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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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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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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5(96년 12월호)
--주일성수문제--
안식교의 안식일 개념은 율법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전 호에 대한 변증
1. <교회와신앙> 측의 목소리가 고조된 느낌을 주며, 논쟁의 내용에 대한 일체의 결론은 독자의 판단에 의해 내려질 수 있도록 하라는 말에 대하여.
이같은 안식교 측의 주장을 보고 느껴지는 것 한 마디로 내용적으로 불리해져 가는 자신들의 입장을 되지 않은 말로 희석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논쟁에서 자신의 결론 없이 독자들에게 결론을 유도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자기 결론 없는 논쟁을 하는 편이 이상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결론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고, 결국 각자의 결론을 독자로부터 평가받는 것이다. 김대성 목사도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결론을 가지고 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혹 김목사의 말대로 <교회와신앙> 측의 목소리가 고조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논쟁은 어차피 독자들의 판단을 전제한 논쟁이 아닌가? 그것마저도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김목사가 그만큼 논쟁 자체의 여유를 오히려 잃어 가는 증거로 보인다.
  물론 이 논쟁에 있어 <교회와신앙> 측의 공정성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안식교 측의 김목사는 더이상 논쟁의 본질을 떠나 형식적인 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내용에 더 충실해 주었으면 한다. 필자 편에서 볼 때 이 논쟁 글을 본지에만 게재하고 안식교측 언론에는 게재하지 못함으로 주로 기성교회 편에서만 본 논쟁을 지켜보고 있을 뿐 안식교 편에서는 그렇지 못하고 있음에도 진리 자체의 유익을 위하여 묵묵히 논쟁을 진행하고 있는 점도 유념해 주기 바란다.

2.마틴 박사의 글을 인용하여 안식교를 옹호하는 점에 대하여.
  안식교 측은 스스로 성경적인 논쟁을 하겠다는 전제로 이 논쟁을 시작하였다. 마땅한 전제였다. 안식교가 율법주의인가 아닌가, 이단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마땅히 성경으로만 판단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안식교 측은 사람들의 견해를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데 이는 자가당착적인 행위이다.
마틴 박사가 기성교회에서 이단 문제의 대가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도 실수할 수 있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칼빈에게서도 많은 실수를 본다. 그러나 칼빈이 말했다고 해서 장로교인들이 칼빈의 실수까지 용납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마틴의 입장을 반대하고 안식교를 이단으로 보는 다른 많은 학자들의 주장은 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가?
김대성 목사는 마틴 박사가 안식교에 대하여 가장 광범위하고 깊게 연구한 학자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자신들을 지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식교를 지지, 옹호하는 학자는 안식교를 정확하게 보는 학자이고, 안식교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안식교를 바르게 보지 못했다는 논리는 심히 주관적이며 유치한 논리라고 생각된다.
   마틴이 아니라 칼빈이 주장했다고 하더라도, 안식교에서는 화잇을 선지자라 하고 화잇의 계시를 '대언의 영' 이며 '예수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용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화잇이 주장한 그 엉터리 계시들과 그 표절된 계시를 어떻게 '대언의 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화잇이 '살아서 재림을 맞을 자가 있다'고 한 1856년 안식교 대총회의 사탄적인 예언,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된다'는 엉터리 예언, '미국의 남북전쟁시 아브라함 링컨을 비난하고 그가 패할 것'이라고 한 사기성 예언, '일곱 개의 달을 가진 별(토성)에서 에녹을 보았다'고 한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엉터리 예언들은 어떻게 하고, '마틴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성경과 원수된 화잇의 계시를 미화시키려 하는가?

