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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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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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교회 大논쟁8(97년 3월호)
--안식일교회의 음식문제--
안식교의 음식물 교리는 화잇의 거짓 계시의 산물이다
지난 호에 대한 반증
화잇의 거짓 예언 문제에 대하여
안식교 측에서는 화잇의 거짓 예언 문제에 대하여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는 것 같다. 화잇을 선지자로 보기 때문에 그가 무너지면 안식교 자체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안식교측 김대성 목사는 지금까지 여러 번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원문의 뜻이 그렇지 않다", "원문에는 그 단어가 없다"는 변명을 했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원문이 없어서 역본을 의지하고 있다(후에 영문 원본을 구하게 되면 김목사가 문제 삼은 부분을 다시 변증하겠다).
그래서 본지에서는 전화 상으로 김목사에게 그들이 말하는 <교회증언> 영어 원문을 요구하였다. 필자에게는 영문 책이 없고 김목사가 인용한 부분이 너무 짧아서 그 의미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김목사는 자신들도 영문 책자를 미국에서 신청하여 보고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구해주겠노라고 답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해당 책에 대한 소식이 없어 이렇게 다시 정식으로 <교회증언> 영문판을 주문하는 바이다. 미국 주문이 어렵다면 가지고 있는 책이라도 빌려 주기 바란다.
그런데 김목사가 이번에는 노예 문제에 대하여 필자가 제시한 문장이 원문에도 번역본에도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그 증거까지 요구했다. 김 목사의 말을 들으면 마치 독자들은 필자가 없는 것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사기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원문에도 역본에도 없다는 김목사의 글을 보고 할 말을 잊는다. 필자가 초기문집에서 인용하여 "노예의 주인들이 일곱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화잇의 거짓 예언을 소개하였더니 이는 원문에도 번역본에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변증한다.
첫째, 우선 위의 내용이 원본이나 역본에 분명히 있다면 화잇은 거짓 선지자라는 주장을 인정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 말이 사실로 확인되어도 문제가 없다면 그런 소리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혹 김목사에게 위의 책 역본이 없다는 말 같이 들리는데, 필자에게 영문이 없음보다 김목사에게 위의 역본이 없다는 말은 천 배나 만 배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위의 내용이 <초기문집> 283쪽에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원문에도 변역본에도 없다고 하니 독자들은 이 말이 이해가 되는가? 물론 필자는 그 내용이 영어 원본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확인해도 안식교의 시조사에서 발행한 책에 한자도 틀림 없이 그대로 있다. 필요하면 공증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분명한 것은 김목사에게 영문본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영문본에는 위의 내용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기꾼이 원본에 없는 말을 역본에다 번역해 놓은 모양이다. 그것도 안식교의 시조사에서, 그리고 어떤 안식교인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이 문제는 김목사 편에서 밝혀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이흥선 씨 문제에 대하여
필자는 본지 97년 1월 호에서 이흥선 씨의 이단판별 기준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하였다. 이유인즉 그는 안식교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김기동 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한 자인데, 그가 안식교를 이단이 아니라고 하니 그 기준이 의심스럽다는 취지였다. 그랬더니 김대성 목사는 "어떤 사람의 말 중에 한 가지가 틀렸다고 해서 나머지 모든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다음과 같이 중요한 대목이 있다.
먼저, 안식교 김목사의 말에는 자가당착적인 요소가 있다. 그는 통합측에서 조용기 목사에게 사이비성이 있다고 하였다가 해제한 것을 가지고 이단 비판의 기준을 문제 삼았다. 그렇다면 안식교에서 이단시하는 김기동 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한 이흥선 씨의 이단 비판 기준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기성교회측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교측이 아닌가?
둘째, 김목사는 이흥선 씨가 김기동 씨를 이단이 아니라고 본 것을 나무의 잘못된 한 가지 정도로 비유했지만, 김기동 씨에 대한 이흥선 씨의 이단 비판 기준이 틀렸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인한 셈이 됐다는 점이다.
