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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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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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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교회와신앙>측 지난 호 글에 대한 소견

  <교회와신앙>은 여전히 내용의 핵심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표현의 기법이나 임기응변식의 답변과 비판으로 독자들을 오도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선 지난 호의 제목을 "안식교의 내세관은 여호와의 증인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으로 정한 것을 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안식일교회가 여호와의 증인과 유사한 집단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 모든 교파마다 공유하는 교리가 있고 상반되는 교리가 있는 것인데, 그러한 것들을 가지고 "장로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는 안식일교회의 것과 같다"는 식으로 표현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김대성 목사는 고증을 선명하고 친절하게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소제목으로 부각시켜 놓았는데, 필자는 그 동안의 모든 인용문에 대하여 충실하게 출처를 밝혀 놓았다. 출처를 밝히지 않는 두 부분 중, 한 가지는 필자가 서적들을 통해서 역사적 사건들을 연구하면서 개인적 판단으로 쓴 글인데, 출처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 명령인데, 어느 정도 상식에 속하는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았으나,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여기에 그 출처를 밝혀 둔다(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 380).
  그 정도로 상대방의 정확성을 요구하려면, <교회와신앙> 1997년 2월호 126쪽에 "안식교는 처음부터 부정한 음식을 금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안식일교인들도 부정한 음식들을 먹었고 화잇도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말도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한 출처와 증거를 제시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1859년에 안식교 내에 돼지고기를 금해야 한다는 A씨 부부가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이름은 1860년에 명명(命名)되었고 1863년에 조직되었으므로 1859년에는 안식일교회라는 이름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였다. 
글에 좀더 신중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분별력이 없는 독자들을 오도하기 위하여 말을 임의로 만들어 사용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안식일교회측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일요일예배나 크리스마스, 부활절 축제 등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이교의 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와신앙>은 그것을 이렇게 왜곡 표현하고 있다(2월호 128쪽). "왜 안식교는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직접 들은 교부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서 주일을 정했다는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장을 하는 것일까?" "교부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하여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정했다는 주장은 무지한 소치에서 나온 말이다". 안식일교회는 일요일예배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일요일예배나 크리스마스 축제의 목적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그 방법이 잘못되어 문제가 생긴 것이지 그가 다른 신을 섬긴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노예에 대한 화잇의 견해에 대하여
1월호 논쟁에서 <교회와신앙>측이 엘렌 화잇이 저술한 책 초기문집 283쪽의 내용이라고 하며 노예 제도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확인한 결과 원문이나 번역본 283쪽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기에, 2월호에서 정확한 출처를 다시 요청한 바 있다. 필자가 다시 그 책(1993년판)을 앞뒤로 살펴본 결과 그러한 언급이 279, 280쪽에 있어서 여기에 그 답변을 제시한다. 그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다. ① 주인들의 무자비한 학대 속에서 자신의 의지나 양심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노예들은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행 4:12)를 영접하지 못했으므로 구원을 받지는 못할 것이지만, 그 노예의 상태는 자신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하여 불로 멸망당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다. ② 노예를 짐승처럼 다루며 학대한 주인들은 멸망을 당할 것이다. 주인들이 일곱 재앙을 만날 것이라는 언급은,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한 대로, 일곱 재앙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현재에서 볼 때에는 언제나 미래적인 사건이지만 그것을 항상 현재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인 표현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들이 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
히브리서 4장 9절 '사바티스모스'의 해석에 대하여
히브리서 4장 9절을 보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뜻으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안식할 때'라고 하는 말은 이미 지난 호에서 설명한 대로 헬라어 '사바티스모스'라는 말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합성어이다. 박창환 편 헬라어 사전에 나온 이 단어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안식일의 휴식 Sabbath rest, 안식일 준수 Sabbath observance 히 4:9. 이렇게 명백한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신학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단어를 억지로 '안식'(혹은 휴식)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은 양심적인 성경 학도의 자세가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분명한 의미를 신학적으로 해석한다고 하여 천주교 신학, 장로교 신학, 감리교 신학 등이 각각 해석을 달리하기 시작하면 성경은 하루 아침에 변질되고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분명한 답변을 요청한다
  본인은 1월호에서 분명한 답변을 기대하는 세 가지 질문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답변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첫째, 안식일이 폐지된 것인지, 아니면 안식일 자체는 변동이 없고 요일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것인지를 질문하였다. 그러나 <교회와신앙>측은 "율법이 완성되었다는 말과 폐해졌다는 말은 다 맞는 말이다. … 그런 점에서 안식일이 폐해졌다는 말도 맞고, 완성되었고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말도 맞다. … 오늘의 주일은 분명히 안식일 개념에서 온 부분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 중심의 종교가 주일 중심의 종교로 바뀌었다고 보아야 더 맞다고 본다"(2월호 127쪽)고 말하면서 분명한 답변을 내리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고 있다. 심지어는 "1주일 중에 하루가 주의 날이 아니라 7일이 주의 날인 것이다"(상동)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일요일이 주의 날(주일)이라고 하던 종래의 주장에 대해서도 스스로 흠집을 내고 있다.