3.안식교의 시작에 관한 변증에 대하여.
김목사는 안식교의 구원교리가 초기에는 율법주의였으나 1888년 와그너와 존스에 의하여 믿음의 의의 구원교리로 대전환하였다고 처음으로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 필자가 비판하기를, 김목사가 시인한 대로 인정한다면 40여 년간 화잇의 계시로 인도받은 안식교는 율법주의였다는 것이며 따라서 화잇의 계시는 잘못된 계시라는 말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안식교는 40여 년간 교리를 대전환해야 할 정도로 이단적인 교파였다는 말이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율법주의 문제는 기독교 교리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이단으로 보는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안식교는 먼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분명한 회개가 있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김목사는 답변하기를, "<교회와신앙>측이 종종 사용하는 왜곡된 논리가 어떤 것인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안식일 교회는 교회 역사 초기에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가졌기 때문에 오늘날도 바른 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면서 장로교의 교리도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였다. 
  우선 김목사는 중요한 말을 했다고 본다. 먼저 초기에 자신들이 율법주의였음을 다시 한 번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김목사는 회개의 개념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잘못이란 반드시 그것이 인정되고 회개되기까지는 고쳐지거나 변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을 모르는 것같다. 안식교가 율법주의라는 무서운 이단 사상을 40여 년 동안이나 가르치고 주장했다면 분명한 회개가 있었어야 과거에는 율법주의였으나 지금은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인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이 논쟁을 통해서 과거 안식교의 율법주의 구원교리가 무엇이었으며, 1888년에 대전환을 이루었다면 어떤 내용들이 어떻게 대전환되었는지 명백하게 밝혀 주기를 바란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전환되었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단 교리를 회개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넘어갈 수 있는가? 안식교인들은 안식교를 율법주의라고 비판하면 과거에는 그러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고 하는데 무엇이 어떻게 언제 달라졌는지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김목사는 자신들이 현재는 율법주의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장로교는 로마 가톨릭에서 나오지 않았느냐고 역공을 시도했다. 김목사의 말대로 장로교는 잘못된 로마 가톨릭에서부터 나왔지만, 그렇게도 많은 순교의 피를 뿌리면서 종교개혁을 하였다는 점은 상식이 아닌가? 지금도 장로교의 모든 교리는 가톨릭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잘못된 율법주의로 시작되었다가 아무런 회개도 없이 변했다고 주장하는, 그리고 아직도 노골적으로 율법주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또한 비록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율법주의적인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식교인들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로마 가톨릭과 장로교를 비교하는 빈약한 논리로 자신들과 율법주의와의 고리를 끊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4.지난 호에 약속한 것들에 대한 증거.
  필자는 지난 호에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안식교 내에는 화잇 이후에 많은 계시가 있었는데, 그들의 계시는 계시로 인정하지 않고 화잇의 계시만 계시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안식교 내의 다른 계시들을 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화잇의 표절 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증거였다. 그러나 후자 문제는 지면이 하락하지 않아 역시 다음의 기회를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첫 번째 문제만 취급하겠다.
  다음은 안식교인인 오만규 씨가 편저한 책 <재림교회사> 150∼151쪽에 "거짓선지자들"이란 제목에 나오는 내용인데 그대로 인용하겠다.
"1899년의 대총회 총회가 열리기 이전에 행한 한 설교에서 E.J 와그너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면 누구나 '예언의 영'까지 받아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권고가 유독 엘렌 지 화잇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진작부터 논란이 되고 있었다. 이미 1844년에 미시간 주(州) 페스토키(Petoskey)에 사는 안나 가르마이어(Anna Garmire)가 1884년 10월에 묵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화잇은 그 기별이 하늘에서 왔다기 보다는 안나의 아버지에게서 연유된 것 같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
  런데 엘렌 지 화잇이 호주로 떠난 직후인 1890년대 기간에 열성적인 젊은 여신도인 안나 필립(Anna Philip)양이 묵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묵시의 분위기와 이 여인의 단순한 신앙 생활에 인상을 받은 A.T. 존스와 W.W.프레스콧트는 그녀를 하나님의 사자로 믿었다. 안나 필립양을 개인적으로 알고있던 스티븐 하스켈(Haskell) 목사까지도 하나님께서 이 여인을 인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엘렌 지 화잇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필립양이 선의적이고 성실하긴 하지만 실수를 저질르고 있다고 다소 직접적인 논평을 하였다.
  안나 필립 양의 역할을 둘러싼 혼란은 1894-1904년까지 베틀크릭 교단 본부에 가해진 대 재난의 전조가 되었다. 1893년까지만 하여도 교회에는 '늦은비 성령이 내려 큰 외침으로 기별이 전파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으며, 쏟아지는 헌금은 미처 수습하기가 어려울 형편이었는데 불과 몇 년 못되어 혼란과 불신과 불안이 교회에 만연케 되었다."
  이처럼 화잇 이후에도 계시들이 많았는데, 화잇을 위해서만 계시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문을 닫아버리는 기준이 무엇인지 독자들은 이해가 되는가?
 
