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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가 안식교를 이단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 1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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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샌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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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서적 일요일(주일)예배, 그 기원과 역사
 
■ 지난호 <교회와신앙>측 글을 읽고
글이 진행되는 중이지만, 이미 본 지상 논쟁 1회분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어차피 진정한 이단과 진정한 정통을 가리기 어려운 이 시대에 이단이라는 말을 듣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특별히 지금 한국 교회의 상태는 서로가 다른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여 [상대적 이단]의 집합체가 되어 있으며, 교인의 수(數)가 많는 교단이 일시적으로 정통의 기득권 행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장로교 통합측이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단이 아니라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이러한 지상 논쟁을 시작한 것도 아니다. 다만, 장로교 통합측이 안식일교회를 이단이라고 정할 때 좀더 깊이있는 연구를 하지 못한 채 매우 단편적이고 편협한 관찰에 의해, 세계적인 조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내린 왜곡된 결론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 지상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논쟁은 안식일교회의 올바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 장로교 통합측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 둔다.
 
1. 순복음교회에 대하여
본 지면의 이단 논쟁을 통해서 필자가 순복음교회의 예를 든 것은, 타 교단을 이단 혹은 사이비로 규정하는 원칙과 과정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서 질문을 한 것이다. 장로교 통합측은 1986년 총회에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사이비성을 이유로 이단 결정을 했으나 ,1994년 총회에서 다시 '해벌'(解罰)이라는 이상한 용어를 사용하여 이단 결정을 풀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이단 연구를 좀더 신중히 하라는 의미에서 질문을 한 것이지, 순복음교회를 사이비성 교회로 정했다가 '해벌'(解罰)한 것처럼 안식일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 달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글을 비평할 때에는 문장의 앞 뒤를 살펴서 필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사용해 줄 것을 당부한다.
 
2. 엘렌 화잇 비판 부분에 대하여
1) 참 선지자, 성서적 계시는 다음의 기준으로 판별될 수 있다.
①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 참 선지자는 그들의 말하는 바가 성경 말씀에 맞아야 한다.
② (렘 28: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 참 선지자는 그들의 예언하는 바가 성취되어야 한다. 
③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참 선지자는 그의 생활에 있어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④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참 선지자는 예수의 육체로 오심을 인정해야 한다.

참 선지자, 혹은 성서적 계시는 성경이 제시하는 위의 네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고, 어느 것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으면 참 선지자, 혹은 올바른 계시라고 할 수 없다. 안식일교회는 엘렌 화잇의 영감성을 판별할 때에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위의 네 가지 시금석을 기준으로하여 분별하고 있다. 
<교회와신앙>측은 안식일교회가 엘렌 화잇의 글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고 계속 주장을 하는데, 어느 집단에서나 있을 수 있는 '극단적인 소수'의 견해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건전한 비판 태도가 아니다. 분명히 본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모든 신앙과 교리의 원칙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며, 엘렌 화잇의 어떤 글도 성경과 맞지 아니하면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채식을 강조하는 일이 성경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하여 비판한 부분에 대해서는, 본 지상 논쟁 중 채식 문제에 대하여 다루게 될 때에 상세히 설명할 것이므로 이번 호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2) "빗나간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답변
① "노예 제도가 재림시까지 계속 될 것"이라는 말 - 이 내용은 원래 문장의 일부를 인용하여 만들어 낸 말이다. 문장 전체를 보면 충분한 배경 설명이 있으며, 그 마지막 문장도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반역을 일으킨 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미국)를 파멸시켜 오던 노예 제도는 그 생명이 부지될 것이며 또 다른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교회증언 1권, 영문 255). "반역을 일으킨 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삭제하고 뒷 부분만 인용하여 비평하는 것은 비양심적인 비평가들이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다. "비가 오면 나는 가지 않겠다"는 문장에서 "비가 오면"이라는 부분을 빼면 무조건 가지 않겠다는 뜻이 되어 원래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시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② 링컨을 비난하고 그가 패할 것이라고 했다는 비평 - 원래의 문장은 이것이다. "이 나라는 언젠가는 티끌에까지 낮아지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1권, 영문 259). 이 말("humbled into the dust")의 의미는 무엇인가? 남북전쟁에 있어서 링컨이 주도하는 정부군(북군)이 큰 모욕을 당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전쟁이 시작된 후 북군은 비교적 인구도 적고 약세인 남군에 의해 2년 동안이나 고전하였으며, 미국이 그렇게 약화된 틈을 이용하여 당시 영국은 미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고려할 정도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원래의 문장대로 한다면 빗나간 예언이 아니라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③ 1856년 총회에서의 발언 - 화잇은 당시 총회 대표자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살아서 맞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 나타나는 축복이나 저주는 조건적이다. "말씀에 순종하면" "순종치 아니하면"이라는 조건에 따른 결과로 축복과 저주가 임했던 것이다(참고 : 민 14:26-34; 욘 3:3-10 등). 엘렌 화잇은 1856년 총회 이후 10여 년이 지난 다음, 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므로 재림이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교회증언 2권, 영문 194). 재림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미래적이면서도 현재적인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재림을 기다렸고 사도 바울도 그러했다. 바울이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 4:15)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문장의 "우리" 속에는 바울이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기 시대에 있을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예언도 빗나간 것인가?