  둘째, 일요일예배의 기원을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밝혀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아무런 성경적 근거없이 "교부들에 의해서 복음이 우리에게 전수되었고 또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상동)는 말로 대치하고 있다. 일요일예배에 대한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여 주기 바란다.
  셋째, 장로교에는 다니엘 8장과 9장의 2300주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답이 없다. 다른 교파의 어떤 교리를 비판하려면 그 비판한 부분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정통적 입장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마땅한 것이다. 변두리에서 맴도는 표현들을 자제하고 핵심적인 문제로 들어가 2300주야에 대한 장로교회측의 분명한 해석을 제시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한다.
 
그리스도인과 음식물
  육식의 해독과 채식의 이로움이 백일하에 드러나 있는 이 문명 시대에, 육식과 채식 문제를 가지고 율법주의 운운하며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한심스럽고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굳이 문제로 삼겠다고 하니 적절한 변증을 제시하고자 한다.

노아 홍수 이전까지의 식물(食物)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먹어야 할 식물을 정해 주셨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아무것이나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식물의 범위 안에서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체에 필요한 식물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히 알고 계시므로, 사람은 그 분이 정해 주신 것만 잘 섭취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원래의 식물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 1:29; 2:16). 사람의 원래 식물(食物)은 식물(植物)이었다. 채소류, 견과류, 곡류, 과일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음식들이었다.

노아 홍수 이후의 식물
  노아 홍수로 온 세상의 식물들이 죽거나 파묻혀서 먹을 식물이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육식을 하도록 허락하셨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창 9:3,4). 그러면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은 어떤 고기를 먹었을까?
  방주가 완성되고 홍수의 시간이 다가올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새들과 짐승들이 줄을 지어 방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종족 번식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창 7:2,3).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식물(植物)이 없는 상황에서 처음에 고기를 먹을 때 정결한 짐승 중에서 먹었을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종족 번식을 위하여 그것들은 남겨 두어야 했던 것이다. 얼마 후에 식믈이 자라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식물과 정결한 짐승의 고기를 함께 먹으며 살았을 것이다. 노아 홍수 이후에 육식의 결과로 사람의 수명이 급격히 짧아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에 대한 레위기 11장의 구분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중다한 무리로 번성한 후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을 탈출하여 나왔다. 그들이 광야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하여 진군하는 동안 그들을 한 나라로 이 땅에서 번성하며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여러 가지 법규들과 제도들을 마련해 주셨다. 구약성경 레위기 1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음식물에 있어서까지도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물고기 중에서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주셨다. 육축 가운데서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은 소나 양처럼 발굽이 두 쪽으로 갈라져 있으면서 되새김질을 하는 것들이며 이들은 모두 초식 동물이었다(11:4-7). 물고기 중에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들이 정결한 고기로 구분되었는데, 생태가 정결한 것들이었다(11:9). 새에 대한 구분도 있고(11:13-19) 곤충에 대한 구분도 있다(11:20-23). 족제비나 쥐, 도마뱀, 악어 등 기어다니는 것은 모두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11:42). 이러한 구분 끝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1:44).
