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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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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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9(97년 4월호)
--밀러의 재림운동과 안식일교회--
<교회와신앙>측
안식교는 시한부종말운동으로부터 출발된 집단이다.
지난 호에 대한 반증
돼지고기와 안식교
부정한 음식을 금하고 있는 안식교인들에게 초기에는 부정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과 화잇에게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뜻의 계시가 있었다는 점은 대단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김대성 목사는 화잇의 돼지고기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은 못하고 안식교의 이름이 1860년도에 명명되었고 1863년에 조직되었기 때문에, 그 때는 안식교의 이름도 존재하지 않았던 때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안식교 내에서 돼지고기를 금해야 한다는 A부부에 대한 책임이 안식교에는 없는 것처럼 말하였다. 돼지고기를 먹었던 그 시대나
화잇이 돼지고기에 대한 계시를 받은 그 때는 안식교가 아니었다는 말인 것 같다.,다음과 같은 잘못이 있음을 지적한다.
첫째는, 안식교의 시작을 안식교란 이름이 명명되고 조직되었던 해로 한다면 안식교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1860년이나 1863년보다 앞서 받은 화잇의 계시들에 의해서 안식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안식교는 이미 그 전인 1842년에 제1차 재림총회가 있었고(오만규, 재림교회사 61쪽), 화잇은 1844년부터 계시를 받았다(성서기초교리, 328쪽). 1847년에는 화잇이 안식일에 관한 성소의 계시를 받았다(오만규, 재림교회사 64쪽). 김목사의 그런 논리로는 안식교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화잇이 1860년이나 1863년 전에 이미 받은 계시들 위에서 안식교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화잇의 계시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문제는 화잇의 계시이다. 안식교는 화잇의 계시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요, 이미 앞에서 김대성 목사가 밝혔듯이 화잇의 계시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으며, 모든 안식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안식교가 공식 명칭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라는 이름이 1860년에 명명되었다고 해서, 그 전에 받은 화잇의 계시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화잇의 그 전 계시들 중에 어떤 것이 참 계시이며, 어떤 것이 참된 계시가 아닌지 밝혀야 할 것이다.
1860년 전의 화잇의 계시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누구보다도 안식교인들이 스스로 안식교를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노예제도에 대한 화잇의 계시 문제
노예제도가 재림시까지 있을 것이라는 <초기문집> 283쪽(1976년판)의 화잇의 계시에 대하여 김대성 목사는 원문이나 번역본에도 없다고 주장했다가(97년 2월호) 한 달 뒤인 3월호에서 1993년판 번역본에 그같은 내용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원문에 관한 언급은 피한 채 역본에 그 내용이 있음을 늦게 시인하면서 노예 문제와 노예의 주인 문제에 대하여 나누어서 대답을 하였다. 노예는 자신의 의지나 양심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불로 멸망당하는 일이 없게 하신다는 것이요, 그리고 주인들이 일곱 재앙을 만난다는 것은 미래의 사건을 현재로 내다보고 한 말이라는 것이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역본에는 있음을 시인하였는데 원문에도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역본에 있다는 말인지, 어떤 역본에는 있고 어떤 역본에는 없다는 것인지 말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밝혀주기 바란다.
그런데 원문에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김목사가 처음에는 출처의 문제를 삼았다가, 이제는 그 내용은 있지만 하자가 없다고 변증하고 있음이 이상한 일이다. 인간이란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다. 김목사가 그렇게 자신있게 "원문에도 역본에도 없다"고 했다가, 이제 있다고 한 실수를 이해한다. 그러나 출처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그 내용에 하자가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출처가 확인되니 이제는 그래도 화잇의 계시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이는 화잇의 모든 말과 글은 무엇이든 절대로 틀림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한 변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둘째, 노예는 무자비한 학대 속에서 자신의 의지나 양심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으니 불로 멸망당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화잇과 김대성 목사의 인간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노예는 양심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말이다. 노예는 예수 믿을 양심이 없다는 말이다. 누구의 영혼이 누구에게 예속될 수 있는가? 이 땅에 어느 정도 자유가 있어야 예수를 믿을 양심을 소유하는가? 지금도 형식적으로는 노예가 없는지 몰라도, 옛날의 노예보다 더 학대받으며 살아가는 현대판 노예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양심의 자유가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점은 구원이 이원화된다는 점이다. 지배하는 자의 구원과 지배받는 자의 구원이 달라질 것이다. 김대성 목사의 말에 의하면 노예들은 어차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양심도 없으니 결국 불로 심판을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화잇이 보는 노예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인간인 모양이다. 화잇이 보는 인간에게는 양심의 자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나누어지는가? 아니면 인간 자체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인간도 있고, 있는 인간도 있는가? 구원과 심판이 이원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과 어긋나는 사단적인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셋째, 김목사는 화잇이 당시 사람들이 살아서 재림을 맞이할 것처럼 말한 것은 미래적인 사건들을 현재적인 것으로 말하고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며, 마태복음 10:23을 그 증거로 들었다. 우선 화잇의 사단적인 계시를 먼저 놓고 생각해 보자. "나는 이 총회에 출석한 무리들을 보았다. 천사는 말하되 더러는 인내의 밤이 되고 더러는 마지막 일곱 재앙의 대상이 되고 더러는 살아서 지상에 남아 있어서 예수께서 오실 때에 변화하게 될 것이다"(MWHC. 102쪽).