④ 천체에 대한 언급 - 비평하는 사람들은 화잇이 직접 기록한 원전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인용하여 설명한 2차 자료를 사용하고 있다. 화잇이 어떤 별에 대한 이상을 말하고 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이 그것은 목성에 대한 것이고 혹은 토성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었으며, 화잇이 직접 목성에는 달이 몇 개 있고 토성에는 달이 몇 개 있다고 하면서 별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어쩌면 독자들을 기만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위와 같은 방식의 모든 비판에 대해서는 [엘렌 화잇과 그에 대한 비평들](F. D. Nichol, Ellen G. White and Her Critics, 1951, R&H Publ., Assn.)이라는 책에 상세한 답변과 설명이 있음을 밝혀 둔다.
 
■ 주일 예배 논란
  성경에는 창조의 기념일로 제정된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되어 있다. 지난 호에 이미 언급했듯이 성경상의 제칠일은 오늘날의 토요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토요일) 대신 주일(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일 예배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과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적 혹은 종교적 통념에 의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저 막연하게 아는 것은, 안식일은 구약 시대 유대인들이 지키던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으며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일요일에 예배한다는 것 정도이다. 
  안식일은 유대인이 생겨나기 약 2000년 전,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인류 전체를 위해서 제정하셨다는 것과,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경의 근거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뒷 부분에 상세한 설명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목사들이나 평신도들 사이에는 안식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매우 열성적으로 말씀을 연구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러면 우선,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그 일요일 예배가 어떻게 시작되어 교회 안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기원부터 알아 보겠다.
 
■ 주일(일요일) 예배의 기원
  주일 예배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또 몇 성경절들을 주일 예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모두 성경의 원뜻을 벗어난 것들이며, 사실상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없으므로, 그 기원은 역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1.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정책
  2세기 초엽에 로마에는 하드리아누스라는 황제가 있었다. 유능한 정치가였고 로마의 많은 속국들과 화친 정책을 펴서 매우 안정된 정치를 하였다. 그 당시 반란이 심하던 유대인들과 화친 조약을 맺고, 유대인들의 소원을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 허가를 해 주었다(130년경).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을 위하여 막대한 자금을 거두었다. 
  얼마 후, 황제는 모든 속국들에게 자신을 신의 아들로 부르도록 하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고, 유대인들은 몹시 반발하였다. 하드리아누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인들이 시행하던 할례 의식을 금지시켰다. 전국 유대 랍비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하드리아누스는 분노하여 예루살렘 성전 재건령을 취소하였다.
 
