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2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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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는 세계 교회가 인정하는
성경에 충실한 정통 복음주의 교회이다
<교회와신앙>의 수용성과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
10회에 걸쳐 계속된 안식일교회와 <교회와신앙> 사이의 교리 논쟁이 일단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다수를 점령하여 교권을 남용하는 교단들이 어떤 상대방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이단 결정을 내린 다음, 그들의 변증이나 항변을 수용하려 들지 않는 한국 기독교계의 현실에서, <교회와신앙> 측이 상대의 반론권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하여, 이러한 논쟁을 수용하는 일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한 수용적인 태도와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주로 이단 사이비 문제를 다루는 <교회와신앙> 측에 대하여 노파심에서 꼭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정통과 이단 문제는 어떤 면에서 사람의 영원한 생명과 멸망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경솔히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불완전한 사람이 성경 해석의 왜곡된 결론이나 자신의 선입견에 기초하여, 더 성서적이요 진리에 충실한 교회일지도 모르는 상대방을 이단 사이비라고 결론지어 매도하는 일은 천국문을 막고 서서, 자기도 못 들어가고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방해하는 두려운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와신앙> 측은 이단 사이비를 만들어 내는 무슨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것처럼, 혹은 자신들은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는 완전한 성서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 함부로 이단 정죄를 하고 있다. 자신들과 다른 견해와 입장을 밝히는 일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은 영적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므로, 그러한 일에 좀더 심사숙고하며 자제해 줄 것을 촉구한다.
<교회와신앙>의 논리 전개 방식을 비판한다
<교회와신앙>의 논리 전개 방식에는 특이한 면이 있다. 좀처럼 논쟁의 핵심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표현 방식이나 사용된 단어를 가지고 흠집을 내어 독자들을 오도하는 일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그 사용하는 용어나 표현이 매우 거칠고 비신사적이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좀더 그리스도인 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론을 성경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자신들의 이론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성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논쟁에서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정직한 양심이 필요한 것이다.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와신앙> 측은 성경을 순리대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96년 11호 143쪽에서는 마태복음 12장 5절의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라는 말씀을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경에는 분명히 '안식을 범하여도'라고 되어 있는데, '안식일을 범하여도'라고 한 것이다. 제사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 동안 제사장들은 모든 백성들이 쉬는 안식일에도 성전 안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성경절은 분명히, 안식일 자체를 지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살아있는 안식일에 안식(쉼)하지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는 제사장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는 날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마 12:8)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97년 3월호 132쪽에서는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영적인 의미로 베드로에게 내려주신 환상(부정한 음식을 먹으라)을 아무 음식이나 먹어도 된다는 실제적인 의미로도 해석하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사도행전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내가 언제나 먹지 아니하였"(행 10:14)다고 한 것을 보면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식생활 습관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성경절(행 10:15)은 누가 읽어 보아도 명백하게 상징적인 것인데, 실제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건강에 해로운 부정한 음식을 포함하여 아무 것이나 먹어도 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성경절로 보는 <교회와신앙> 측의 성서해석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회와신앙> 집필자 중의 하나인 진용식 목사는, '94년 8•9월호(113쪽)에서 율법과 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갈라디아서 3장 19절을 인용한 바 있다. 그런데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 부분을 생략하여 다음과 같이 사용하였다. "그런즉 율법이 무엇이냐 …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여기에는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라는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범법함을 인하여 더해진 법이 율법이고 그것은 약속한 자손,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폐지된 법은 그 분의 십자가 희생을 상징하는 제사제도와 관련된 의식법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 원래의 법, 즉 십계명은 살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성경의 중간 부분을 생략하는 것은 정직한 성경학도의 양심이 아니다.