필자가 이흥선 씨에게 문제를 삼은 것은 지협적인 것이 아니다. 누구를 이단이니 아니니 하는 문제는 결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학과 신앙의 핵심 중에 핵심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 비유로 말하니, 안식교가 얼마나 급한 입장인가를 느끼게 한다. 형식적으로는 차라리 이흥선 씨의 말처럼 안식교에서도 김기동 씨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는 편이 쉽지 않겠는가? 그러나 안식교에서는 '영혼멸절'을 주장하는데, 김기동 씨는 '죽은 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 되어 공중에 떠다니며 우리 몸에 붙어 질병을 일으킨다'고 하니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안식교에서는 이흥선 씨를 불러 안식교가 이단이 아님을 견고히 하는 집회를 한 것으로 듣고 있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이씨가 안식교를 정통교회라고 주장했던 기독저널 신문을 전국 여기저기에 뿌린 것 또한 알고 있다.
이흥선 씨는 한국교회의 이단연구가 신중하지 못하다고 격렬히 비난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단연구의 신중론을 그렇게도 외치던 이흥선 씨 자신은 애초에는 정작 아무런 연구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문에서 안식교가 이단이라고 여러 차례 맹비난을 했었다. 그러던 그가 몇 개월 후에 안식교에 대해 재검증을 한다고 10회에 걸쳐 파격적인 지면을 마련하더니 끝내 안식교는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실상 이흥선 씨의 소위 안식교 재검증 연구라는 것이 대부분 '기성교회의 비판에 대해 항목별로 변증해 놓은 안식교 신계훈 씨의 책'을 필요에 따라 축약•선별•짜집기하여 발표한 것이었다는 점이다(교회와신앙 96년 6월호 122∼123쪽 참조).
이러한 점을 이흥선 씨에게 자료를 제공한 안식교측의 핵심인사는 물론이요, 신계훈 씨의 책과 이흥선 씨의 신문을 읽어 본 안식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독자들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으로 믿는다.
한국교회의 이단연구가 부정직하고, 신중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고 비난하면서도 자신은 애초에 아무런 연구도 없이 안식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비판한 사람이었는데, 그나마 몇 개월만에 다시 안식교가 정통교회라고 자신의 기존 결론을 180도로 뒤바꿀 때에도 스스로의 연구가 아닌 안식교측의 변증서 내용을 마치 자신의 연구결과인양 그대로 활용했다는 점을, 주관적으로 객관적으로 정직한 행사라고 보는지 묻고 싶다. 이를 두고 안식교측은 '양심적인 연구'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으니, 필자는 안식교측에서 말하는 그 '양심'과 이흥선 씨의 '양심'은 같은 수준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안식교는 '그런 수준'에서 이단이 아닐 것으로 믿는다.
영혼멸절 문제에 대하여
안식교측에서는 영혼멸절 교리가 이교 철학 사상에서 왔다고 비판하였다. 심지어 나사로 비유도 애굽의 민속설화에서 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불신앙적이요, 무지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런 소리는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며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무식한 이방인이나 하는 소리다.
성경으로 기록한 시기와 하나님이 계시를 주신 시기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분명히 모세가 성경을 기록하기 전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계시를 주셨다. 그러나 후에 그것도 아주 훗날 모세를 통하여 그 계시를 기록하지 않았는가? 또한 성경의 많은 부분이 하무라비 법전과 유사하고 심지어 불교의 경전과도 유사한 교리가 많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예수님이 석가모니의 제자라고 얼마나 떠들었는가? 김목사의 말대로라면 기독교는 하무라비 법전 내지는 불교의 소산일 것이다.
그러한가? 아니다. 비록 유사한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와전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성경계시로 특별히 선택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에는 다른 공관복음과 달리 헬라의 철학적인 요소가 많은데,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어떤 이교도적인 학자의 말처럼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철학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가? 분명히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철학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선택한 계시이다.
일요일은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는 날과 같으니 태양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서 왔다고 하고, 영혼불멸은 이교 철학 사상과 유사하다고 거기서 왔다고 한다면, 다시 묻거니와 토요일은 토성신을 섬기는 날인데, 안식교의 안식일은 토성신을 섬기는 신앙에서 왔는가? 그렇다면 또한 안식교의 채식교리가 불교의 채식의식과 유사한데, 안식교의 채식교리도 불교에서 왔는가?
아무래도 김목사는 성경적인 입장이 아닌 이교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김목사는 성경을 기준으로 논쟁을 하자고 해 놓고, 이교 철학 사상이나 학자들의 견해 등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영혼멸절 교리가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이교 철학 사상과 유사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눅 16:19-31)
안식교에서는 이 내용은 실화가 아니고 비유라고 주장하였다. 특히 이것은 이교도인 이집트의 민속 설화였다는 것이다. 안식교의 이런 입장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이교도의 설화를 비유로 말씀하셨으니 성경적인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교도의 설화를 삽입시켰으니 성경에서 제거하자는 말인가?