이는 한 마디로 논리적인 평형도 신학적인 평형도 맞지 않는 말이다. 화잇은 그 당시 일곱 재앙이 자신이 살아 있는 그 때를 기준으로 조만간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 안식교에서 이해하는 일곱 재앙이란 말세에 재림 직전에 있을 사건으로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우선 미래의 사건을 현재로 표현했다면 '일곱 재앙'이란 말과 '살아서'라는 말의 시기가 같아야 한다. 오늘날의 시점으로 볼 때 '일곱 재앙'이란 말의 시제는 미래이고 '살아서'라는 말의 시제는 과거이니 미래의 사건을 현재로 내다보고 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는 과거이고 하나는 미래이거나, 하나는 상징이고 하나는 실제라면 개 몸에다 소 다리를 붙여놓은 것과 같고, 쇠와 나무를 붙여 놓고 전기를 통하려고 하는 것과 같고, 그림 위에 그려진 벌판에도 궁전을 짓겠다고 쇠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마태복음 10:23의 내용은 화잇의 글을 그렇게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 김목사의 말로 한다면 이 땅의 모든 시한부종말론도 잘못될 것이 없게 된다. 미래의 사건을 현재로 말한 것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일 문제의 질문에 대하여
필자는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96년 11월호에서(140-142쪽) 안식일이 폐지된 것이라는 점을 여러 측면에서 변증하였다. 그런데 김목사는 계속 '안식일이 폐지된 것인지, 요일만 변경된 것인지' 답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 문제는 전호의 글들을 잘 살펴보기 바라고, 필자 편에서도 기성교회가 오해하고 있는 주일개념에 대하여,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율법과 안식일에 대하여 더 상세히 논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데 지면상 원고지 200매까지 쓰기로 한 종결편인 다음 호에서 자세히 취급하고 싶다.
히브리서 4장 9절 '사바티스모스'의 해석에 대하여
필자가 볼 때 김목사는 안식일 부분에 대하여 가장 열을 올렸다고 본다. 그 중에도 위의 본문에 대하여 열을 올리는 것은 이 말로 헬라어를 잘 모르는 기성교인들을 미혹하는데 재미를 보고 또 안식교인들로 토요일을 지키는데 용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호에서 필자는 이 단어의 언어적인 해석이 '안식일'로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안식'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를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충분히 제시했다. 그런데도 김목사는 구체적인 변증도 없이 양심적인 성경해석이 아니라는 등의 말을 늘어 놓았다.
다음과 같이 다시 변증한다.
우선, 성경의 어떤 단어든지 언어적이고 문법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어도, 신학적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종말이 자신이 살아서 이루어질 것으로 말한 화잇의 사단적인 계시를, 미래를 현재로 보고 한 말이다는 김목사의 그 말은 신학적인 해석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음으로, 필자가 이 말을 '안식'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시한 다른 성경과의 비교와 이유 중에 어떤 것이 틀렸는지 하나만이라도 구체적으로 밝혀주기 바란다.
본문의 문맥을 보면 '안식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가나안을 참 안식의 모형으로(3:16-19), 창조시의 안식일을 참 안식의 모형으로(4:4-5) 말씀하면서 참 안식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참 안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안식교의 주장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마음의 안식을 말하는 것이다(4:2-3). 즉, 안식할 때가 남아 있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구원의 안식을 얻을 때가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역 성경은 '안식할 때', 공동 번역은 '참 안식', 흠정역(K. J. V.)에서는 '한 안식', 현대어 성경에서는 '완전한 안식', 그리고 새번역에서는 '안식하는 일'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바로 이만큼 안식교와 기성교회가 다른 것이다.