논쟁의 핵심보다 말꼬리 잡아 흠집내려고 하는 논법을 고쳐야 한다
이미 몇 차례 언급하였듯이 <교회와신앙>은 주어진 논제를 깊이 다루면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진지한 태도없이 논쟁을 위한 논쟁을 일삼고 있다는 인상을 매우 강하게 주고 있다. 독자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의도인지는 몰라도, 필자가 이미 답변을 충분히 제시한 사항들에 대해서도 그 답변들을 외면한 채 똑같은 비판에 거듭 매달림으로써, 정작 다루어야 할, 합의한 주제에 대하여는 너무나 적은 지면을 할애하는 불성실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한 예로, '97년 2월호에서 다룬 주제는 「영혼불멸과 영혼멸절」이었으나, <교회와신앙> 측은 총 10쪽의 지면 중 이미 답변된 문제들에 대한 비판에 지면을 8쪽이나 소모하였으며 정작 다루어야 할 주제에는 2쪽의 지면만 사용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뿐만 아니라 <교회와신앙> 측과 이단 논쟁을 하는 [윗트니스 리의 지방교회] 측에서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그러한 느낌을 토로하고 있다. "최삼경 목사는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식의 언급을 중단하고 진리를 토론하는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오기를 요청한다. …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최목사는 일부분의 내용을 왜곡하여, 윗트니스 리가 기독교를 '저주'하고 '욕'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독자들의 증오를 유발시키는 최목사의 태도에서 순수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의 자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 문제는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가 쓴 책의 본문 내용을 문맥과 관계 없이 떼어 내어 자기의 제한되고 잘못된 이해로 인해 왜곡한 데 있는 것이다"(교회와신앙, 97년 3월호 136∼138쪽).
97년 1월호 논쟁에서 <교회와신앙>측은 초기문집 283쪽(출판연도는 밝히지 않았음)에 있다고 하는 노예문제에 대한 화잇의 언급을 거론하였다. 필자는 번역본과 원본의 283쪽을 살펴 보았고 그 곳에 해당 내용이 없기에, 해당 내용이 원본에도 번역본에도 없으니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정확한 출처를 제시하여 줄 것을 2월호에서 요청하였다. 그 후 필자는 스스로 초기문집의 앞뒤를 다시 살펴본 결과 283쪽이 아닌 289, 290쪽에 해당 내용이 있음을 확인하고 3월호에 그 내용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교회와신앙>은 4월호에서 그 일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상당한 억지를 쓰며 필자가 무슨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독자들을 오도하고 있다. "노예 제도가 재림시까지 있을 것이라는 <초기문집> 283쪽(1976년판)의 화잇의 계시에 대하여 김대성 목사는 원문이나 번역본에도 없다고 주장했다가(97년 2월호) 한 달 뒤인 3월호에서 1993년 번역본에 그같은 내용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원문에 관한 언급은 피한 채 역본에 그 내용이 있음을 늦게 시인"했다. 번역본에 있으면 원본에도 당연히 있는 것을 가지고 원문에 관한 언급을 피했다고 하는 표현을 쓰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잡지의 품위를 생각해서라도 좀더 성실하고 정직하기를 바란다
<교회와신앙> 측은 자신들의 주장를 내세우거나 변증을 할 때에 임기응변식의 논리를 자주 사용한다. 우선 대강 넘어가고 보자는 비양심적인 동기가 엿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① <교회와신앙> 측은 97년 1월호 논쟁을 이렇게 마치고 있다(147쪽). "결국 안식교에서 안식일만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같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이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율법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율법주의에서 나온 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지면관계상 이 점에 대하여 다음 호에 더 깊게 취급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교회와신앙> 은 그 이후에 약속했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② 또한 <교회와신앙> 측은 "안식교에서 '안식일을 지킨다'는 의미와 기성교회가 '주일을 지킨다'는 의미는 다르다. 다음에 거론하겠다."(교회와신앙, 96년 12월호 145쪽)고 하였으나 아직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책 146쪽에서 "안식교는 구약의 안식일은 변할 수 없는 날로 지금도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요, 기성교회는 구약의 안식일은 폐해졌으니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안식교에서의 '지킨다'는 의미와 기성교회에서의 '지킨다'는 의미는 다름을 앞에서 말하였다"고 말하였지만 그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다. 145쪽에서는 다음에 거론하겠다고 해놓고는 146쪽에서는 앞에서 말하였다고 하는 <교회와신앙> 측의 토론 자세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③ <교회와신앙> 측은 이 논쟁 5회에서 "초대교회의 예배일은 자연스럽게 주일에 드려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신약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이 주일에 있었기 때문이다"(96년 12월호 145쪽)라고 말하였으나, 97년 2월호 127쪽에서는 "1주일 중에 하루가 주일이 아니라 7일이 주의 날인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한 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즉 일요일이 주일이라고 하였다가, 다른 곳에서는 일주일의 7일 모두가 주의 날이라고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교회와신앙> 측의 말대로라면 일요일이 주일이 아니라 날마다 주일이 되는 것이다.