 
안식일과 주일 문제
1. 안식일은 폐한 절기이다.
  안식교는 구약의 안식일을 지금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기성교회에서는 구약의 율법주의적인 안식일을 예배일로 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님을 믿고 주일에 예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식일과 주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면, 과연 구약의 안식일이 폐한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지켜야 할 규례인가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하느냐이다.
 
  그래서 먼저 안식일 폐지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을 살펴본다.

1) 성경에 안식일이 폐지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구약의 모든 규례들과 함께 안식일이 폐한 것임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버리사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치 못하게 하라"(골 2:14, 16).
  이 본문은 안식일이 월삭과 절기와 함께 십자가에서 폐한 것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구절중 하나이다. 그러나 김목사는 이 구절에 나오는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고 절기에 속한 안식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구약 레위기 23장의 유월절, 무교절, 초막절 등 절기 기간 중에 안식일로 지켜야 할 날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절기에 속한 안식일들을 안식교측은 절기안식일이라고 하고 바로 위의 안식일이 그 절기안식일이라는 것이다. 즉 십자가에서 폐한 것은 절기이지,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인가?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골로새서의 안식일은 결코 절기안식일이 아니며 십자가에서 월삭이나 절기와 함께 폐한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이 분명하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본문에서 절기, 월삭, 안식일을 각각 구분해서 말했다.
안식교측의 논리대로 하자면, 본문에 언급한 안식일이 절기안식일이 아니고 제칠일 안식일이라면 제칠일 안식일은 폐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본문의 안식일은 절기가 아니고 제칠일 안식일이라는 분명한 증거는 이것이 언급될 때, 안식일만이 아니라 이미 앞에 절기도 함께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절기안식일이라는 것은 절기와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절기 자체가 절기안식일이다. 즉 절기 따로 있고 절기안식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절기가 폐하면 절기안식일은 자동으로 폐해진 것이다. 절기만 있고 절기안식일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절기가 있기에 절기안식일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절기만 폐하고 절기안식일은 폐하지 않는다든지, 절기안식일만 폐하고 절기는 폐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본문에 "절기나 월삭이나"라고 한 것은 해마다 돌아오는 절기 및 그 절기에 속한 안식일, 그리고 매월마다 돌아오는 월삭이 폐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이라고 했을 때 절기안식일은 "절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본문이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은 "절기나(해마다 돌아오는 절기 안식일), 월삭이나(매월마다 돌아오는), 안식일(매주마다 돌아오는 제칠일)" 이 세 가지가 다 폐한 것이다. 안식교측은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포기하지 않고 제칠일 안식일을 살리기 위하여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 성경에는 절기 안식일이 '안식일'이라고 쓰여지지 않았다.
소위 절기안식일이라는 것은 유월절, 무교절, 초막절, 대속죄일 등에 속한 것으로서 레위기 23장에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니"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절기를 제정한 이후로 성경에는 절기에 속한 안식일은 "절기"라고 기록되었고, 따로 "절기안식일" 또는 "안식일"로 사용된 곳은 없다. 그래서 "안식일"이라고 기록된 곳은 모두 제칠일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다.
  김목사의 말처럼 "안식일"이라고 기록된 곳이 절기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인지 제칠일 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구분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12장 8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구절에서 이 안식일이 절기안식일이냐 제칠일 안식일이냐를 따지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는가? 성경 어디에도 절기를 소개하는 구절인 레위기 23장 외에 절기에 속한 안식일을 "안식일"이라고 기록한 곳은 없다. 성경에 단순히 "안식일" 이라고 기록된 것은 다 제칠일 안식일인 것이다. 
  절기안식일, 명절안식일이라는 등의 말은 안식교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래서 본문 골로새서 2장 16절에 절기와 함께 언급된 "안식일"은 제칠일 안식일이 분명하다. 따라서 제칠일 안식일은 다른 절기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폐한 것이 분명한 것이다.