다시 한 번 분명한 답을 요한다
그 동안에 안식교 측은 여러 부분에서 답을 회피하고 지나온 것들이 많다. 물론 마지막 호에 다시 한 번 다루겠지만 이 논쟁이 끝나기 전에 회피하지 말고 답해 주어야 할 것이 있다. 안식교 측은 96년 9월호에서 구원론에 대하여 주장하기를, 1888년 안식교 총회에서 율법의 행위가 강조된 구원론이 믿음을 강조하는 구원론으로 대전환되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10월호에서 필자는 안식교의 구원 교리가 무엇이 어떻게 대전환되었는지에 대하여 물었으나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다. 이 논쟁이 끝나기 전에 대전환된 안식교 교리가 무엇인지 꼭 밝혀주기를 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음식물 문제에 대하여
1) 채식과 육식의 문제
안식교측은 채식교리에 대하여 두 가지로 변증하였다.
첫째는 '사람이 아무 것이나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식물의 범위 안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교는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왜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지정하신 육식을(창 9:3-4) 금하는가? 육식은 사람이 스스로 취한 식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지정하신 식물이므로 육식을 금하는 안식교의 교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일이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짓이다. 안식교가 여호와 하나님의 믿고 있고 성경의 계시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한 것을 먹지 말하고 금하는 마귀적인 교리를 빨리 없애야 할 것이다.
둘째로 시대는 바뀌어도 식물은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사람이 같기 때문에 식물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교는 자신들의 논리와도 모순되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구약 시대에도 육식을 하였고 신약시대에도 육식을 하였다. 창세기 9장에서 육식을 지정하신 이후에 신약시대에도 바꿔지지 않았으며, 구약의 아브라함으로부터 믿음의 선조들과 제사장 선지자들이 다 육식을 하였고, 신약시대에 예수님도 육식을 하셨으며, 고기를 먹이시기도 하셨는데, 거짓 선지자인 화잇의 계시에 따라서 육식에서 채식으로 식물을 바꾸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교리인 것이다.
2) 부정한 음식에 관한 문제
안식교측은 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문제에 대하여도 두 가지로 변증을 했는데 그 첫째의 내용이 사도행전 10장 11-15절의 베드로의 환상의 내용이다. 이 환상은 부정한 음식의 규례에 대한 폐지를 확실히 증명하는 내용인데도, 안식교는 오히려 부정한 음식을 신약시대에도 금하라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이 환상을 주신 배경은 무엇인가? 십자가 이후에 이방인과 유대인의 벽이 무너지고(엡 2:14) 복음은 이방인에게도 전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방인을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과 동일하게 취급하였다. 그런 사상을 가진 베드로에게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기 위하여 바로 이런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얼마나 베드로가 부정한 음식과 이방인을 싫어했으면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말씀하셨는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안식교인들로 이 환상이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의미의 환상임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이 환상에서 음식은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요 복음은 이방인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부정한 음식은 금하시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은 전해져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더러운 방법으로 깨끗한 교훈을 주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기만하신다는 말이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불합리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실 수 있는가? 얼마든지 바른 방법으로, 오해도 없는 방법으로 교훈하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김목사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역시 화잇의 마귀계시를 합리화 하기 위한 전제론적 성경해석으로부터 나온 결과라고 본다.
둘째로는 부정한 음식이 건강 문제이기 때문에 폐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지만 교리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안식교의 주장도 비성경적이고, 또한 안식교인들의 실제 주장과 다르다.
