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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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논쟁의 총정리
이번을 포함해서 그간에 안식교와 10회에 걸쳐 논쟁을 해 왔다. 이번 논쟁을 통하여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식교에서 초점을 흐리게 하자는 말장난 때문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안식교 교리의 상당 부분이 밝혀졌고, 기성교회의 교리와 어떤 점이 다른가와 왜 안식교가 이단인가에 대해서도 밝히 알 수 있다고 본다. 안식교는 그간에 안식교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 구체적 내용을 지적하지도 못하면서 안식교 교리에 대하여 잘 모르고 비판한다는 말을 상습적으로 해 왔다. 그러나 필자 편에서 보면 오히려 김대성 목사가 안식교를 안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식교를 잘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번 논쟁 이후에는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번 논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교리를 충분히 들어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에만 갇혀 밖으로 나가서 보지 않고서는 그 위치나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간 안식교와 논쟁했던 내용들 중에 필요한 부분들을 요약 정리하고 보충하는 형식을 취하겠다.
그래도 안식교가 상대적인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필자는 논쟁을 시작하며(교회와신앙, 96년 8월호) 왜 안식교가 이단인가를 밝히고 안식교측에서는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이라는 제하로 이단의 분별 문제를 취급했다. 이 글에서 김대성 목사는 어떤 교단의 결정이나 의견으로 이단으로 결정되었을 때 상대적 이단이며, 성경으로 분별해서 성경에 맞지 않는 교리를 가졌을 때 절대적 이단이라고 하는데 안식교는 상대적 이단이지 절대적인 이단이 아니라고 하였다(교회와신앙, 96년 8월호).
즉 이단이냐 아니냐의 분별을 성경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한 안식교는 성경 외에서 논쟁을 많이 하였고, 반대로 성경적인 변증은 별로 하지 못했다. 필자는 어느 학자의 의견을 거의 참조하거나 인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식교의 주장대로 안식교의 교리에 대하여 성경으로 비추어 볼 때 왜 이단인가를 계속 밝혀왔다. 그러나 안식교는 자신들이 주장해온 바와는 모순되게 빌리 그래햄 복음 협회가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느니, 마틴 박사가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는 등(교회와신앙, 96년 8월호 111쪽) 무슨 단체나 학자들의 견해를 근거로 해서 이단이 아니라고 변증하기를 힘썼다.
그리고 최근 안식교 옹호자 김경선 장로의 책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에서도 안식교가 이단이 아니라는 변증을 하면서 '세계의 주요 교단과 단체들에서 이단이 아니라고 했으니 안식교는 이단이 아니다'는 식의 변증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김경선 장로의 책을 면밀히 조사해 보니 아전인수격으로 말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안식교를 가리켜 '이단이 아니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이단이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단이 아니다'고 했다는 식으로 한 부분이 많이 있다. 이 또한 후에 다른 방법으로 취급하도록 하겠다.
이런 김대성 목사의 논리로 비추어 볼 때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이와 같이 '이단'이라는 말이 자주 오용된 과거의 역사로 미루어 보아, 그 말은 결코 함부로 사용할 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말을 남용하는 한국교회의 풍토는 매우 우려할 만한 상태가 되었다. 여러 '이단 감별사'(?)들이 인쇄물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앞다투어 '이단' 보고를 하고 있다.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이단을 정하는 자(尺)가 틀려 있기 때문에 그 자를 가지고 재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며, 사분오열되어 있는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이단 시비를 가린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교단 '갑' '을' '병'이 서로를 인정하여 정통이라고 자처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교단 '갑'이 교단 '정'을 이단으로 정했는데 교단 '을'이나 '병'은 '정'을 이단으로 정하지 않았을 경우, 그 관계가 매우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갑'이라는 교단이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을 경우, 한국에서는 '갑' 교단이 '정' 교단을 이단으로 결정했는데 미국에서는 같은 '갑' 교단이 같은 '정'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교회와신앙, 96년 8월호 110쪽).