  2) 성경은 안식일을 폐한 바 된 다른 절기나 규례들과 구별하여 언급하지 않고 항상 함께 언급하고 있다.
구약에는 안식일과 함께 많은 절기들과 규례들이 있다. 유월절, 무교절, 초막절, 월삭 등의 절기와 할례, 결례 등의 규례들이다. 이러한 절기 규례 등은 십자가에서 모두 폐지된 것들이다. 이것은 안식교도 인정한다. 그런데 안식교인들은 다른 규례와 절기는 폐했어도, 안식일은 폐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절기나 규례와 안식일을 구별하지 않고 함께 말하고 있다.
레위기 23장을 보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레 23:2)고 하면서 계속해서 그 절기를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등을 따로 구별하지 않고 함께 말씀하고 있다(3-8절). 즉 구약에서부터 안식일과 다른 절기가 모두 여호와의 절기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절기는 폐해지고 안식일은 폐해지지 않았다는 말은 평형이 맞지 않는다.
  역대하 2장 4절에는 안식일과 다른 규례가 함께 이스라엘에게 주신 규례로 기록되었다.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여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이 본문에 안식일과 함께 언급된 모든 규례들이 폐하여졌다. 안식일도 역시 함께 폐한 것이다.
  이사야 66장 22-23절 말씀에도 안식일이 월삭과 함께 취급되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서 경배하리라". 이 본문을 인용하여 안식교인들은 천국에서도 안식일을 지킨다고 주장하는데 이 본문에 함께 언급된 월삭이 폐하면서 안식일도 함께 폐해졌다.
  안식일은 구약의 다른 절기나 월삭, 규례 등과 함께 폐한 절기이다. 그래서 명백하게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 폐해졌다고 골로새서 2장에 기록한 것이다.

3) 신약 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다.
  안식교인들의 주장처럼 안식일이 폐하지 않았고 그처럼 중요하여 하나님의 인이며 참 백성의 표징이라면 왜 신약에 주님이나 사도들이 한 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명령을 하지 않았겠는가? 기성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구약에서의 안식일은 인정하지만 신약에는 폐지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안식교가 안식일 준수를 주장하려면 마땅히 신약에서 안식일 명령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안식교는 신약에서 안식일 명령을 도무지 찾지 못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 그렇게도 많이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신약 성경에 와서 안식일 명령이 전혀 없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안식일이 폐했다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구약 성경에 할례가 강조되다가 신약 성경에 전혀 그 명령이 없는 것은 할례 제도가 폐했기 때문인 것처럼 안식일도 폐한 것이다.
  김목사는 이에 대하여 "안식일을 지키며 안식일에 예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던 신약 시대의 사회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다시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고 변증하였다. 김목사의 이런 주장은 궁색한 변명일 뿐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약에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으니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었다는 말인가? 또 할례를 하라는 명령이 없었으니 할례가 당연시되고 있었다는 말인가? 반대로 구약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명령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시대에는 안식일이 당연시되지 않고 있던 시대였기 때문인가? 아무리 변증해도 신약에서 안식일 명령이 없는 것은 안식일이 폐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안식일을 제외한 십계명의 모든 조항을 다 지키라는 교훈이 있다. 십계명의 조항이 다 도덕법이지만, 안식일만이 절기에 관한 것이며, 십자가의 모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안식교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안식일을 지키라는 신약 성경의 명령을 제시하기 바란다.
  신약의 교회에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생명이다. 날짜나 장소에 구원이 있거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안식교인들은 허무한 날짜 타령을 그만 두고 복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1, 24).

