승천 즉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1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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