이 논리에 안식교(갑)와 이흥선 씨(을)와 김기동 씨(병)를 대비시켜 보자. 안식교(갑)에서는 영혼멸절을 주장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는 김기동 씨(병)의 귀신론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흥선 씨(을)는 김기동 씨(병)를 이단이 아니라고 옹호하고 있다. 안식교(갑)에서는 그런 줄 알면서도 이흥선 씨(을)를 의지하여 안식교(갑)를 옹호하도록 하고 있다. 자신들(갑)이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병)을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그 자로 재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야말로 김목사의 말처럼 '모순'스런 일이 아닌가? 김목사는 이것을 하나의 가지로 비유하였다. "어떤 사람의 말중에 한 가지가 틀렸다고 해서, 나머지 모든 말이 무조건 틀리다고 결론지울 수 있는가"(교회와신앙, 97년 2월호 136쪽)라고 하였다.
이 말은 더 '모순'된 말이다. 김대성 목사가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단논쟁은 성경논쟁이라고 하였다. 적어도 안식교(갑)에서 이흥선 씨(을)를 의지하여 이단이 아니라고 옹호받고 보호받기를 원하고 있다면 이흥선 씨(을)가 이단이냐 아니냐를 성경에 입각하여 바르게 보고 있다는 전제가 가능할 때에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급하다고 도둑질해서 먹을 수 없고, 도둑잡는다고 아무 칼이나 휘둘러 죽일 수 없으며, 화난다고 서방질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흥선 씨를 통해 옹호받으려는 그 자세가 바로 상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오히려 교단의 학자들에 의하여 규정된 이단 규정은 상대적이라 하고, 상대적인 두 개의 자를 가지고 이단을 재고 있는 이흥선 씨의 이단옹호는 절대적이란 논리가 안식교의 논리인가?
과연 안식교는 율법주의가 아닌가?
안식교의 구원론은 율법주의 구원론임을 성경적으로,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모순점을 들어서 비판하였다. 그러자 김대성 목사는 그 동안 들어보지도 못했던 아주 중요한 말을 하였다.
안식교가 처음에는 율법적인 구원론을 가졌으나 ,1888년 안식교 총회에서 믿음의 의를 받아들여서 구원 교리가 대전환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변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형태의 말을 사석에서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즉 '옛날에는 그랬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이 말하는 옛날은 1888년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고인이 된 우필원 목사가 안식교에 최고의 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그의 '큰 구원'과 '영원한 구원' 문제에 대해서도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논쟁을 통해서 김대성 목사가 그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최초의 말이라고 보인다. 어떤 의미로든 놀라운 일이다. 진정으로 안식교가 이단적인 율법주의를 버리고 전환하였다면 안식교에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말이 가능하다.
먼저는 안식교의 시작은 화잇이 아니라 1888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이 가장 미워하고 저주의 포문을 넓히기에 주저하시지 않으셨던 율법주의를 버리고 이신칭의 사상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중요한 말이 왜 그 동안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도 남은 문제는 화잇의 책임이다. 누가 안식교를 1888년 전에는 율법주의로 만들었는가? 화잇일 것이다. 1888년 전이든 뒤든,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안식교이다. 그런데 그 구원교리가 대전환되었다면, 화잇의 계시가 거짓 것이란 말이다. 만일 화잇의 사상에는 율법주의가 없었는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다면 1888년 전의 안식교인들에게는 화잇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바보들만 모였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래도 화잇의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고 본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자인지 아닌지 그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1888년의 대전환 사상을 김대성 목사 한 개인의 실수로 돌려버릴 소지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김대성 목사 외에 안식교를 변호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신계훈, 이흥선, 김경선 등)에 의해서도 이 점이 시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김 목사의 말과는 달리 안식교의 공식적인 입장이 '안식교 교리는 1888년 전이나 후나 같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바로 김대성 목사에게 돌아간다. 김목사가 안식교의 율법주의를 임기응변적으로 숨기려다 저지른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안식교편에서나 기성교회편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실수라고 본다. 안식교편에서는 자신들이 율법주의였음을 인정하는 큰 실수가 될 것이요, 기성교회편에서는 한 개인의 실수만으로 묻어둘 수 없는, 안식교의 진실을 알게 하는 정직한 실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김대성 목사의 말이 맞으려면 대전환되기 전의 안식교의 구원교리가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어떻게 대전환되었는지에 대하여 선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반복하여 질문하였건만 김목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까지도 유구무언인데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는가?