설명하기가 곤란한 문제에 부딪치거나 답변이 궁한 경우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선 넘겨버리든지 아니면 앞과 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서슴치 않고 전개하는 습성은 잡지의 품위를 생각해서라도 시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와신앙> 측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낙후성
지난 9회에 걸쳐서 진행되는 지상 토론에서 <교회와신앙> 측이 주로 제기했던 문제들 가운데는 엘렌 화잇의 노예 제도에 관한 언급, 미국의 남북 전쟁에 대한 화잇의 견해, 표절 시비, 돼지고기 문제, 음식 문제 등 매우 지엽적이고 낙후된 문제들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이미 1930∼40년대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이고, 그 모든 문제들은 1951년에 발행된 <엘렌 화잇과 그에 대한 비평들>(F. D. Nichol, Ellen G. White and Her Critics, R&H Publ., Assn.)에서 말끔하게 해결된 상태이므로, 그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피차간에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을 계속 문제삼는 것을 보면, 오래 전에 안식일교회를 다니다가 개인적인 사유로 장로교회로 옮겨 목사가 된 진용식 씨의 서재에 꽂혀있는 낡은 책들에서 소재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을 준다. 한국의 장자교단이라고 자칭하는 장로교 통합측이, 장로교의 학문적인 배경이나 장로교 신학에 의존하지 못하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본 교회를 떠난 진용식 씨를 앞세워 이단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교단의 형편이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교회와신앙> 측이 아직도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들
필자는 <교회와신앙> 측의 질문에 대하여 꾸준히 답변을 하였으나, <교회와신앙> 측은 필자가 어떠한 답변을 하든지 또 다시 지엽적인 문제를 들고 나와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시간만 지연시키면서 독자들을 오도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자신들은 필자의 질문에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대답할 만한 가치가 없는 질문이기 때문에 그러한지 아니면 대답할 말이 없어서 피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 논쟁의 3회 째부터 <교회와신앙> 측에 제시한 질문에 대하여 아직도 답변이 없는 것들이 많다. 당시 필자의 질문을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교회와신앙> 측의 분명한 답변을 재차 촉구한다.
조용기 목사의 사이비성 규정과 해벌에 대한 이유를 밝혀 달라
"한때 장로교 통합측에서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입장을 바꾸어 그 결정이 취소되었다. 처음에는 어떤 이유로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정했는지, 그리고 나중에는 어느 편의 입장이 달라져서 무슨 명분으로 그 결과를 취소했는지 그 과정과 이유를 밝혀주기 바란다"(교회와 신앙, 96년 10월호 149-150쪽).
필자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교회와신앙> 측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김목사는 통합측에서 조용기 목사를 이단으로 정했다가 해제했다고 했는데, 김목사는 어디에서 조용기 목사를 이단으로 했다고 들었으며 어느 책에 그렇게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는가?"('96년 11월호 134쪽).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다음과 같이 진술의 내용을 바꾸었다. "예장 통합측에서 순복음교회를 사이비성이 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97년 1월호 150쪽).
"필자의 질문은, 장로교 통합측에서 조용기 목사가 사이비성이 있다고 규정했다가 해벌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단'이나 '사이비'나 어떤 용어라도 상관없다. 조용기 목사의 사이비성에 대하여 조용기 목사가 입장을 바꾼 것인지 통합측에서 입장을 바꾼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교회와신앙, 97년 2월호 135쪽).
" 필자가 장로교 통합측에서 한 때 조용기 목사를 '사이비'로 규정했다가 나중에 '해벌'한 내용과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바 있다. <교회와신앙>측은 이 질문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대답을 계속 회피하면서, 이제 와서는 이흥선 목사의 안식일교회에 대한 입장을 거론하고 있다. 이흥선 목사는 분명히 한 때 안식일교회를 이단시했다. 그러나 그가 안식일교회 <기본교리 27>과 변증서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를 연구한 결과, 안식일교회의 구원론이 일반 기독교의 구원론과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여 안식일교회가 정통 기독교회임을 천명한 것이다. 안식일교회의 구원론을 밝히 이해하게 된 것이 이흥선 목사가 입장을 바꾼 근본 원인이다. 그렇다면, 장로교 통합측은 조용기 목사의 어떤 면이 '사이비'성으로 판단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로 '해벌'을 하게 되었는지도 밝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 그것을 밝히지 않고 계속 다른 쪽으로 대화를 끌어가는지 모를 일이다"(97년 4월호 152-153쪽).