  하나님께서 왜 어떤 것들은 먹으라고 하시고 또 어떤 것들은 먹지 말도록 금하셨는가? 그 백성들의 상태를 건강하고 거룩하게 유지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러한 구분을 해 주셨다면, 레위기 11장의 구분은 지금도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규칙인 것이다.
 
신약의 식물(食物)은 구약의 식물(食物)과 다른가?
  구약 시대에 살던 사람과 신약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가? 구약 시대의 사람들에게 건강이 필요했다면 신약의 사람들도 건강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해야 했다면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들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인간의 체질은 동일한 것이며 구약 시대 사람들에게 해로운 음식은 신약 시대 사람들에게도 해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음식법이 신약 시대에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하는 견해는 상식 밖의 주장이거나, 성경의 원칙과는 맞지 않는 자신의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구약의 모든 율법이 폐지되고 음식도 아무것이나 먹도록 허용된 것인가? 우선 다음의 성경절을 깊이 음미해 보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1∼15).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배경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이 때 사도 베드로는 욥바에 있었다. 시간이 제 6시(정오)이기 때문에 배도 고팠고 사람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시에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다가 환상을 보게 되었다. 환상 중에 한 보자기에 각양 짐승과 새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먹으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때 베드로는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자기 생활 습관과 관계되는 실제적인 대답을 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십자가 이후의 시대지만 베드로는 부정한 음식들을 먹지 아니하는 식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먹으라고 한 것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직후 베드로는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가 보낸 종들이 이미 집 앞에 와 있음을 보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가서 이방인 백부장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성경절을 가지고 모든 부정한 음식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셨다고 하여 아무것이나 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 것인지 매우 염려스럽다.
 
오해되고 있는 성경절에 대한 바른 해석
  오늘날 성경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오히려 질병의 예방과 건강을 위하여 식생활 개선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성경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몇 개의 성경절들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식습관을 자위하며, 오히려 건강한 식생활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경시하거나 율법주의라고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문맥상으로 오해되기 쉬운 몇 성경절들에 대한 바른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막 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주변에 모였다가 그 분의 제자들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고 저들의 유전에 비추어 제자들을 비난하였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온갖 죄악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 중 한 대목이 바로 이 말씀이다. 먼지나 때가 조금 묻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속 마음 때문에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니 마음을 정결케 하라는 교훈의 말씀인데, 이것을 가지고 건강상 좋지 않은 음식을 먹어도 되는 이유로 삼는 것은 성경을 너무 편협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도 이렇게 알아 듣지를 못하느냐?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냐? 모두 뱃 속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뒤로 나가 버리지 않느냐? 그것들은 마음 속으로 파고 들지는 못한다' 하시며 모든 음식은 다 깨끗하다고 하셨다"(막 7:18, 19).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다"(막 7:19)는 말은 우리가 먹는 식물 자체는 더럽지 않다는 말이지, 그 동안 부정하게 취급되던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고 다시 선언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이 당시 로마에는 여러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이교로부터 개종한 그리스도인들,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 기독교인이면서 절기를 계속 고수하는 사람들 등 갖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저들 나름대로의 분파들이 있어서 서로 비난하며 분쟁하는 일이 많았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용납하고 이해하며,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한 고기까지를 포함해서 아무것이나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채식과 육식을 가리지 않고 함께하는 식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14장 21절의 말씀을 빌리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된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14장 1절의 '모든 것'이란 고기와 포도주 등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가능하면 그러한 것들을 먹지 않음으로 형제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롬 14:5, 6 "혹은 이날을 저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이 때 로마에는 유대인의 절기와 관련하여 세 개의 파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중요시하는 유월절파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요시하는 요제절파, 그리고 아무 파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월절파는 1월 14일을 중요시했고 요제절파는 1월 16일을 중요시했다. 물론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 날이나 같게 여겼다.
  이레니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논쟁은 단지 날짜뿐만 아니라 단식에 관한 실행 성격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하루를 단식해야 한다고 했으며, 다른 이들은 이틀을,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은 그 이상 더 단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참조: 윤대화, 주일론, 중권, 계림문화사, 1988, pp.159-173 ). 위의 성경절은,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로마의 교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다.