안식교의 토요일 준수는 율법주의의 산물이다
그간의 논쟁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가장 길게 이어온 문제가 안식일 문제일 것이다. 안식일 문제는 안식교측에서 가장 자신있게 생각했던 문제이고, 기성교인들을 미혹하는 데 재미를 보아온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문제만은 1회로 끝냈는데 김대성 목사의 특별한 요구에 의하여 안식일 문제만은 2회나 논쟁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안식일 문제의 논쟁에서 안식교는 필자의 비판과 주장을 변증하지 못하고, 계속 피하여 간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그간의 안식일과 주일 문제를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필자는 <교회와신앙> 96년 11월호 140-143쪽에서 구약의 안식일이 폐지되었음을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증거하였다. 그리고 안식교측에서는 역시 96년 11월호 127-133쪽에서 안식일이 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96년 12월호 141-144쪽에서 필자는 안식일이 폐지되었다고 증거하였다. 이 때 나온 핵심적인 사상은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의 안식일이 '절기 안식일'이 아니요 '제칠일 안식일'이라는 문제요, 또한 안식교측이 초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주장했던 부분(행 13:14, 42, 44, 17:2 등)에 대하여 그것은 안식일을 지키려 간 것이 아니요, 전도하려고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는 문제로 압축되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안식교측에서 주일에 예배한 근거가 성경에 없다고 한 주장에 대하여도 충분히 변증하였다(교회와신앙, 96년 12월호 145쪽).
그러나 안식교측은 안식일이 폐지되었다는 96년 11월호 필자의 성경적 증거들에 대하여, 12월호에서는 한 마디 답변도 못하였다는 점을 독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이단논쟁은 성경적인 논쟁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일반 역사에 의해서 주일이 로마의 콘스탄틴에 의하여 시작되었다는 등의 말로 성경 밖에서 논쟁을 하자고 하였다.
김대성 목사가 전혀 변증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교회와신앙> 96년 11월호의 안식일 문제의 반증을 못하였으며, 골로새서의 '안식일'이 '절기 안식일'이 아니라 '제칠일 안식일'이라는(96년 11월호 141쪽) 주장에 대하여도 하나도 반증하지 못하였으며, 또 초대교회의 첫 주일 예배인 오순절 다락방의 모임에 관하여도 아무런 답변도 못하였다. 이것을 유구무언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안식교측은 다시 97년 1월호에서 '안식일이 폐지된 것인가 요일만 변경된 것인가'를 물었다. 이 질문은 안식교편에서 기성교회를 가장 어지럽히기 좋은 호재로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율법이 신약에서 폐해졌다는 말과 완성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듣는 데서 나온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주일 개념은 구약의 안식일 개념에서 연속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 그러나 또한 폐해진 것이다. 전자의 의미가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의미에 속하는 것이요, 후자의 의미가 율법이 폐해졌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다. 또 안식교는 일요일 예배의 기원을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밝혀 달라고 물었는데 ,96년 12월호 145쪽을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한 논쟁을 다시 요약해 보면, 안식교측은 안식일이 폐하지 않았고, 초대교인들은 주일이 아닌 안식일에 예배하였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의 겉옷은 벗었는데, 속옷은 벗지 못한 증거이다. 안식교의 주장이 맞다면, 신약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있거나,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에 예배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없다. 안식교측에서는 신약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나 안식일에 초대교인들이 예배하였다는 기록을 단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안식일이 폐했다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였고,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교인들의 분명한 주일 예배의 근거를 밝혔다.
