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2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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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대한 반증
그래도 화잇의 빗나간 거짓 예언을 성경적이라고 변호할 것인가?
안식교는 화잇을 말세의 선지자로, 남은 교회의 특징으로 믿고 주장하고 있음은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그러나 필자는 화잇이 거짓 선지자임을 여러 가지로 비판하였다. 화잇을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예언이 비성경적이며, 성취되지 않은 빗나간 예언이 많다는 것이었다.
김목사는 본 논쟁 중에 예언이 성취되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라는 점을 형식적으로는 인정을 하면서도, 화잇의 빗나간 예언의 의미를 교묘한 말로 변호하였다.
그 중에 하나를 예로 들어보면,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필자가 <교회와신앙> 96년 11월호 137쪽에서 화잇이 노예 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비판을 하자 안식교측에서는 96년 12월호 149쪽에서 변명하기를, '반역을 일으킨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예언한 것인데, 그 부분을 삭제하고 뒷부분만을 가지고 원래의 의미를 왜곡시켜 비판했다고 하였다.
그 래서 필자는 97년 1월호151쪽에서 화잇의 노예제도에 관한 예언을 초기문집 283족의 문장을 소개하면서 조건을 붙여서 예언했다고 하는 안식교측의 변명이 거짓말이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랬더니 안식교측은 97년 2월호 134쪽에서 변명하기를, 그 내용은 원문에도 번역본에도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안식교측은 원문에도 역본에도 없다고 잡아떼던 그 내용을 그 책 93년도판 179-180쪽에서 발견했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 내용은 미래적인 사건을 현재적으로 예언한 것이라고 97년 3월호 117쪽에서 변명을 하였다. 필자가 제시했던 책은 76년도판인데 93년도 책과 페이지가 달라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97년 3월호 126쪽에서 원문에 없는 내용이 어떻게 역본에 있는지 답변을 요구하자 ,안식교측은 이에 대해서는 답을 못하고 필자가 그 책의 출판 연도를 밝히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였다. 그리고 요청한 <교회증언> 원문도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다.
다시 정리해 보면, 안식교는 재림시까지 존재한다는 노예제도에 대한 화잇의 예언이 원문에 '반역을 일으킨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여 예언한 것이라고 했다가, 다음에는 아예 원문에 없다고 함으로써 화잇이 그러한 예언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변명하였다가(그 내용이 있으면 거짓 선지자가 됨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처음에 '반역을 일으킨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 조건이 있었다고 했던 말에 대한 변증은 '옳다 그르다'는 말도 없이 그냥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미래적인 사건을 현재적으로 예언한 것이라는 말로 변명하고 말았다.
화잇의 거짓 예언에 대한 안식교의 변명은 이런 식이었다. 이것은 화잇에게는 절대로 잘못이 없다는 전제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본다. 이래도 저래도 화잇의 거짓 예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역을 일으킨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이란 말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필자가 보기에 김대성 목사가 필자보고 화잇을 잘 모른다고 했는데, 그 동안 횡설수설한 점을 볼 때 화잇을 잘 모르는 것은 필자가 아니라 김대성 목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화잇의 노예제도의 예언에 대하여 취급하려 한다.