4) 안식교의 주장처럼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회당에 들어갔다면 사도들이 율법주의자란 말이 된다.
  신약 성경에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근거는 성경에 전무하다. 김목사는 사도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간 기록들을 들어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안식일을 지킨 근거라고 주장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다.
우선 김목사가 근거로 인용한 안식일 모임에 대한 성구들을 보면(행 13:14, 42, 44, 17:2, 16:13) 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모임이었지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특히 김목사는 사도행전 16장 13절의 '강가의 안식일 기도모임'을 예로 들었는데, 오히려 김목사가 말한 접속사(카이και)는 그 모임이 초대 교회 모임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확증해 준다. 즉 그 강가의 모임은 유대인의 안식일 모임이었는데 그날 바울의 전도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이렇듯 사도들은 안식일을 지키려고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신약 성경 어디에 초대 교인들이 안식일 예배를 드린 근거가 있는가? 안식교인들이 인용하는 신약의 구절들은 모두 유대인들의 유대교 회당 모임이었던 것이다. 사도들이 회당에 들어간 일은 안식일을 지키러 간 것이 절대로 아닌 것은 다음을 통해서도 명백해진다. 즉 만일 사도들이 안식일을 지키려 했다면 어떻게 율법주의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의 안식일 모임에 갔겠는가 하는 점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지키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초대 교인들끼리 따로 모여 예배를 드렸을 것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김목사의 말을 따르면 무서운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사도들이 율법주의자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안식교의 안식일 개념은 결국 유대인의 율법주의적인 것과 일치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겠다. 김목사는 아마 안식교회가 없는 지역에서 안식일이 된다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안식교에서조차 이단시하고 있는 '박명호 엘리야 집단'의 모임이나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나 '참 예수교' 등이 지키는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여 안식일을 지킬 수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한가? 
 
2.주일 예배의 의미
1. 초대 교회의 예배일은 안식일이 아니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구약의 안식일은 폐한 것이 명백하다. 그러면 초대 교회는 어떤 날을 예배일로 했을까? 신약 성경에서 유대인의 모임이 아닌 초대 교인들의 모임은 어떤 날이었을까? 초대 교인들의 예배일은 결코 유대인들의 절기인 안식일(토요일)이 아니었다. 안식일이 폐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당시 초대 교인들은 유대교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증거는 초대 교회의 안식일 예배 모임의 기록이 신약 성경에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안식일은 변경된 것이 아니라 폐한 것이다.
  안식교가 안식일이 폐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구약 성경이나 유대인의 안식일 모임을 가지고 말하지 말고 신약에서의 안식일 명령이나 초대 교회의 안식일 예배를 신약 성경의 증거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안식교가 그 동안 유대인들의 안식일 회당 모임이나, 구약 성경에 근거해서만 안식일 명령을 주장한 것은 안식일에 대한 성경적인 변증이 되지 못한 것이다.

2. 초대 교회의 예배일은 주일(일요일)이 분명하다.
  안식일이 폐지된 후 어떤 율법이나 명령에서가 아니고 초대 교회의 예배일은 자연스럽게 주일에 드려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약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이 주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중요성은 다 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안식교에서는 주일을 지키라는 말이 성경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물론 여기서 '지킨다'는 의미에 있어서도 안식교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의미와 기성교회가 '주일을 지킨다'는 의미는 다르다. 다음에 거론하겠다.
  주일은 율법에 의에서가 아니고, 자발적인 부활의 기념일이며, 예배일로 드리는 것이다. 부모님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명령이나 법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면 초대 교회에 주일에 모여서 예배드린 증거가 성경에 있는가? 그 증거는 분명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초대 교회의 시작은 사도행전 1∼2장에 있다. 초대 교회의 최초의 예배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예배이다. 그날은 주일이었고, 주일인 그날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신약교회가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면 왜 하나님께서 성령 강림을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주셨을까? 초대 교회의 최초의 세례식이 왜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있었을까? 성령 강림한 주일인 그날은, 초대 교회의 최초의 주일예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초대 교회의 첫 주일에 있었던 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성령 강림이 있었고,
   ② 말씀을 증거하는 일이 있었으며,
   ③ 3천명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이 있었으며,
   ④ 거기서 초대 교회가 시작되고, 주일예배가 시작되었다.
  오늘날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날을 예배일로 해야 마땅한가? 유대인의 폐지된 안식일을 지켜서 율법주의 망령을 불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초대 교회가 첫 주일을 예배하고 성령의 강림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은 주님의 부활하신 주일에 예배할 것인가?
  당연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드리는 주일에 예배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보지 않는가?
 