안식교가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신약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나, 초대교인들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근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 문제의 논쟁은 결국 안식일이 폐지되었다는 것과,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날이며, 초대교회의 첫 예배일이었으며, 성령 강림일이었던 주일에 예배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밝혀준 것이었다. 인도의 도마교도 이집트의 꼽트교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역사적으로 초대교회는 주일을 지켰음을 입증하는 것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그 후 김목사는 억지로 큰 호재라도 잡은 듯이 들고 나온 것이 히브리서 4장 9-10절이다. 거기 "안식할 때"가 원문에 의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교회와신앙, 96년 12월호 156쪽). 그리하여 이 점을 연구하여 이것이 문법적으로, 논리적으로, 성경 상호간의 유기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충분히 다 지적하였다(97년 2월호, 129쪽). 즉 구약의 '사바트'는 '안식일'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안식'도 의미함을 밝혔고, 그것은 신약에도 마찬가지이며, 신학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며, 만일 안식일로 번역한다면 아직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했으며, 끝으로 왜 안식교에서는 같은 단어로 되어 있는 히브리서 4장 10절과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히브리서의 안식은 안식일로 해석하고 골로새서의 안식일은 토요일 안식일이 아니라 절기 안식일이라고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언급은 한 마디도 없이(유구무언) 박창원 편 헬라어 사전의 언어학적 의미롤 한 마디 하고, 심지어 '양심'까지 운운하며 '양심' 없는 소리를 하고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97년 3월호, 117쪽).
2300주야 교리와 조사심판 교리는 안식교의 최고의 교리이자 최고로 엉터리 교리이다
2300주야와 조사심판에 대한 문제는, 이번 논쟁에서 안식교의 교리가 얼마나 비성경적인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문제였다고 본다.
우선 2300주야에 대한 연대 기산점도 엉터리요,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는 방법도, 그 결과도 엉터리이다.
김목사는 어떤 문제를 변증하지 못했는가 살펴보자.
우선 2300주야에 대한 연대해석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안식교는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해서 2300년이라고 해석하는데, 이 해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간단히 비판할 수 있다. 이 예언은 다니엘 8장 9-14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작은 뿔의 횡포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안식교에서는 이 작은 뿔을 로마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안식교의 해석대로 하면 2300년 동안 작은 뿔인 로마가 횡포를 부렸을 때 맞는 말이다.
그러면 안식교의 말대로 기원전 457년부터 1844년까지 2300년 동안 로마가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미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로마는 기원전 457년에는 나타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다음으로는 기산점이 틀렸다. 안식교는 예언의 기산점을 457년으로 하기 위하여 그 이유는 기원전 457년에 성전 건축령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성전은 그보다 59년 전인 516년에 이미 완공되었기 때문이며, 그 전에 성전 건축령이 여러번 내려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1844년에야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조사심판을 시작하셨다는 조사심판 교리는 더욱 엉터리이다. 성경은 이미 예수님이 승천 즉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히 6:20, 9:12).
필자가 여러 가지로 비판했지만, 안식교의 김대성목사는 이에 대하여도 한 마디도 반증하지 못하였다(역시 유구무언). 97년 1월호에서 조사심판에 대한 비판을 받았으면 2월호에서 그 답변이 있어야 했음에도, 김대성목사는 한 마디의 반증도 하지 못했다. 다만 비판만 하지 말고 그 해석을 보여 달라고 하는 말을 하였다. 우선 비판에 대하여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이번 논쟁에서 2300 주야와 조사심판 교리에 대한 비판에 관한 안식교의 답변은 듣지 못하였다.
기성교회의 해석을 보여 달라고 하는 말에 동정심마저 들지 않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한다. 특히 계시에 대하여는 조심하고, 알지 못하면 모르는 대로 두는 것이 인간이 계시에 대하여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이다. 안식교처럼 엉터리로 해석을 하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안식교는 성경을 다 알고 해석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교만의 극치이다. 그리고 네가 대답을 하지 못하면 내 답은 무조건 맞는다는 전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무지한 질문이요 그리고 마치 내가 도둑놈이 아닌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네가 도둑놈인 것을 증명하려는 것과 같다. 내가 도둑이 아니면 네가 도둑되고, 내가 도둑이면 네가 도둑이 아닌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도둑놈이라도 너도 도둑놈일 수 있고, 내가 도둑놈이 아니라도 너도 도둑놈이 아닐 수 있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안식교의 2300주야 문제와 조사심판 교리가 틀렸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과 상관없이 필자의 입장을 알려주겠다.