장로교의 공식적인 이단판별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단 문제를 다루는 학자마다 견해 차이가 다르다면, 그리고 T씨의 기준을 한 개인의 견해라고 한다면, 예장 통합측에서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단 판별의 공식적인 기준은 무엇인가?"(교회와신앙, 96년 10월호 150쪽).
한국장로교출판사에서 발행한 <정통과 이단>(이형기 지음, 1997년판)에는 전통적인 교단들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루터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교회를 들고 있다. 그리고 이단들로는 문선명의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모르몬교, 그리고 국내 신흥 사이비 신앙 운동과 이단 종교 집단들로 다음과 같은 단체들을 열거하고 있다. 권신찬 집단의 이단시비, 김기동의 귀신론, 밤빌리아 추수꾼 집단, 박윤식의 대성교회, 박명호의 엘리야 복음선교원, 이장림의 다미선교회, 지방교회(회복교회), 이초석의 한국예루살렘교회, 이명범의 레마선교회. 이상스럽게도 안식일교회는 어떤 범주에도 들어있지 않다. 그런데, 가톨릭까지 전통적인 교단들에 포함시켜 놓은 그 전통과 이단의 기준이 무엇인가? 위의 책 <정통과 이단> 142, 143쪽에 나와있는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가 논한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루터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해서는 일치된 신앙을 지니고 구원론에 관하여는 루터교가 전적으로 '이신칭의'의 입장을 고수하고, 장로교는 이 '이신칭의'에 이어 곧바로 이어서 '성화'를 역설하고, 감리교와 성결교는 '성화론'을 강조한 나머지 구원의 조건으로 하는 경향(성결교가 감리교보다 '성결'을 더 강조하지만)이고, 침례교는 '중생과 성화'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못박았고, 성공회는 장로교의 구원론보다 역시 감리교의 그것에 가깝고,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은 개신교의 이신칭의와 성화를 혼동하면서 이 7교파 중에서 가장 공로주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하겠다.… 우리 개신교파들은 피차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른가에 유의하기 전에, 너와 나 사이에 공통분모가 무엇인가를 의식해야 할 것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견해만 같을 뿐, 구원론조차 각기 다른 일곱 개의 교단을 정통교회로 인정하는 이 분별없는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장로교회의 최삼경, 진용식 목사는 안식일교회가 행위를 강조하기 때문에 율법주의이며 그래서 이단이라고 주장하는데, 같은 장로교회에서 발행된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에서는 성화를 구원의 조건으로 하는 경향(?)을 가진 감리교와 성결교, 그리고 '중생과 성화' 없이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침례교, 심지어는 공로와 구원을 연관시키고 있는 가톨릭을 정통교회라고 보고 있으니, 누구의 어떤 기준이 올바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이단 판별의 기준이 무엇인지 꼭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다니엘 8장의 2300주야에 대한 장로교의 공식적인 해석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97년 1월호에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한 바 있다. "이번호에서 <교회와신앙>측은 안식일교회의 2300주야와 조사심판에 대하여 비평을 할 것이다. 집을 짓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남이 지어 놓은 집에 들어가 흠을 잡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이번호에서 2300주야에 대한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해석이 함께 다루어지기를 기대하나, 혹시 그렇지 못하면 다음호에서 꼭 다루어 줄 것을 당부한다. 상대방의 해석이 틀리다면 바른 해석을 제시해야 마땅한 것이다"(141쪽).
그리고 2월호에도 또 다시 동일한 질문으로 답변을 요청하였다. "본인은 1월호에서 분명한 답변을 기대하는 세 가지 질문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답변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첫째, 안식일이 폐지된 것인지, 아니면 안식일 자체는 변동이 없고 요일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것인지 질문하였다. 그러나 <교회와신앙>측은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말과 폐해졌다는 말은 다 맞는 말이다. … 그런 점에서 안식일이 폐해졌다는 말도 맞고, 완성되었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말도 맞다. … 오늘의 주일은 분명히 안식일 개념에서 온 부분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 중심의 종교가 주일 중심의 종교로 바뀌었다고 보아야 더 맞다고 본다'(2월호 127쪽)고 말하면서 분명한 답변을 내리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고 있다. 심지어는 '1주일 중에 하루가 주의 날이 아니라 7일이 주의 날인 것이다'(상동)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일요일이 주의 날(주일
)이라고 하던 종래의 주장에 대해서도 스스로 흠집을 내고 있다. 둘째, 일요일예배의 기원을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밝혀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아무런 성경적 근거없이 '교부들에 의해서 복음이 우리에게 전수되었고 또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상동)는 말로 대치하고 있다. 일요일예배에 대한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여 주기 바란다.