"나는 노예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무지 가운데 가두어 둔 노예들의 영혼들에 대하여 책임 져야 할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노예들의 죄악들이 주인에게 전가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지 가운데서 타락하여 하나님과 성경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으며 주인의 채찍밖에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짐승보다도 더 낮은 수준에 있는 노예들을 하늘에 들이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정심 많은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실 것이다. 반면에 주인들은 마지막 일곱재앙을 만날 것이며 둘째 부활에 다시 일어나 고통을 받다가 마지막 비참한 죽음을 당하여야 할 것이다"(엘렌 지 화잇, 시조사, 초기문집 283쪽).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첫째, 노예의 구원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것이다. 무지한 노예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으나 하나님의 동정심으로 일반인과 달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예의 죄를 주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노예가 나오지만 이러한 말씀은 없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정반대의 사단적인 이론이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노예 오네시모는 분명히 구원받은 노예였다. 이로 보아 화잇의 노예에 대한 예언은 성경과 맞지 않다. 이에 대하여 김대성 목사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가 못 받는가? 못 받는다면 엘렌 화잇의 말이 맞는 것이다"라는 짧은 말로 넘어가려고 하였다(교회와신앙, 97년 4월호 152쪽). 노예의 영혼은 주인에게 예속되는 것처럼 하는 말이 불신자가 불신에 대한 책임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과 어떻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화잇의 주장은 '옳다 그르다' 하는 논쟁은 그만두더라도 근본적으로 기성교회의 인간관과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둘째, 이 예언대로 한다면 노예제도가 일곱 재앙이 내릴 때까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교에서 말하는 일곱 재앙은 말세의 재림 직전에 있을 계시록의 7재앙을 말하는 것으로 안식교인들은 아직도 일곱 재앙은 내리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화잇은 이 예언에서 노예의 주인들이 일곱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으니, 이 예언이 성취되려면 일곱 재앙이 내릴 때까지 노예의 주인들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노예제도는 폐지되었고 당시의 노예의 주인들도 다 죽었으나 아직 일곱 재앙은 내리지 않았으니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라리 비록 미국의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지금도 내적으로 노예와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김목사는 이 문제에 대하여 한 마디도 답변하지 못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째서 영원의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영원한 '아이오니오스'(aionios)요 영벌의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한 세대의 '아이오니오스'(aionios)인가?
필자는 97년 2월호에서 안식교의 내세관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특히 안식교가 영원지옥을 부인하면서, 영원(aionios)이라는 단어"아이오니오스(aionios)"가 한 세대, 한 세상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도 한도 끝도 없는 영원한 지옥이 아니라는 주장(신계훈,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202-203쪽)에 대하여, 필자는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영영한 불(aionios)에 들어가라고 하였고(41절), 역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aionios)생에 들어가라고 하여, 같은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쓰여졌음을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한 '세대'나 한 '세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얻을 영생'아이오니오스'(aionios)도 한 '세상'으로 끝나는 영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신계훈 씨의 말처럼 영(aionios)생이 한이 없는 생명을 말한다면, 영(aionios)벌도 한이 없는 영원 지옥을 말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문법적인 결론이 된다(41절).
또 마가복음 3장 29절의 성령 훼방죄가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했을 때도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사용되었는데,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한 '세대'나 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12장 32절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대성 목사는 이에 대하여도 유구무언이었다.
<교회와신앙> 97년 2월호 140쪽에서 "헬라어(푸뉴마, 푸쉬케)와 히브리어(루아흐, 네페쉬, 네쇠마) 단어가 1658회 나오지만, 불멸하거나 몸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영혼의 개념으로 사용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는 안식교측의 새빨간 거짓말에 대하여, 97년 3월호 130쪽에서 누가복음 23장 46절과 사도행전 7장 59절의 몸과 분리의 개념으로 사용된 푸뉴마와, 누가복음 24장 39절의 "영(푸뉴마)은 살과 뼈가 없으되"를 인용하여 반증하였다.
김대성 목사는 이에 대하여도 역시 유구무언이었다. 김목사는 오히려 97년 4월호 153쪽에서 필자의 변증을 가리켜 '수준 이하의 변증 논리'라고 하였는데, 수준 높은 논쟁을 했던 김목사는 왜 수준 높은 대답을 못하고 있을까?
그래도 안식교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에서 태어난 사생아가 아닌가?
김대성 목사와 논쟁을 하며 생각나는 옛 말이 있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다. 재림의 시기를 정하여 시한부 재림설을 전파한 사단적인 밀러의 종말 운동에 대해서도 안식교는 옹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안식교 외에도 그 간에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회개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는 점과, 또한 밀러가 존재하지 않고는 화잇이 존재할 수 없다는 점과, 화잇이 존재하지 않고는 안식교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과, 그리고 안식교가 존재하지 않고는 김대성 목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으로 볼 때, 백 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밀러의 시한부 재림설과 시한부종말론 운동에 대한 안식교의 변명은 스스로 모순에 빠져 버렸다.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에 대하여 안식교측은 두 가지로 변명하고 있는데, 열거하고 비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밀러가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했을 때는 안식교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이기에,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안식교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요,
둘째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비록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성령운동이었고 첫째 천사의 기별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모순이 있다.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안식교와 무관한 것이라면 왜 안식교는 굳이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이 성령의 기별이었다고 변명해야 하고, 또 한 편으로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하면서도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모순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가?