2300 주야의 바른 해석은 무엇인가?-작은 뿔의 올바른 해석
다니엘 8장 14절의 2300 주야에 관한 해석의 순서는 먼저 작은 뿔이 무엇이냐라고 본다. 작은 뿔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작은 뿔을 알기 위해서는 또한 본문 8절의 수염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수염소는 헬라라고 21절에 해석하고 있다. 본 예언에 나타나는 수양 수염소 등은 나라들을, 그리고 그 뿔들은 왕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염소(헬라)의 큰 뿔은 첫째왕 곧 알렉산더를 예언한 것이며(21절) 이 뿔이 꺾이고 네 뿔이 난 것은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네 왕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런데 이 네 뿔 중에 한 작은 뿔이 날 것이 예언되었는데, 이 작은 뿔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안식교는 그 작은 뿔을 로마로 해석했으나 맞지 않는다. 작은 뿔은 짐승에게서 나온 뿔이 아니라 뿔 중에서 나온 뿔이다. 그래서 이 작은 뿔은 또 다른 나라의 출현으로 볼 수 없고, 한 왕의 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해석이 23절부터 25절까지 나와 있다. 이 작은 뿔은 네 나라 마지막 때에 일어날 한 왕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다(23절).
그런데 이 작은 뿔을 의미하는 왕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작은 뿔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일어날 왕이다(23절).
2.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다(23절 하).
3. 권세가 강하나 자기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24절 상).
4. 비상하게 파괴를 행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할 것이다(24절 하).
5.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할 것이다(25절).
6. 만 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다(25절 중).
7. 결국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어질 것이다(25절 하).
또한 작은 뿔이 행할 횡포는 이렇다.
1. 남편과 동편과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커질 것이다(9절).
2. 하늘 군대의 별을 떨어뜨리고 짓밟을 것이다(10절).
3. 군대의 주재를 대적할 것이다.
4. 매일 드리는 제사를 중지시킬 것이다(11절).
5. 성소를 헐어버릴 것이다(11절하).
6. 진리를 땅에 던질 것이다.
7. 그 기간은 2300 주야가 될 것이다.
8. 2300 주야 후에 무너진 성전이 회복될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예언대로 행했던 왕이 누구인가? 이 예언에 적중한 왕이 바로 안디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이었다. 그는 네 뿔인 네 나라의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때 태어났다(마카비 1:1-15). 그는 궤휼에 능한 자였으며(마카비서 1:11), 그는 파괴를 행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하였다(마카비서 1:20-24). 평화한 때 많은 무리를 멸하였으며(마카비서 1:30), 만왕의 왕을 대적하였으며(마카비 1:40-50), 또한 그는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급사했다(마카비 6:7-13).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예언대로 그 세력이 이스라엘 즉 영화로운 땅까지 미쳤고, 예루살렘을 침략하였으며(마카비 1:16-24), 하늘 군대의 별인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죽였으며, 제사를 중지시켰으며(마카비 1:44-50), 성전을 헐고 진리를 땅에 던져버렸으며(마카비서 1:44-52), 그리고 그의 이러한 횡포는 주전 167년 12월 25일부터 주전 164년까지 2300일 동안 계속되었다.
이렇게 명백한 해석을 무시하고 안식교의 교리를 만들기 위해서 작은 뿔을 로마로 해석하여 조사심판 교리를 억지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안식교의 2300 주야의 해석과 조사심판 교리는 명백한 오류였음이 확실히 밝혀진 것이다.
안식교의 선지자 엘렌 지 화잇은 사단의 선지자이다
이번 논쟁에서 또한 직간접적으로 안식교가 이단 사교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진 내용이 있다면, 화잇의 거짓 선지자 문제였다. 성경은 분명히 가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시의 종결성을 말하고 있는데, 안식교는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교회와신앙, 96년 10월호 150-151쪽).
이는 기성 교회는 성경만이 완전 무결하고 유일한 하나님의 특별 계시라고 믿는 반면, 모든 이단들은 성경 외에도 다른 계시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 특성인 것처럼, 안식교도 이단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요소이다.
이단들이 성경 외에 다른 계시나 선지자를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에 없는 다른 교훈을 만들어 내기 위함이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충분한 진리이다. 다른 계시나 선지자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안식교 역시 화잇의 계시를 통하여, 성경에 없는 다른 교훈(이단교리)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식물에 관한 문제이다.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이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서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3:9).