셋째, 장로교에는 다니엘 8장과 9장의 2300주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답이 없다. 다른 교파의 어떤 교리를 비판하려면 그 비판한 부분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정통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마땅한 것이다. 변두리에서 맴도는 표현들을 자제하고 핵심적인 문제로 들어가 2300주야에 대한 장로교회측의 분명한 해석을 제시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한다"(97년 3월호 117-118쪽).
장로교 헌법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입장을 달리하는 <교회와신앙>
필자는 <교회와신앙> 측에게 안식일이 폐지된 것인지 아니면 안식일은 살아있고 요일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것인지에 대하여 질문을 한 바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교회와신앙>은 4월호에서 "필자는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96년 11월호(140-142쪽)에서 안식일이 폐지된 것이라는 점을 여러 측면에서 변증하였다"고 답변을 하고 있다. 안식일이 분명히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 신앙과 교리의 기초가 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일정한 시간을 정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합당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명령을 발하여,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 그 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간의 첫째날로 바뀌어졌다. 성경에는 이 날이 주의 날(主日)로 불리워져 있다. 이 날은 세상 끝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1장 7항>.
이 내용을 보면 분명히, 안식일은 폐지되었다고 하는 <교회와신앙> 측의 주장과 상반된다. 그렇다면 <교회와신앙> 측은 그 신앙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인가? 심지어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발행한 헌법과도 상반된 견해를 서슴치 않고 주장하는 <교회와신앙>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장로교 헌법(1997년판) 48쪽에는 안식일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답을 하고 있다.
문 59. 이레 중 어느 날을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매 주간에 안식일을 삼으셨습니까?
답 세상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하나님께서 한 주간의 일곱째 날을 정하여 매 주간의 안식일을 삼으셨으며 그 후부터 세상 마지막까지는 한 주간의 첫날을 안식일로 삼으셨습니다. 이 날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다시 한 번 <교회와신앙>측에 묻는다. 장로교 헌법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상반되는 안식일 폐지론을 끝까지 주장할 것인지, 아니면 종래의 주장을 시정할 마음이 있는지 꼭 밝혀주기를 바란다. 또한 십계명의 제 4계명인 안식일이 폐했다면, 나머지 계명들도 모두 폐한 것인지 아니면 제 4계명만 폐한 것인지도 아울러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좀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교회와신앙>측은, 주일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자발적인 부활의 기념일이며 예배일로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매우 애매한 주장이다.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 폴 주이트(Paul Jewett)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가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 모든 학자들은 한 가지 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첫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의 기념일로 축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 사건에다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발생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옛부터 인정되고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요일 예배와 관습이 그 정확한 기원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폴 주이트, 주일의 참뜻, 옥한흠 역, 36). 이 '이상한 일'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 있기를 바란다"(교회와신앙, 97년 1월호 141쪽).
안식일교회의 구원론 문제
<교회와신앙> 측은 안식일교회는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그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안식일교회 서적에서는 성화와 행위를 강조하는 인용문만을 사용하고, 성경에서는 믿음을 강조하는 성경절들만을 찾아서 사용한다. 그러나 안식일교회의 서적들 중에도 믿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얼마든지 있고, 성경에도 행위를 강조하는 성경절들이 얼마든지 있다.
<교회와신앙> 측은 필자가 "안식일교회도 역사적으로 교리적 논쟁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1888년에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있었던 교리논쟁은, 그 이전까지 율법의 행위가 강조되던 구원론이, 믿음을 강조하는 구원론으로 돌아서는 대전환점이 되기도 했다"(교회와신앙, 96년 9월호 121쪽)고 한 말을 매우 집요하게 붙잡고 오도한 바 있다. 필자는 분명히 "율법의 행위가 강조되는 구원론"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교회와신앙> 측은 "원래는 안식교가 율법주의적인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라는 말로 변형시켜 안식교가 과거에는 율법주의였음을 시인한 것이라고 쾌재를 부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화잇을 중심해서 성경연구 대회를 만들었던 1848년을 안식교의 창시로 본다면, 약 40여 년간 안식교는 율법주의 속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누구의 가르침과 주장에 의하여 40여 년간 율법주의 속에 있었단 말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화잇의 주장 때문이다"(교회와신앙, 96년 10월호 140-141쪽)고 비난하였다.