비유건 아니건 상관이 없다. 예수님은 절대로 비유든지 실화든지, 거짓된 비유로 참된 진리를 교훈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이 내용이 이교도인 이집트의 설화와 유사성이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계시가 와전되었는지, 아니면 유사한 내용을 하나님께서 취하셨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제일로 중요하다. 사후의 영혼이 없고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실 수 없는 것이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자.
①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22절): 사후의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사후의 영혼이 성경에 없는 이교도의 교리라면 예수님께서 이교도의 사상을 가졌다는 말인가? 이 말은 분명히 사후의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가는 성경의 교훈이다.
②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22절): 천국을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묘사하셨다. 이 말씀을 보면 먼저 안식교의 주장처럼 이 내용이 이집트의 민속설화가 아니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인들에게 아브라함의 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김목사는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했으니 아브라함 이전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느냐고 반문했다. 유치한 질문이다. 아브라함의 품이란 믿음으로 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 묘사한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아무래도 안식교는 성경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것 같다.
③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고서"(24절): 안식교 측은 본문에 손가락, 혀, 등(눈)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육체가 없는 영혼이 눈이 있고 손가락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도 유치할 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성경에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묘사하지 않았는가?(시 8:3, 8:6, 10:12, 14, 11:4, 15:4, 17:7, 32:4, 34:15 등등).
④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있어": 천국과 지옥은 왕래할 수 없다는 것을 묘사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천국과 지옥, 현세와 내세가 구분되어 있어서 서로 왕래할 수 없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안식교측에서 말하기를, 이 본문처럼 두 장소에서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면 아브라함의 품도 생지옥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안식교측의 말대로라면 천국에도 사단이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욥기에 보면 하나님과 사단이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욥 1:6∼12).
영혼(헬라어:푸뉴마, 푸쉬케, 히브리어:루아흐,네페쉬,네쇠마)
안식교측은 영혼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들이 영혼 불멸이나, 몸과 영혼의 분리의 개념으로 사용된 경우는 한 번도 없다고 하였다. 무지가 이렇게 용감하게 하였다고 본다. 이 단어들이 육체와의 분리의 의미로, 불멸의 영혼으로 사용된 것을 살펴보자.
특히 마태복음 10장 28절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의 구절에서도 분명히 몸과 영혼의 분리에 대한 말씀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안식교측에서는 이 구절에서의 영혼(푸쉬케)을 정신이나 마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교의 이러한 주장은 맞지 않다. 몸이 죽으면 마음도 정신도 죽는 것이지, 어떻게 몸만 죽고 마음이 남아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이 본문의 영혼(푸쉬케)을 안식교식으로 '정신'으로 번역해 보자. 이렇게 된다. "몸은 죽여도 정신(푸쉬케)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정신(푸쉬케)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안식교의 말로 하면 육체와 구별되는 정신이 따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 정신이 있나보다. 몸이 죽으면 정신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구절(39절)의 푸쉬케를 안식교식으로 '마음'으로 번역해 보자. "자기 마음(푸쉬케)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마음(푸쉬케)을 얻는 자는 잃으리라." 전혀 의미가 통하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영혼(프뉴마)이 육체와의 분리의 개념으로 사용된 구절들도 많다. 눅 23:46에 예수님의 "내 영혼(프뉴마)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는 경우와, 행 7:59에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주 예수여 내 영혼(프뉴마)을 받으소서"라는 말씀이 있으며, 눅 24:39에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영(프뉴마)은 살과 뼈가 없으되"라고 하셨다. 안식교측은 영혼은 살아 있는(살과 뼈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안식교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준다.
그리고 안식교는 불멸의 존재로서의 영혼이 쓰인 경우가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반대이다. 우선 성령님에 대하여 (프뉴마)가 쓰였다. 안식교의 말대로 프뉴마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면, 프뉴마가 성령으로 번역된 수백 구절이 있는데, 성령님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실 때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셨는데(눅 23:46), 이 때도 프뉴마를 사용하셨다. 안식교의 이론을 따르면 프뉴마가 멸절될 것이니, 예수님도 멸절되었다는 말로서 이는 마귀왕 바알세불의 주장일 것이다.