안식교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과의 관계를, 개신교와 천주교의 관계에 비유하여 자신들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개신교와 천주교와의 연속적 내지는 불연속적인 관계와, 밀러와 안식교와의 연속적 내지는 불연속적인 관계는 유사성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안식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개혁자들은 천주교의 그 교리를 비판하여 피를 흘리며 개혁을 하고 나왔지만, 안식교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비판하고 개혁해서 나온 무리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사단적인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성령의 운동이었다고 찬양하고, 첫째 천사의 기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밀러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점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 의해서도 쉽게 시한부종말론을 말하면 밀러가 거론되고 그 후손으로 안식교가 꼽히는 것이다. 즉 쉽게 일반인들은 밀러의 운동에 대한 비판을 똑 같이 안식교에 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에 참여했다가 나온 '여호와의 증인'들은, 비록 이단이지만 전혀 밀러와 관련시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안식교처럼 그것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제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안식교가 공식 명칭하에 조직되기 전의 일이기 때문에 안식교가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안식교의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로 비판받을 수 있다.
첫째로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은 안식교의 핵심교리라는 점이다. 안식교의 교리를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세 천사의 기별이다. 세 천사의 기별 중에 첫째 천사의 기별이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밀러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전한 기별자가 되는 것이다. 만일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안식교와 무관한 것이라면 안식교의 기별은 세 천사의 기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교는 자신들의 교리를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포함해서 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밀러는 안식교의 첫째 천사의 사자로서 안식교의 사상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역사를 볼 때 대한민국이 있기 전에 조선, 고려, 신라, 백제, 고구려, 고조선 등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앞의 나라들은 우리 나라가 아니란 말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조선 시대의 이순신 장군은 남의 나라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 사람인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안식교(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에서 한 일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하는 한, 그리고 2300주야 문제나 조사심판 교리가 살아 있는, 한 화잇은 밀러파라고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겠는가?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역사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그리고 직접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상이 같으면 같은 범주 안에 두는 것은 상식이다. 예컨대 영지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고 또 영지주의자들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어도 어떤 사람의 사상이 영지주의와 같을 때 그를 영지주의자라고 하는 것이다. 하물며 밀러의 재림 운동의 영향권 내에서 그리고 그 사상을 벗어나지 못한 안식교를 어떻게 밀러와 다른 교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
둘째,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분명 비성경적인 사단의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화잇은 밀러가 성경을 연구할 때 천사가 가르쳐 주었다고 했는데(엘렌 지 화잇, 시조사, 쟁합 360쪽) 이는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킨다. 즉 성취되지 않은 시한부종말 예언의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이다. 즉 거짓 예언도 하나님이 시켜서 천사가 했고, 또 그것을 실행하지 않게 한 것도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짓 영으로 만드는 것이다.
김대성 목사는 참선지자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4가지 기준을 말하면서 그 둘째가 예언 성취 여부라고 하였다(교회와신앙, 96년 12월호 148쪽). 그렇다면 김대성 목사의 말에 의하면 밀러는 사단의 영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기별은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한다면 어떤 엉터리 예언도 다 합리화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는가? 안식교에서 지난 1992년 10월 22일의 시한부종말론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하는 것을 보았다. 밀러의 1884년의 기별이 첫째 기별이 될 수 있다면, 과연 1992년의 기별이 넷째 기별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도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쓰더라(계 10:10)는 말씀이 밀러의 종말론을 가리키는 것인가?