우선 그렇게 주장하면 먼저 성경과 달라진다. 레위기 11장의 부정한 음식의 규례는 건강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레위기 11장에는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을 소개하면서, 그 이유는 부정하고 가증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건강하기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하고, 가증하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이 건강 문제라면 음행도 건강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사야는 스스로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는데(사 6:5) 입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말인가? 우상숭배가 가증하다고 했는데(신 7:25) 그것도 건강 문제란 말인가? 구약의 음식 문제는 분명히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교리의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정한 음식에 대한 교리는 폐하신 것이다. 만일 안식교의 말대로 음식의 부정하고 가증함의 규례가 신약시대에도 살아 있다면, 지금도 경도하는 여인도 부정해야 하고, 출산한 여인도 부정해야 하며, 시체를 만진 사람도 부정해야 할 것이다. 구약의 부정하고 가증함의 문제는 건강 문제만이 아니고 교리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안식교가 음식 문제를 건강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교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식교의 교리 문답과 같은 <최대의 책에서 얻는 문답>이라는 책 425면의 12문에서 "예수님의 재림시에 어떠한 사람들이 멸망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그 답으로 이사야 66장 15-17절로 대신해 놓았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즉 돼지고기나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고도 또 음식 문제는 교리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모든 안식교인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안식교에서 음식 문제는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교리 중의 하나임을 증명하는 실례이다.이 점은 채식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식교의 선지자 화잇이 그렇다. 화잇은 채식 문제를 계시로 받은 기별인 것이다. 비록 사단의 계시이지만, 화잇이 받았다는 계시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백성이 육식에 대항하여 굳게 서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내게 제시되었다. 하나님께서 만일 당신의 백성이 이 기별에 유의하기를 원하시지 아니하신다면 저들이 깨끗한 피와 명석한 정신을 갖기 원할진대 육식의 사용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기별을 30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전하셨겠는가? 육식을 함으로써 동물적 성질이 강화되고 영성은 약화된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교회에 보내는 권면 2권, 412쪽). "유지(동물의 기름)를 넣지 않고 가능한 원상을 살려서 준비한 곡물과 과실은 승천하기 위하여 준비한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의 식탁에 차려질 음식이다"(위의 책 398쪽). "고기를 먹으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빛과 조화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음식물과 식생활에 관한 권면, 442쪽).
위의 주장이 교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먹는 문제인 채식교리가 정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가! 즉 채식 문제가 구원문제화 되어 있는데 이것이 교리가 아니고 건강 문제라면 무엇이 교리 문제이고 무엇이 건강 문제인가? 안식교의 채식교리는 교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교리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더 위선적이고 정직하지 못한 변증이 아닐 수 없다.
비성경적인 시한부종말론으로부터 시작된 안식교
밀러의 재림운동(Millerite Movement)
군 대위 출신의 농부였던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ite, 1782-1849)는 2년간의 개인 성경 연구 끝에 다니엘 8:14의 2천3백 주야에 대한 예언을 잘못 해석하여 재림의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림 시기를 1844년 3월 21일로 정했으나 후에 1844년 10월 22일로 확정하게 되었다. 이런 해괴망칙한 날짜가 나온 근거는 다니엘 8:14의 2천3백 주야를 1일 1년 설을 취하여 2천3백년으로 해석하고, 그 기점을 457년으로 하고(에 7장), 유대력의 속죄일을 현대력으로 바꾸면 10월 22일이라 함으로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 재림이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밀러를 추종했던 자는 약 12만 명이나 되었다. 이 운동은 최근에 한국에서 문제가 되었던 92년 10월 28일 재림을 주장했던 시한부 재림운동(다미선교회 이장림 등)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정한 1844년 10월 22일에 아무 일도 없게 되자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다. 다른 이단운동이 그러하듯이 이 재림운동에 가담했던 자들은 주로 기성교회에서 나온 자들이었는데, 재림운동의 실패 후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하고 기성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여러 집단으로 분리되어 새로운 교파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중의 대표적인 한 분파가 여호와의증인이요, 또한 다른 분파가 소위 안식교회(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멸절설에 대한 교리에 있어 여호와의증인이나 안식교가 같은 것이다.
먼저 밀러와 안식교의 관계를 말하기 전에,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비판해 본다면 한 마디로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비성경적이며, 이단적이며, 사단의 역사에 일으켰던 종말론 운동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먼저는, 첫째 재림의 날자를 정했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인 것이다. 성경에 분명히 그 날과 그 시는 하나님의 권한에 있음으로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했는데(행 1:7), 자신이 재림의 날짜를 알아냈다고 선포했으니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 날짜를 모르므로 그 날을 기다리라는 것인데, 그 날자를 정해 놓고 기다리라는 것은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종말신앙이 필요치 않은 것이 됨으로 성경의 종말사상과는 정 반대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실제적으로 밀러가 예언한 그 날에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거짓 예언, 거짓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선지자는 그 예언한 바가 성취되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밀러의 재림 운동은 거짓 선지자의 사단 운동이다. 화잇이 비록 밀러의 사상을 그대로 다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밀러의 잘못된 시한부종말론 운동에서 발생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안식교는 정통교회일 수가 없는 것이다.
과연 시한부 재림설이 하나님의 기별인가?