영원 지옥의 개념
안식교측에서는 성경에서 지옥(게헨나)이라는 용어가 예루살렘의 남쪽에 있는 시체와 쓰레기 버리는 곳인 힌놈 골짜기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지옥의 불은 꺼지지 않는 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격'이라는 말이 원래 '가면'이라는 말에서 왔으니, 인격이란 그 사람의 내적 본질과 상관이 없이 뒤집어 쓰는 가면과 같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단'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가치가 부여되지 않은 의미로서, 즉 '분파'라는 말에서 왔다. 그렇다면 안식교에서 이단이란 말에 그리 열을 올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비록 지옥이란 말이 게헨나란 말에서 왔지만, 이는 사후에 갈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영원한 지옥을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에 해당되는 의인들은 영(아이온)생에, 염소에 해당되는 악인들은 영(아이온)벌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마 25:46). 의인이 들어가는 영생이 영원한 것이라면 악인이 들어가는 지옥도 영원하다는 말이다. 특히 악인이 들어가는 영벌을 묘사하기를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고 하셨다. 여기 '영원한'이란 말은 '영원하지 않은' 영원인가?
안식교의 음식물 교리는 화잇의 거짓 계시의 산물이다
안식교의 음식 문제의 교리는 두 가지의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부정한 음식은 먹지 말라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채식을 하라는 교리이다.
부정한 음식에 대한 교리
안식교는 레위기 11장에서 부정하고 가증하다고 하는 음식을 금하는 것을 교리로 가르치고 있다. 즉 구약에서 부정하고 가증하다는 음식은 지금도 부정하고 가증하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증해 보자.
① 부정과 정결의 규례는 폐지되었다.
레위기 11장의 부정과 가증의 규례는 구약의 규례이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십자가의 구속으로 이 모든 규례가 폐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서 명백하게 증거하기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너희를 폄론치 못하게 하라"(골 2:16-17),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고 했다. 이처럼 구약의 부정하고 가증한 모든 규례는 다 폐지된 것이다.
구약에는 부정하고 가증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규례가 있다. 시체를 만지는 자는 7일간 부정하고(민 19:11:), 경도하는 여인이 부정하고(레 12:5), 출산한 산모가 부정하다(아들 33일-레 12:4, 딸 66일-레 12:13). 이러한 규례들은 구약의 규례들로서 신약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안식교의 주장대로 이러한 구약의 규례들이 지금도 적용된다면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하며, 모든 부정한 환자들은 정결 예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부정과 정결의 규례들은 십자가에서 폐한 것들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골 2:14-19).
모세 율법 이전에 있던 규례도 폐해졌다.
안식교는 부정한 음식의 규례가 모세 율법 이전에 제정된 것이므로 폐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영문교리문제 부정한 음식). 즉 다른 부정의 규례는 모세의 율법에서 규정한 것이지만, 부정한 음식에 관한 것은 모세 이전에 있었던 것이므로 모세의 율법은 폐했어도 이것은 폐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모세 이전에 있던 규례는 폐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할례의 규례는 분명히 모세 이전에 제정되었지만(창 17:5) 분명히 폐했고, 제사 제도도 모세 이전에 있었으나(창 4:4-5) 이 또한 분명히 폐했다. 부정의 규례도 마찬가지로 폐했음을 성경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 있다(골 2:16, 딤전 4:4, 롬 14:14, 20, 고전 10:25, 골 2:17).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라"(히 9:10)고 한 말씀을 보아도 분명하다.
이로 보아 모세 이전에 있었던 규례이기 때문에 폐하지 않는다는 안식교의 주장은 오류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성경의 말씀을 굳이 부인하고 구약의 부정과 정결의 규례를 지키겠다는 안식교와 같은 율법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 1:15),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 14:20)라고 하셨다.
베드로의 환상(행 10:9-22)을 통해 증거된 바도 마찬가지다.
사도행전 10장의 베드로의 환상 역시 부정과 정결의 규례가 폐하였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방인을 꺼리는 사도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부정한 음식을 깨끗케 하신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다. 베드로에게 환상 중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시더라"(행 12:10-12)고 하셨다. 이는 이방인을 꺼리는 베드로에게, 부정과 정결의 구별이 없어진 것처럼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졌으니(엡 2:11-18), 거리낌 없이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교훈을 주신 것이다.