  롬 14:14, 20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로마서 14장에 기록된 '음식물과 믿음' 문제는 로마서보다 약 1년 뒤에 기록된 고린도전서 8장에 다시 언급되어 나온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것이다. 서기 1세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우상의 제물' 문제는 대단히 심각했다. 각종 이방신들에게 드려졌던 고기와 포도주들이 시장으로 흘러 들어왔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기를 사 먹으면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일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시장의 고기를 일체 사 먹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고전 8:4)라고 생각하면서 그러한 고기들을 먹었다.
고기 자체가 속된 것은 아니며, 우상이 아무것도 아닐진대 우상의 제물로 드려졌다고 해서 고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먹어도 지장이 없다는 믿음으로 먹은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이러한 생각과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고전 8:7), 어떤 사람들은 양심에 꺼려서 그러한 고기를 먹지 못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고기들을 속되게 여기는 자에게는 속된 것이므로 양심이 허락지 않으면 먹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양편을 모두 다 정죄하지 않고 서로 이해하며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은 분명히 밝혀두었다.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 결국 사도 바울은 양편 모두를 이해하면서, 로마서 14장에서는 고기 같은 것을 먹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고기 먹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서로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딤전 4:1-5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성령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모두 떠나간 후에 나타날 이단들에 대하여 미리 말씀해 주셨다. 실제로, 사도들이 모두 사라진 2세기 초부터 영지주의를 비롯하여 마르시온파, 몬타니즘 등의 각종 이단들이 맹렬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들 이단들은 한결같이 육체와 물질 세계를 경멸하며 금욕주의를 권장하였다. 특히 마르시온파는 혼인을 통한 성교(性交)와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있었으며, 몬타니즘은 "독신, 금식, 일체의 육식으로부터의 절제 등을 내용으로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 생활을 강조"하였다(워커, 세계 기독 교회사, 대한 기독교 서회, 1978, p. 49-54).
  따라서, 지금 이 시대에 위의 성경절을 인용하여, 적절한 음식물을 통한 건강 기별을 전하는 사람이나 교회를 '미혹케하는 영'으로 간주해 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당시 이단들의 특징은 식물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혼인을 금하는 문제와 항상 연계되어 있는 것도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 문제이다. 만약 음식 문제만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면 혼인 문제도 별개로 해석하여 오늘날 천주교나 불교의 성직 제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절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함께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성경절이다. 사도 바울은 위의 성경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식물을 비롯한 모든 물질 세계를 죄악시하는 이단들의 미혹과 금욕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과 의미에서 식물을 폐하며 극단적인 금욕을 가르치는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고, "식물은 하나님의 지으신 바니" 감사함으로 먹을 것을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히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떤 새로운 가르침을 들으면 쉽게 동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에도,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확고부동한 진리를 깨닫고 있었던 사람들 중에, 음식물과 관련된 그릇된 교리에 빠져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음식을 교리화하거나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삼을 때는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음식은 하나님의 성전된 몸을 건강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차원에서 순리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주제이며, 그것을 어떤 의무감이나 교리적인 문제로 다루면 유익이 없는 것이다. 건강한 식생활 문제는 본인이 부담을 가지고 억지로 실천해도 별로 유익이 없고, 아직 연약한 믿음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워주는 방법으로 권면해도 유익이 없는 것이다. 음식 문제는 본인의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의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가르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성경의 부정한 음식과 육식의 문제
  음식에 관한 문제는 교리적인 차원이나 이단의 시비를 가리는 어떤 항목으로 취급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식은 어디까지나 위생이나 건강에 관련된 문제이며 개인의 양심과 의지, 그리고 전인적인 건강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이성과 상식으로 판단하고 수용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부정한 고기 먹는 것을 금하시는가? 좀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왜 최초의 식물로 채소와 과일을 주셨을까? 최신 과학은 그 이유를 너무도 상세하고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현대 의학과 과학이 밝혀 놓은 사실에 의하면 짐승의 피는 일반적으로 노폐물에 의하여 오염되어 있으며, 그 속에는 뇨, 요산, 담즙, 크레아틴, 크리닌, 아미노산, 탄수화물, 락틴산, 콜레스테롤 등의 해로운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Abraham White, Philip Handler & Emil L. Smith, 생화학의 원리, p. 802). 또한 동물성 지방은 퇴행성 심장병을 높이고 동맥경화, 뇌졸증, 당뇨병, 암 발생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져 있다(I. Fisher, The Influence of Flesh-Eating on Endurance, Yale Med. 1906-1907). 레위기 11장에 금기된 동물들, 새들, 땅에 기는 것들은 특별히 콜레스테롤치가 높아서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암, 신장염, 통풍, 심장병, 골연화 및 골다공증,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병 등 기타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Jay M. Hpffman, The missing Link, 1981. 등 다수의 서적에 기록됨).