엘렌 화잇은 1888년 이전에도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다음의 글은 엘렌 화잇이 1882년 3월 28일에 캘리포니아 힐즈버그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만일 그대가 실수가 많고, 속절없고, 정죄받은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만일 그대가 자아를 높이고 영화롭게 한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 교회와 이룬 그대의 연합, 형제들이 그대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쓸모가 없다, 그 분에 관하여 믿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대는 그 분을(in Him) 믿어야 한다. 그대는 그 분의 구원의 은혜를 완전히 신뢰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천세원 역, 교회증언 제5권, 1995년판, 57, 58쪽).
<교회와신앙>은 안식일교회의 구원론을 비판할 때 엘렌 화잇의 서적들 중에 행위를 강조하는 글들만을 모아서 사용한다. 그런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면 성경에서도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그[하나님]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계 22:14, 한글 킹제임스 성경).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이러한 성경절들만 모아 놓으면 율법준수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엘렌 화잇이 말한 다음의 내용은 어떤가? "죄인은 오직 범죄한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대속을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없다. … 믿음이야말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며, 신앙이란 믿는 것뿐만 아니라 신뢰하는 것을 포함한다"(가려뽑은 기별 1권, 389쪽).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에 관하여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을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인간의 구원을 가능케 할 수 있으며, 이 의는 하나님의 은사이다"(상동, 331쪽).
<교회와신앙> 측은 더 이상 안식일교회의 구원론에 대하여 억지 논리로 사람들을 미혹하지 말기를 바란다. 구원받은 이후의 성화 문제에 대해서는 장로교 헌법에도 안식일교회의 입장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칭의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성화의 생활이 계속된다. 칭의의 은총은 일회적이나 성화의 생활은 일생을 통하여 계속된다"(장로교 헌법, 171쪽).
엘렌 화잇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화는 하루나 한해동안의 사업이 아니라 평생의 사업이다"(교회증언 3권, 325쪽).
영혼불멸의 문제점
이 문제에 대한 장로교의 공식 견해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나,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눅 23:43; 고후 5:1,6,8; 히 12:23). 거기서 그들은 빛과 영광 가운데서 마지막 날에 그들의 육체까지 완전한 구원을 얻을 날을 기다린다. 이와는 달리 예수를 믿지 않고 거역한 사람들의 영혼은 음부에 던지어져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최후 심판 날을 기다리게 된다(눅 16:23-24; 벧전 3:19; 유 6-7). 그리스도가 주관하시는 마지막 심판대에서 모든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마 25:31-32; 행 10:42; 롬 14:10; 고후 5:10). 거기서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옳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영광의 처소로, 옳지 못하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고통의 처소로 가게 된다(단 12:2; 마 25:46; 요 5:29; 10:28; 롬 2:7)"(장로교헌법, 179-180쪽).
한글 사도신경에는 삭제해 버렸지만, 영어 사도신경에는 예수께서 십자가 희생 후 부활하실 때까지 지옥(Hell)에 내려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박영관 박사는 그의 저서 「이단 종파 비판(I)」(기독교문서선교회, 1991년판) 347쪽에서 예수님은 "그의 육체가 무덤에 있을 동안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어느것이 옳은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 영혼 불멸설은 많은 문제점들을 수반하고 있으나 우선적인 모순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 세상의 법정에서도 피의자에 대하여 검•경의 수사와 조사를 거쳐 법정에서 변론과 증언 등의 조사절차를 거친 후 유죄 혹은 무죄가 결정되며, 유죄의 경우에는 실형 선고의 절차를 거친 후에 형을 집행한다. 그런데 「장로교 헌법」의 기술을 보면, 사람이 죽자마자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나님께로, 또는 음부(고통의 장소)로 가 있다가(형벌 또는 상급의 집행), 최후 심판날에 옳은 사람과 옳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조사를 하게 된다. 납득할 수 없는 심판 순서이다.