화잇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교훈에 모순되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 부정한 것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일이 분명하므로 이런 환상을 보여 주신 것이다. 부정과 정결의 규례는 확실히 폐하여진 것을 이 환상이 더욱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 14:20)라고 하였다.
④ 신약에서는 부정한 음식을 금하지 않았다.
안식교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 끝까지 부정한 음식을 금해야 한다면 반드시 신약성경에 언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언급이 없다. 사도행전 15장에 이방인 가운데 믿는 성도들에게 요긴한 몇 가지의 금해야 할 규례를 전하는 내용이 세 번 언급되었으나(15장에 두 번, 20장에 한 번), 부정한 음식에 관한 언급은 없다. 부정한 음식의 규례가 초대 교회에 있었다면, 당시의 이방인이 개종했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은 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금지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부정한 음식의 규례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증거인 것이다.
⑤ 건강에 대한 법칙도 폐해진 것이다.
안식교는 건강에 대한 모든 법칙은 세상 끝까지 필요하므로, 건강법인 부정한 음식의 규례도 폐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구약의 건강에 대한 법칙도 다 폐해졌기 때문이다. 구약의 건강에 대한 법은 부정한 음식에 관한 것 외에도 씻는 법(레 15:27), 문둥병의 결례(레 13), 유출병의 결례(레 15), 할례 등 많은 건강법이 있었다. 안식교식으로 말하면 이런 규례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법만은 세상 끝까지 폐해지지 않는다는 안식교의 주장은 성경과 맞지 않다.
안식교인들은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써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3:9)라는 말씀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안식교의 채식교리
안식교는 구약의 부정한 음식에 대한 문제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육식을 금지하고 채식을 강력히 주장하고, 심지어 육식 문제를 구원 문제와도 연결시키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건강의 문제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화잇의 거짓 계시에 의해 교리가 된 점이다. 화잇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이 육식에 대항하여 굳게 서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내게 제시되었다. 하나님께서 만일 당신의 백성이 이 기별에 유의하기를 원하시지 아니하신다면, 저들이 깨끗한 피와 명석한 정신을 갖기 원할진대 육식의 사용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기별을 30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전하셨겠는가? 육식을 함으로써 동물적 성질이 강화되고 영성은 약화된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교회에 보내는 권면 2권 412쪽), "유지(동물의 기름)을 넣지 않고 가능한 원상을 살려서 준비한 곡물과 과실은 승천하기 위하여 준비한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의 식탁에 차려질 음식이다"(위의 책 398쪽), "고기를 먹으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빛과 조화된다고 생각할 수 없다"(엘렌지 화잇, 시조사, 음식물과 식생활에 관한 권면 442쪽)고 말한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반증해 보자.
육식은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것이다(창 9:2-3).
육식은 사람이 스스로 먹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직접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안식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변명하고 있다. 그 하나는 인류의 수명을 단축하기 위하여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것과, 또 하나는 홍수 후에 식물이 부족해서 일시적으로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화잇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긴 인류에게 동물성 음식을 먹도록 허락하시어 그들의 죄스러운 생애를 단축하게 하셨다"(위의 책 432-433쪽)고 했다. 또한 "홍수후 지상의 모든 초목이 멸절될 때까지 인간은 육식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위의 책 452쪽), "고기를 허락하신 때는 홍수 바로 후 식물이 심히 부족한 그때이다"(위의 책 452쪽)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우선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기 위하여 육식을 허락하였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위의 말씀을 주실 때 저주로서 주신 것이 아니라, 복으로서 허락하신 것이란 점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창 9:1)라고 되어 있다. 안식교식으로 하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저주하여 (육식을 허락하셨다)"라고 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이 육식을 하여 인간의 수명을 짧게 살도록 하셨다면 그렇게 짧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노아 전에는 인간의 수명이 900세까지에도 이르렀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을 이렇게 단축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런데 안식교인들이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여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된다. 채식이 건강과 장수를 우상화하는 현대인들에게 매혹적인 이슈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기독교의 교리가 될 수는 없다.