안식교는 분명히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에 의하여 시작된 교파이다. 그러나 안식교인들은 주장하기를 밀러의 재림운동 후에 안식교가 조직되었으니 밀러의 재림운동을 안식교가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살펴보자. 안식교에서는 자신들이 전파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교리를 '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식교의 업체에서 만들어 내는 상품에다 세 천사의 마크를 붙여 사용할 정도이다.
그런데 안식교의 세 천사의 기별 중에 첫째 천사의 기별이 바로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잇은 밀러의 1844년 10월 22일 시한부 재림설이, 하나님의 기별이었다고 주장하고 가르쳤다. 따라서 화잇을 거짓 선지자로 여길 수 없는 안식교로서는, 윌리암 밀러의 재림운동이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화잇의 글을 직접 살펴보자.
"윌리암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에게 미국에서 이 기별을 하라는 사명을 주셨는 바, 이 나라는 대재림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에서 첫째 천사의 기별에 나타난 예언은 가장 명백하게 성취되었다"(첫째 천사의 기별이란 밀러의 재림운동을 말한다: 필자주). "그 기별이 모든 교회로부터 일반적으로 거절을 당할 때에는 천사들은 슬픔으로 물러갔다"(화잇, 시조사, 대쟁투합본, 415-518쪽).
무슨 뜻인가? 화잇은 이 밀러의 사단적인 시한부 재림설을 하나님의 주신 기별로, 그것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기별을 당시의 교회들이 받아 들였어야 했다고 하면서, 그 기별을 거절할 때 천사들이 슬픔으로 물러갔다고 마귀의 아비 같은 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밀러의 재림운동이 실패한 지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식교는 윌리암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이 하나님의 기별이며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화잇의 글 외에도 안식교의 여러 문헌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특히 한국연합회 목회부 발행 <성서기초교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 때에 천사는 '남은 때가 없으리라'고 외쳤다. 이 얼마나 엄숙한 선언인가! 이 때는 무슨 때를 말하는가? 오직 이 예언적 시기는 1844년을 넘어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 힘있는 천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도다'하는 기별로 땅을 일깨운 것은 이 때, 곧 1844년이었다. 이 기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신 분에게서 온 기별이었다"(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299쪽).
화잇과 안식교의 주장이 옳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먼저는, 어떤 종말론도 문제가 될 것이 없게 된다. 92년 10월 28일 시한부종말론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장림 씨의 종말론도, 재림에 대한 경각심을 준 것은 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거짓 운동을 일으키고 그것을 믿도록 하실 수 없는 것이다. 이장림의 시한부 재림운동이 마귀의 운동이었던 것처럼, 윌리암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도 마귀의 재림 운동임에 분명하다. 오히려 이들에 의해 참된 종말신학과 종말신앙이 파괴되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시한부 종말론의 잘못이 시한부 종말을 주장한 밀러에게 있지 않고 그것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말이 된다. "그 기별이 모든 교회로부터 일반적으로 거절을 당할 때에는 천사들은 슬픔으로 물러갔다"(엘렌 지 화잇, 시조사, 대쟁투합본, 415-518쪽)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말의 뜻은 밀러의 재림 예언이 잘못된 것을 시인하지 않고 그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런 우스운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잘못된 예언을 믿고 농락당한 12만명은 잘못이 없고 그 사기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어서 천사들이 슬픔으로 물러갔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거짓말을 전하게 하시면서 또 그것을 믿기를 원하시는 모순된 하나님 내지는 거짓된 하나님이란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안식교의 이 엉터리 신학을 받아들인다면 어쩌면 종말이 여러 번 변경될 수 있을 것이요, 아니 영원히 종말이 오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종말을 받아들이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안식교에서는 그러면서도 화잇의 재림운동이 안식교가 조직되기 전에 있었으니, 밀러의 재림운동은 안식교가 했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이기에 이렇게 주장을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아마 천사의 첫째 기별을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안식교인들이 밀러의 재림운동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천사를 슬프게 하던 그 사람들보다 몇 천배나 더 천사를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밀러의 시한부 종말론 운동이 계시록 10장의 예언성취인가?
안식교는 밀러의 실패한 시한부 종말론 운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10장 8-11의 예언의 성취라고 주장한다. 즉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입에는 꿀 같이 다나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10)는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밀러의 시한부 종말론 운동을 전할 때는 기쁨으로 했으나, 재림운동의 실패가 입에서는 달고 배에서는 쓰다는 예언을 성취시켰다는 것이다(성서기초교리, 301-303쪽). 그래서 결국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 운동의 책임은 하나님께 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속이고 농락하신 사건이 안식교의 첫째 천사의 기별이었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안식교의 이러한 주장을 화잇의 글로 직접 확인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로 당신의 백성이 실망을 당하도록 경영하셨다. 이로 말미암아 주의 오심을 기리노라고 고백하는 이들의 마음이 드러나고 참 성격이 계발되도록 하셨음을 우리는 굳게 믿는다"(교회증언 1권 53쪽, 성서기초교리 303쪽).