  전 연세대학교 교수이며 감리교회의 명예 장로인 이길상 박사는 그의 저서 "성서에서 본 식생활 건강법"(기독교문사, 1994) 23쪽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고기 같은 동물성 단백질과 기름을 많이 섭취하면 체내에서의 이들 식물의 분해 과정에서 아주 무서운 황산, 인산, 요산, 젖산 등과 같은 유독한 산이 형성되어 피를 산성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혈액의 산독화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육식의 해독과 채식의 이로움이 여러 분야에서 입증되고 밝혀지는 이 문명 시대에, 해로운 음식 삼가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라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율법주의 운운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전인(全人) 회복의 복음 원리와 육체적 건강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인간회복'이다. 죄로 인해 병들고 연약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인간을 죄짓기 전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죄인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참된 신앙은 인간의 전인적 회복을 추구해야 마땅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 상태나 성격이 체질(體質)과 관계있다는 것과, 체질은 섭취하는 음식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과학적 사실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983년도 11월호 89쪽에 '음식도 뇌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요즘 들어, 뇌가 영양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들의 기분, 긴장도, 기억력, 그리고 심지어 아픔을 느끼는 감각까지도, 우리들이 먹는 음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과학자들은 밝혀냈다."
  1931년 J. B. 오르 씨와 릴케 씨는 "동물성 단백질인 육식과 성격의 포학성에 관한 두 민족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발표에 의하면, 육식과 돼지 피와 우유와 푸딩을 먹는 마사이족(族)이, 채식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키쿠유족(族)을 약탈하고 죽이는 참상이 자꾸 일어나고 있었다. 계속 피해를 입던 키쿠유족은 식생활을 바꾸어 고기와 피를 먹기 시작했고,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키쿠유족은 매우 호전적인 사람들이 되어서, 마사이족뿐만 아니라 아무 사람이나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는 검은 살인 집단 '마우마우'를 형성하여 온 세상을 떨게 했다는 것이다(이길상, 성서에서 본 식생활과 건강법, 1994년판 25쪽).
  이와 같이 성경이 금하는 동물, 해물, 그리고 지방질과 피를 먹을 때, 각종 질병의 문제와 성격상의 문제들이 야기된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생각해 볼 때, 성경에 나타난 복음의 핵심인 '인간회복'과 '전인(全人)건강'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과 함께 건강의 기별을 전하고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구약의 율법에 얽매여 있는 율법주의로 오해받고 있는 것은 무모한 편견과 왜곡된 신앙적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전 중의 하나인 브리태니카 사전(Medical & Health Annual Encyclopeadia in Britannica, 1978, p. 82)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라는 소제목하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건강한 생활습관의 유익한 효과에 대해 관찰하고자 멀리 산 속에까지 여행할 필요가 없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인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그 연구에 의하면, 그들은 캘리포니아의 인구 전체의 동일한 연령 및 성별 계층에 비하여 각종 질병으로부터의 사망 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재림교인들은 흡연과 음주와 육식을 삼가한다. 그들은 흡연이나 음주와 직접 관계되는 질병으로부터 오는 사망율이 현저하게 낮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들에 걸리는 비율도 낮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983년 4월호에도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식생활'이라는 제목과 함께 동일한 기사가 게재된 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제칠일안식일교도들은 다른 미국 사람들보다 결장암이나 직장암에 걸리는 비율이 훨씬 낮다." 이와 같은 특수한 결과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해 온 결과인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3:16, 17; 6:19, 20).*


17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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