셋째는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면 인간의 수명이 노아 전과 같이 수백 년을 사는가? 채식을 했을 것으로 믿어지는 화잇 역시 100세도 넘기지 못하고 80대에 죽었다. 왜 노아 전처럼 살지 못하고 이렇게 빨리 죽었는가? 몰래 고기를 먹었는가? 안식교가 말하는 것처럼 홍수 전의 900세의 인류 수명이 채식의 효과이며, 홍수 후의 120세로의 수명 단축이 육식의 영향이라면, 채식하는 안식교인들이나 채식하는 산 속의 승려들 중에 수백 년 이상의 수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목사는 안식교인들이 육식을 하는 건강법을 좇는 사람보다 더 산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그러나 실제로 세계적인 장수촌인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방이나 일본의 오끼나와 지방의 장수자들은 육식을 하고 있다. 육식을 하는 건강법에 의해서도 130세에 도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인간의 수명 단축은 육식이 아니라 죄악의 영향이며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창 6:3).
홍수 후에 식물이 부족해서 일시적으로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말에는 이런 모순이 생긴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을 기만하는 분이라는 말이 된다. 선을 위해서 악을 허락하신다는 말이다.
둘째, 식물이 부족해서 육식을 하라고 했다면 하나님은 전능자가 아니시다. 광야 40년 동안 200여 만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을 다 먹이셨던 분이 하나님이시다. 더욱이 고기가 아닌 채소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신데도 메추라기 고기로도 먹이셨다. 안식교식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빨리 죽이려고 메추라기를 주셨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먹을 식물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육식을 허락하셨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셋째, 역시 계시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님의 계시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복이라고 주신 계명에도, 복이 아닌 계명이 있는지 의심을 하면서 성경을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이라고 하시며 주신 육식이 인간을 빨리 죽게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② 육식이 도덕적, 지적 특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안식교는 육식을 금하는 이유를, 육식이 도덕적•지적 특성을 약화시켜서 경건 생활에 장애를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식교가 선지자로 믿고 있는 화잇은 말하기를, "육식은 성질을 변화시키며, 동물적인 수욕을 강화시킨다. 우리 몸은 우리가 먹는 것으로 형성되는데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지성의 활동을 감소시킬 것이다"(위의 책 452쪽), "만일 고기를 끊는다면 종교적인 생활이 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며 지속될 수 있다. 왜냐하면 육식하는 것이 색욕의 성향을 활동하도록 극도로 자극하며, 도덕적 및 영적인 특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고기를 습관적으로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지적 도덕적 민감성을 무디게 한다"(위의 책 454쪽)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식이 사람을 도덕적으로 더 약해지게 하고 해로운 것이라면, 하나님의 신실성과 도덕성에 의심이 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롭고 악하게 되는 것을 허락하셨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식교인들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기를 주셨다.
안식교는 채식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민수기 11장을 인용하여 광야에서도 고기를 금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원대로 고기를 주셨으나 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셨다고 해석하고 있다. 화잇은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광야에서 고기를 주시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러한 음식을 먹으면 질병과 불순종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성격을 부드럽게 하고 더욱 고상한 정신력을 민활하게 활동시키기 위하여 주님께서 죽은 동물의 고기를 그들에게서 제거하셨다"(위의 책 435쪽)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식교의 주장은 성경을 주의 깊게 보지 않고 화잇의 거짓 계시에 의하여 선입견으로 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수 없었던 것은, 고기만이 아니고 만나 외에는 채식도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기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먹었던 식물(채식을 포함한)을 포함하여 구했다. 그래서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민 11:5)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들이 재앙을 당한 것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고, 애굽의 식물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민 11:34).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기를 금하신 적이 없다. 그 증거로,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릴 때마다 고기를 먹어야 했다(레 6:26, 29). 안식식교인들이 보는 성경에는 고기를 먹는 제사장들이 재앙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제사장들이 육식을 함으로 동물적인 성격과 질병을 계속 겪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④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도 육식을 하셨다.
육식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해로운 것이며 금해야 한다면,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 채식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 당시 백성들에게 고기를 주셨다(요 6:11). 예수님 자신도 생선을 잡수셨다. 그것도 부활 후에 말이다(눅 24:42-43).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고기를 주셨다(요 21:9-10). 바울도 분명히 고기를 먹은 흔적이 있다(고전 8:13).
구약에서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친히 고기를 주셨다(왕상 17:6).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도 고기를 먹었다(창 18:6-8).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마다 고기를 구워 먹으라고 명령하셨다(출 12:8-9). 구약의 제사장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레 6:26-29).
우리의 모본되시는 예수님도 잡수셨으며,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도 먹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허락하셨던 육식을 화잇은 왜 금하라 하는가? 거짓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16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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