안식교는 성경 외에 다른 계시와 선지자를 주장하여 성경 외에 다른 교훈(이단교리)을 가지고 있는 한, 이단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안식교는 계시록 12장 17절의 말씀에 기초하여 화잇의 선지자성을 인정한다고 주장하였는데(교회와신앙, 96년 10월호 156쪽), 안식교가 제시한 그 구절(계 12:17)에는 화잇이 선지자라는 말이나 뜻은 전혀 없다. 특정한 성경 말씀을 놓고 이를 살아 있는 누구 누구를 상징한다고 하는 것은, 이단들이 피할 수 없는 성경해석법이다.
김대성 목사는 식물에 대해서도 변증하지 못하였다
성경에 이단들이 주로 가르치고 미혹하는 교리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음식물에 관한 문제이다. 즉 안식교와 같이 음식물에 대한 교리로 미혹하는 이단이 나올 것을 미리 예언하여 경계하고 있음을 볼 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 14:20),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4:1-5),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3:9).
위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볼 때 안식교는 음식물로 생겨난, 이미 성경에 예언된 이단임에 분명하다. 필자는 안식교가 구약의 부정한 음식의 규례를 주장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며, 화잇의 계시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신 육식을 금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교리라는 것을 97년 3월호를 통하여 비판하였으나(131-135쪽), 이 역시 다음 호인 4월호에서 아무런 반증을 하지 못함으로(여기서도 유구무언이었다) 김대성 목사야말로 '수준이하'의 논쟁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계획을 변경한 것처럼, 화잇의 예언도 그렇다고 말한 점에 대하여
화잇은 1856년 안식교 총회에서 총회 대표자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살아서 맞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대성 목사는 필자가 그 동안 줄기차게 지적해온 화잇의 거짓 선지자성 부분에 대하여 다른 것은 되든 안 되든 변명이라도 하였지만(특별히 노예제도 문제에 있어서), 그러나 1856년 총회의 예언에 대하여는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였을 뿐 제대로 변명을 하지 못하였다. 이 예언이 있은 후 그 당시 사람들이 이미 다 죽고 없음을 볼 때 이것만으로도 화잇은 거짓 선지자임을 필자가 비판하였다(교회와신앙, 96년 10월호 147쪽; 11월호 137쪽).
그러자 김대성 목사는 두 번에 걸쳐 대답을 하였다(96년 12월호, 97년 2월호).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세 가지가 된다.
첫째는 비록 화잇의 예언이 틀렸지만 10여 년이 지난 다음 화잇이 "많은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므로 재림이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교회증언 2권, 영문 194)"는 것이다(96년 12월호 150쪽)는 것이다.
둘째는 바울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기 시대에 있을 것을 기대하였던 것처럼(살전 4:15) 화잇도 그렇다는 것이다(96년 12월호 150쪽).
셋째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했는데(출 6:6-8), 결국 20세 이상된 자들을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신 것처럼(민 14:26-30) 화잇의 재림 예언도 그렇다는 것이다(97년 2월호 135쪽).
필자는 이렇게 불경스런 말은 세기적으로 들어본 일이 없다. 비판해 보자.
먼저 화잇이 10년 후에 재림이 지연되었다는 것을 말했으니 그가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가? 그런 예언은 천하의 사기꾼도 그리고 천하의 멍청이도 할 수 있는 예언이다. 해보고 틀리면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됐다고 하면 되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렇게 말했다는 점이 그녀가 인간적으로도 정직하지 못한 사기꾼 선지자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땅에 시한부종말을 예언한 사기꾼 예언가 중에, 그 예언이 틀렸을 때 회개하고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거의 없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위의 말은 화잇에게는 어떤 잘못도 있을 수 없다는 전제 속에서 가능한 말이다.
다음으로 바울의 재림 대망사상과 화잇을 비교한 문제이다. 먼저 종말신앙은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의 마땅한 신앙의 윤리이다.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는 언제라로 주님이 오시기를 바라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이 원하는 진정한 종말신앙이다. 시한부 내지는 시한부적 사상에 의해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자기 시대에만 종말신앙을 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진정한 종말신앙을 파괴하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 시대에 주님이 오시기를 원하고 그 가능성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오신다고 예언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바로 김대성 목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시한부종말론으로부터 생겨난 안식교인으로 어쩔 수 없이 숨어 있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과 화잇을 동등한 선상에서 말하는 것 자체도 불경스런 일이라고 본다.