안식교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잘못된 거짓 운동이었다고 하지 못하고 있으며 할 수가 없다. 김목사는 <교회와신앙> 97년 4월호에서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로 밀러의 시한부종말 운동을 '인간의 위기'라고 표현하였으며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기회'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성경으로 변명하려고 했는데 바로 계시록 10장 10절의 말씀이다. 즉 사도 요한이 받은 계시 가운데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으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는 말씀이다. 이 구절을 밀러가 시한부종말론을 깨닫고 전할 때는 기쁨으로 했으나 그 예언한 것이 맞지 않아서 실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 구절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밀러의 시한부종말 운동의 실패가 이 구절의 예언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우선 이 말씀은 밀러의 사단적인 재림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라고 되어 있다. 누가 보아도 여기 '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쓰더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는 꿀같이 달지만 그 말씀을 적용해서 말씀대로 살게 될 때 받는 핍박과 고난, 시련 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밀러의 재림 예언이라고 하는 성경 해석이, 바로 이단들이 하는 성경해석 방법이다. 계시록의 감람나무를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나, 엘리야가 자신이라고 하거나, 요한이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나, 본문을 밀러의 예언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것은 유사한 방법의 성격해석이다.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어느 때 어떤 운동이든지 비성경적인 것이며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재림의 시한을 정하는 것, 예언된 재림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어떤 궤변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고 정당화될 수 없다.
안식교의 말대로 시한부종말론 운동의 실패가 계시록 10장 10절의 예언한 쓴 맛의 경험이라면 그간에 모든 시한부종말론도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장림의 92년 10월28일 시한부종말론 운동도, 여호와의 증인의 수차에 걸쳐 실패한 시한부종말론 운동도, 안식교의 분파인 시기파들의 시한부종말론 운동도 다 같이 쓴 맛이라고 하면 된다.
장로교가 분파됐다고 비판하는 점에 대하여
김대성 목사는 한국의 개신교가 100개 이상으로 난립되어 있는 실정을 들면서 그 원인을 교리 문제가 아니라 감정 혹은 권력 다툼의 결과라고 보고 비판하였다(교회와신앙, 97년 4월호).
이 부분에 대해서도 먼저 안식교에 묻고 싶다. 안식교는 기성교회와 다른 교파인가 아닌가? 그 동안 자신들도 기성교회 안의 다른 하나의 교파와 같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안식교도 기성교회란 말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도 기성교회를 공격하는 것은 바로 안식교가 기성교회와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이 문제가 자신의 문제라고 본다면 비판하면서도 반성하고 아파하고 함께 회개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 렇다고 교파가 난립되는 것을 옳다고 하는 것도 아니요 그리고 다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다른 모든 이단들이 기성교회를 비판하면서 그 반사이익을 누리며 살아가듯이 안식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실제로 안식교인들은 기성교회 교인들을 절대로 형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안식교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를 비판하려면 그 비판의 대상이 누구였든지 그 기준은 같아야 한다. 세상에서도 두 개의 저울과 두 개의 자를 사용하는 자는 악한 자이다. 그렇다면 김대성 목사가 볼 때 이흥선 목사는 예장 합동측으로부터 제명을 당하고 안식교로 들어가지도 않고 기성교회 이름으로 자신이 또 교단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는 안식교를 옹호해 주는 사람이니 이 비판의 대상에서 예외인가?
그보다 더 모순된 점이 있다. 안식교 안에는 얼마나 많은 분파가 있는가? 열거해 보자.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 개혁운동이 있고, 제칠일안식일 예수교 안성 새중앙교회가 있고, 엘리야 복음선교회가 있고, 안상홍증인회가 있고, 시기파가 있고, 절기파도 있고, 그리고 경배파도 있다. 안식교인15만 명에 이렇게 많은 분파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교인 500만 명이 넘는 기성교회의 분파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옛말에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분파에는 두 가지가 있다. 비난을 받아야 하는 분파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분파도 있다. 예컨대 아브라함이 롯과 갈라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어떻게 감리교와 장로교를 하나로 합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리교와 침례교를 합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서로 존경하고 잘 조화있게 지내고 있지 않은가? 서로 이단이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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