죽을 때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된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어 조사한다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 이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도 위배되는 불합리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백보좌 심판」이라는 것은 예수님 재림 후 천년 되는 시점에 실시되는 심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심판은 악인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을 펴 놓고 실시하는 일종의 조사심판이다. 악인들이 죽으면 아무런 조사 없이 일단 고통의 장소로 보내어 형벌부터 먼저 받게 하고, 수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불러 내어 조사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는 터무니없는 교리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독자는 본 잡지 97년 2월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교회와신앙> 측이 제시한 이단 사유의 허점
<교회와신앙>측은 본 논쟁의 첫회에서, 자신들이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이유를, ① 안식교는 시한부종말론에 의해 시작된 교회이기 때문에, ② 주일(일요일)교회를 짐승의 표를 받은 교회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③ 화이트를 마지막 선지자라고 하기 때문에, ④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⑤ 영혼불멸이 아닌 영혼멸절을 믿으며 지옥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들은 한결같이, 이단이라고 전제한 후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합리한 사유에 불과한 것들이다. ① 안식일교회는 밀러의 재림운동으로부터 태동이 되기는 했으나, 그 운동에 참가한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이해한 점을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② 두 번째로, <교회와신앙> 측은 안식일교회가 "일요일을 드높이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안식일교회는 이단이라고 했다. 성경은 다니엘서 7장 25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성도를 괴롭게 하는 그 작은 뿔이 하나님과 관련된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고 기록하였으며, 요한계시록 14:9-12에서는 '짐승의 표'를 받으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 두 성경 말씀을 종합해 보면, 콘스탄틴에 의해 로마 정부의 법으로 강요되고(321년 일요일 휴업 제도 시작), 성경이 아닌 교회법(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결의)에 의해서 준수되기 시작한 일요일 휴무와 예배 제도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한 것이 아니며, 안식일 계명을 변경시킨 법이다. 십계명 중에서 개신교회가 변경하여 지키고 있는 법은 넷째 계명뿐이다. 계시록 14:9-12에 의하면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며, 예수 믿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요일 준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상징된 짐승의 권위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표시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강제성을 띤 법률로 효력을 갖게 되면 '짐승의 표'로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인류 사이의 하나의 표로서, 또는 저들의 충성의 시금석으로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빛을 받고도 계속적으로 불순종하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큰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율법보다 인간의 율법을 높이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마지막 날 사건들, 214쪽). "일요일 준수가 아직은 짐승의 표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우상 안식일[일요일]을 경배하는 법령이 내리기 전까지는 짐승의 표가 아니다"(상동, 214쪽).
<교회와신앙>측은 끝내 일요일 예배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배경이나 성서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요일 예배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다고 하는 안식일교회 측의 주장을 가지고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③ <교회와신앙> 측이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보는 이유 중 세 번째 이유는, 거짓 선지자인 화잇을 마지막 선지자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잇의 예언은 틀림이 없었으며, 그의 글들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있다.
화잇은 과연 선지자인가? 엘렌 화잇이 1915년 7월 16일에 주 안에서 잠들자「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들이 그녀의 죽음을 보도하였다. 뉴욕의 유명한 월간지「인디펜던트」(Independent)지는 1915년 8월 23일자 사설에서 엘렌 화잇을 "미국의 한 여선지자"로 해설하고 있다. 그 사설은 화잇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녀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그녀는 그녀가 받은 계시로 그녀의 믿음 안에서 절대적으로 정직하였다. 그녀의 생활이 그 계시들의 가치를 나타내 주었다. 그녀에게서는 그 어떤 영적 자만을 볼 수 없었으며, 부정한 이득을 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훌륭한 여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미국의 후손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삶을 살았다."
④ 안식일교회가 율법주의 구원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하는 주장은, 비판자들이 성경에서는 믿음에 관한 말씀만 인용하고 안식일교회의 서적들에서는 율법준수에 관한 진술들만 골라서 인용하는, 비양심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⑤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보는 마지막 이유로 영혼불멸을 믿지 않으며 지옥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안식일교회는 지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안식일 교인들이 믿는 지옥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가서 고통을 받는다는,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는다는 그러한 지옥이 아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의 지옥, 거기에서 악인들이 영원히 고통을 받는 장소로서의 지옥, 그것은 성경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속성을 곡해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속임수이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은 마지막 때 악인들이 형벌을 받아 죽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계 20:9). 마지막 불은 악인을 영원히 태우는 불이 아니고 악인들과 죄의 세력을 소멸시키는 불이다.
23부에서 계속
출처 :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u6La&fldid=Qlnd&datanum=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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