끝으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경륜과 화잇을 비교하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 하신 말씀이 거기서 나온 사람들은 무조건 기계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고 하는 예언은 아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은 광야에서 한 사람도 죽지도 않는다는 예언이 아니었다. 언약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그 언약이 파기되었는가? 아니다. 비록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셨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김대성 목사의 말로 하면 이 땅에 어떤 시기꾼 예언가의 예언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진다. 예언을 해 놓고 틀리면 그것을 하나님의 계획 변경과 동일시해버리면 되니까 말이다. 안식교인은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화잇을 믿는 것인가? 그런 엉터리 예언을 말한 사람이 화잇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비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역시 이 말은 화잇을 하나님과 같은 경륜자로 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대하여 이해가 안 될 때에 그 뜻을 알기는 원하지만 그 주권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기 전에 신앙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논쟁을 계속해 오는 동안 안식교인들은 화잇을 신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정상적인 장로교인이라면 칼빈을 존경하지만, 칼빈의 실수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칼빈을 숭배하거나 믿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윌리안 부스에 대한 구세군의 입장이나 웨슬리에 대한 감리교인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바로 안식교인들이 화잇을 그렇게 보는 것이, 화잇이 적그리스도요 안식교인들이 이단인 것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감히 어떻게 화잇의 예언이 빗나간 점과, 주권자로서 인격으로서 그 계획을 변경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과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표절과 차용에 대하여
화잇은 생전에 수많은 계시를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쓴 책의 상당 부분이 다른 사람의 글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화잇의 표절 문제는 안식교인들이 가장 아파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도 표절이란 비신사적인 일로 세상에서도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인데, 기독교인이란 사람이, 그것도 선지자란 사람이, 그것도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남의 책을 보고 책을 쓰고 그것을 계시라고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실을 밝히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필자가 이 점을 드러내자 안식교에서는 변명을 해보려고 하다가 김대성 목사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 그것은 '표절'이 아니고 '차용'이라는 말을 하였다(96년 10월호 152-153쪽). 성경에 하무라비 법전의 개념과 문체가 있었다는 점과, 솔로몬이 아가서를 다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과, 이사야서의 일부와 미가서의 유사성과, 역대상•하서가 사무엘상•하와 또는 열왕기상•하와 상당 부분이 같다는 점과, 사복음서가 상당 부분 같다는 점과,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이 에녹서에 나오는 자료를 인용했다는 점을 들어서, 화잇은 차용을 한 것이지 표절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의 내용을 하나씩 비판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김목사 식으로 한다면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의 어떤 표절도 차용이란 말로 합리화될 수 있다. 김목사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고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세상에서는 김목사가 말하는 '차용'을, 바로 '표절'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남의 책을 80% 이상이나 표절을 해놓고, 그것이 차용이니 어쩌니 하는 비상식적인 말이 종교인의 입에서 가능한 말인가? 바로 이단이기에 가능한 말이다.
이것도 화잇을 신봉하고 화잇의 글을 성경과 같은 수준에서 놓고 보기 때문에 나온 엉터리 변증으로 보인다. 화잇이 한 행동이나 말은 무엇이든지 다 신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일반적인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고 차용이라고 하면 안식교인들에게 용납될 수 있겠는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안식교인들은 화잇의 신격화를 겉으로는 부정하고, 화잇의 계시를 성경이라고 보지 않는 것처럼 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화잇은 숭배의 대상이거나, 화잇의 글은 성경과 동등한 ,내지는 그 이상의 계시로 여기고 있는 증거라고 본다.
결론: 안식교는 정통교회가 아니다
금번 안식교와의 논쟁을 통하여 안식교측의 주장하는 교리들이 비성경적이며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고 본다. 안식교측은 자신들의 교리를 소개할 뿐, 그 비판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못하였다. 필자는 그것을 유구무언 씨리즈라고 하고 싶다. 그나마도 변증한 부분에 있어 어떤 부분은 전혀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기보다 형식적이고 세상적인 변증을 한 부분이 많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안식교의 교리가 대부분 성경에 근거한 것처럼 할 뿐, 사실은 화잇의 계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기성교회는 안식교를 정통교회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22부에서 계속
출처 :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u6La&fldid=Qlnd&datanum=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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