도대체 시한부종말론을 말한 밀러에게는 잘못이 없으며 하나님에게 잘못이 있다는 말인지, 하나님께서 밀러를 속여서 계시를 주시고 또 날짜를 연기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어느 쪽도 하나님의 거룩성과 전능성을 믿는 성도로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밀러의 날짜 계산에 의해 조사심판교리를 만들어 낸 안식교로서 밀러를 다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화잇의 괴변이요 궁여지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월리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과 안식교의 관계
안식교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기초가 되어 발생한 종파이다. 그러기에 바로 안식교의 이름을 지금도 재림교회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재림교회란 이름을 넣었다고 재림신앙을 가졌고, 넣지 않았다고 재림신앙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교회 이름에다 예수님의 탄생이나, 십자가나, 받고 받을 구원을 넣지 않았다고 그것들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안식교가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이 비판을 받으면 밀러는 안식교 이전의 사람이요 안식교인이 아니었다고 발뺌을 하려고 하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가?
안식교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에서 나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시한부종말론에서 유래된 집단이란 사실을 부인한다. 그렇다고 안식교가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밀러의 시한부 재림 운동을 비판하고 나온 것이 아니다.
안식교는 지금도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안식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하나님의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장림의 시한부종말 운동에 대해서는 비판하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러나 안식교와 같이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에서 나온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잘못된 것으로 주장하는데 재미있는 일이다.
필자가 월리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안식교 교리인 소위 '첫째 천사의 기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식교가 밀러의 시한부 종말 운동이 사단의 운동이었으며 비성경적인 것이었다고 시인한다면, 필자는 이런 비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안식교가 어떻게 첫째 천사의 기별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안식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화잇이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것은 현재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1) 월리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안식교의 가장 중요한 첫째 천사의 기별이다(안식교 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299쪽).
2) 월리암 밀러가 시한부종말론을 연구할 때 천사가 깨닫게 해주었다(엘렌 지 화잇, 시조사, 대쟁투합본, 360쪽).
3) 월리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이 계시록 14:6의 영원한 복음이다(위의 책, 397, 411쪽).
4) 하나님은 월리암 밀러에게 시한부종말론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다(상동).
5) 재림의 일, 시를 정하는 일에 반대한 당시의 목사들이 잘못된 사람들이었다. 벧후 3:3-4의 예언의 성취이다(위의 책, 413-414쪽).
6) 밀러가 시한부종말론을 전할 때 사람들이 밀러를 죽이려고 했으나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밀러를 붙들어 피하게 하였다(위의 책, 377쪽).
7)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은 성령의 운동이었다(위의 책, 411-416쪽).
8)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속임수였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실망당하도록 경영하셨다(한국연합회, 성서기초교리, 303쪽).
안식교측에 답변을 요청하는 질문들
1) 재림의 일, 시를 정하는 시한부 재림설이 성경적인가?
2) 재림의 일, 시를 정하여 예언했으나 실패한 월리암 밀러의 시한부종말론 운동이 성령의 운동인가? 아니면 사단의 운동인가?
3)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인데, 하나님께서 거짓운동을 일으키셨다는 것이 어떻게 성경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4) 재림의 일, 시를 정하는 것이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성령께서 비성경적인 운동을 일으키셨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5) 하나님의 천사가 거짓 것을 깨닫게 해 주실 리가 없는 일인데, 밀러에게 천사가 시한부종말론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한다면 그 천사는 사단의 사자가 아닌가?
6)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이 비성경적이라면,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을 성령의 운동이라고 주장한 화잇은 거짓 선지자요, 그 운동을 첫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가르치는 안식교는 사단의 기별을 전하는 종파가 아닌가?
7) 안식교에서는 계시록 10:9-10의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쓰다'라는 예언이 월리암 밀러의 시한부 재림운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재림운동의 실패를 예언한 것이라고 억지로 맞추는데, '배에는 쓰다'는 말이 복음을 전할 때 받는 반대와 핍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짓 예언을 하여 실패한 것을 말하는가?
김대성 목사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린다.*
18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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