3. 율법이 폐해졌다는 말과, 완성되었다는 말의 의미
1. 성경에는 율법이 폐해졌다고도 하고 완성되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지금 독자들이 볼 때 논쟁의 핵심은 안식일로 구약에서처럼 토요일을 지켜야 하느냐 주일(일요일)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로 보일 것이다. 안식교는 구약의 안식일은 변할 수 없는 날로 지금도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요, 기성교회는 구약의 안식일은 폐해졌으니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안식교에서의 지킨다는 의미와 기성교회에서의 지킨다는 의미는 다름을 앞에서 말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결해야 할 것이 있다.  구약의 율법은 과연 완성되었느냐 폐해졌느냐의 문제이다. 폐해졌다고 하면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리고, 반대로 완성되었다고 하면 지금도 그 계명의 요구가 유효한 것같이 보여 지켜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성교회 편에서는 구약 시대의 안식일을 신약 시대에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폐해졌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안식교 편에서는 구약의 안식일을 신약에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폐해졌다면 다 폐해졌느냐 ,아니면 부분적으로 폐해졌느냐 하는 문제도 있고, 역시 완성되었다면 다 완성되었느냐 부분적으로 완성되었느냐 하는 문제도 남는다.
  그러나 웬일인지 성경에는 폐해졌다는 말과 완성되었다는 말을 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완성되었다는 말씀을 살펴보자. 먼저 마태복음 5장 17절 말씀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그리고 로마서 3장 31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제 반대로 율법이 폐해졌다는 말씀을 살펴보자. 많이 있지만 세 개만 살펴보겠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는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라고 했고, 히브리서 7장 18절에서는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고, 히브리서 10장 9절에서는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폐해졌다는 말과 반대로 완전케 했다는 말 내지는 굳게 세운다는 말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2. 율법은 폐해지기도 하고 완성되기도 하였다.
사실 폐해졌다는 말과 완성되었다는 말은 반대말 같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반대 개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한 사건에 대한 다른 표현인 것이다. 즉 율법은 은혜의 법에 의하여 폐해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또한 완성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어떤 한 설계도가 있는데 그 설계도에 의해서 건축을 했다고 해보자. 그랬을 때 그 설계도는 폐해진 것이냐 완성된 것이냐? 둘 다 가능한 말이 아닌가? 그 설계도는 집이 지어짐으로 결국 완성된 것이요, 또한 폐해진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 선생인 것이다. 결국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것이요, 그리고 또한 폐해진 것이다.

3. 구약에 많은 절기와 제도를 가리켜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는데도, 기성교회는 물,론 안식교도(유대교를 제하고) 그중 아무것도 지키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는데 좋은 말씀이 있다. 즉 구약 성경에는 '영원 규례'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있다. 그 말은 그 규례가 영원히 지켜져야 한다는 말로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영원한 규례하고 했는데, 신약 시대에는 지키지 않는 것들이다. 이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유월절 내지는 무교절을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고(출 12:14, 12:17), 제사장이 성막의 등불을 관리하는 것을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고(출 27:21), 제사장 직분을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고(출 29:9), 심지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는 것을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하였으며(출 30:21), 기름과 피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고(레 3:17), 속죄일을 영원히 지킬 규례라 하였고(레 16:29, 29, 34), 그리고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자는 그 옷을 빨 것인데 이를 영원한 율례라고 하였다.
  이중에 아무것도 그 형식적인 면에서 그 규례가 신약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유월절이나 무교절을 지키지 않는다. 성막 제도도 제사장의 제도도 지금 없다. 하물며 제사장직도 제사 제도도 영원하기는커녕 없어졌는데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는 것을 영원한 규례하고 할 수 있겠는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자가 옷을 빨아야 함이 어떻게 영원한 규례가 되겠는가? 아무것도 그 형식적인 면에서 영원한 규례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안식교의 안식일 준수의 논리로 하자면 그것도 지금 지키든지, 아니면 그 의미만 영원하다고 하든지 할 것이다.
  ,바로 그렇다. 비록 그 예법은 없어졌으나 그 영적인 의미가 영원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점은 안식교에서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식일도 그런 의미에서는 영원한 규례가 된다. 그러나 그 내적 의미와 그 영적인 의미는 영원하지만, 그 형식적인 규례로서는 영원하지 않다. 즉 폐해진 것이다.
  결국 안식교에서 안식일만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같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율법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주의에서 나온 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지면 관계상 이 점에 대하여 다음 호에 더 깊게 취급하도록 하겠다).


10부에서 계속

출처 :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u6La&fldid=Qlnd&datanum=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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