2. 유대인 2차 반란과 그 결과
  서기 132년부터 135년 사이 발코체바를 주동으로 하는 유대인들의 대규모 반란이 있었다. 이미 거두어진 성전 건축 자금이 반란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황제는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당시 로마의 명장 세베리우스와 정예부대 22군단을 파견하였다. 
  전쟁과 반란에 능한 유대인들은 로마의 군대를 엥케리라고 하는 험한 골짜기로 유인한 후, 미리 매복해 있던 반란군들이 뛰어나와 로마의 정예 부대를 참패시켰다. 세베리우스 장군은 몹시 자존심이 상하여 군대를 재정비한 후, 유대인 마을들을 하나씩 포위하여 초토화시키는 작전으로 유대인의 마을 985개를 전멸시켰으며, 약 10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다시 세 가지 금지령<㉠ 토라(모세 오경) 사용 금지 ㉡ 할례 금지 ㉢ 안식일 예배 금지>으로, 유대인에 대한 보복을 가하였다. 그리고 그 세 가지 금지령을 어기면 사형으로 다스렸다. 이 금지령에 때문에 교회 안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모두가 다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 반란으로 인한 금지령 속에 포함된 안식일 준수 문제는 기독교인들에게까지 해당되는 칙령이었다.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들도 안식일을 지키면 유대인으로 간주하여 박해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 제국의 위정자들은 그리스도교를 단순히 유대교의 또 다른 한 분파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 유대인들이 신봉하는 같은 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점, 둘째, 두 부류가 모두 구약 성경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 세째, 모두가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3.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당시 교회를 대표하는 변증 교부들이 황제에게 보내는 서한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는 다르니 다르게 취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이를 무시하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결국, 교부들은 유대인들과의 차별화와 로마의 이교도들과의 동질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유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구약의 하나님 대신 신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며, 이교도와의 동질화를 위해서는 안식일 대신, 당시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의 예배일인 일요일 예배를 교회에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일요일 예배가 교회 안에 유입된 역사를 보면, 영지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이 작용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예수는 "의의 태양"(Sol Justitiae)이시므로, 로마인들의 "불패의 태양"(Sol Invictus)인 미트라와 동신이명(同神異名)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리로 교회의 일요일 예배를 합리화, 혹은 정당화한 것이다. 이들로부터 소위 일요일 신성론, 영혼 불멸설 등이 발생되었고, 나중에는 크리스마스 경축제와 마리아 숭배 등이 교회로 도입된 것이다.
  가장 유명한 교회 역사가 중의 하나인 유세비우스도, 고대의 일요일 신성론 신학자들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 또는 "의의 태양"에 관련시켜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태양의 날"을 상징학적 의미로 해석하여 일요일 준수를 정당화했다. 그는 그의 저술 [시편 주해](Commentaria in Psalmos, chap. 92)에서 "이 빛의 날, 곧 첫째 날이요 '참 태양의 날'에 우리가 6일을 지낸 후 모두 모이는데, 이 날을 우리가 성스럽고 영적인 안식일로 축제"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는, 태양은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바로 태양신 아폴로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주의 날…,이 명칭은 빛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며, 또한 그 태양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말한다.
  일요일(주일) 예배,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 부활 이후 안식일이 폐지되고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했다고 하는 단순 논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요일 예배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아 교회의 예배일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교들과 로마의 황제들과 이교적 신학자들의 영향, 태양신과 관계, 그리고 엄청난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비성서적인 제도임을 알아야 한다. 
  옥스포드 대학교 교회사 교수였던, 스텐리(A. P. Stanley, 1815-1881)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논증하고 있다. 
"고대 태양신에게 부단한 충성심을 바친 자들이, 그들의 종교 의식 자취를 남겨 놓았다. …지극히 거룩하며, 우주적인 이 그리스도 교단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다. 고대 우상 숭배자들이 명명한 '태양의 날'(dies solis)이라는 칭호의 존속은, 대개 우상 숭배교와 그리스도교의 절개가 서로 연합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Lecture on the History of the Eastern Church, 1884, p.184).
 
4.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힙입어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마침내 321년 3월 7일에 일요일을 공식적인 휴일로 선포하게 되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태양을 존경하는 날에 모든 관공리들과 각 도시의 주민과 제조 공장의 종업원들은 휴업하라. 그러나 농촌에서 경작에 종사하는 농민은 자유로이 노동할 수 있다. 이는 씨를 뿌리고 포도를 심는데 불리할까 염려됨이라".
  이 법령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하는 기점이 되었다. 이 법령을 통해서 콘스탄틴 황제는 제국 내의 2대 종파, 즉 태양신 아폴로(Apollo)를 숭배하는 이교도들과 ,또 다른 태양신 그리스도(Kristos)를 숭배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을 일요일(dies solis)로 묶어서, 단일 종교로 융합해 보려는 야심적인 종교 정책을 시도했던 것이다.

  콘스탄틴은 이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선포했으나, 사실상 이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전략상의 개종이었다. 삼성출판사에서 발행한 [대세계의 역사] 3권 211쪽에는 콘스탄틴의 개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신(神)을 버리고 새로운 신에게 귀의했다는 뜻의 개종은 아니다. 그의 신은 그 전과 동일한 신이었다. 다만 그 전과 동일한 그 신이, 그리스도교의 교회에서 예배되고 있는 신이라고 교정된 점만이 옛날과 달랐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참다운 의미에서의 개종은 아니었던 것이다".
 
5. 일요일예배에 대한 교회의 공식 결의
  이와 같이 일요일 예배는, 비성서적인 배경을 가지고 매우 인위적이면서도 이교적인 방법으로 교회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가톨릭화 되어가는 종교,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면서, 마침내 교회에서도 일요일 예배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몇 차례의 회의가 있었고, 성경의 권위가 아닌 교회의 총회를 통해서 결의를 하게 되었다.
 
  364년에 열린 라오디게아 종교 총회에서는, 결국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일요일 예배를 공식적으로 인준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 날에 반드시 일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 10세로 부터 "사도적인 축복"(Apostolic Blessing)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가톨릭 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가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개신교회를 향하여 직설적으로 증언하는 다음의 내용을 보면, 분명히 주일예배는 비성서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하나님께 거룩히 지켜지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비가톨릭 신자들은 1800년간,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성경의 제도가 아닌,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 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신앙의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신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 보증이 없다." .
  사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일요일 예배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이 보편화되었는지에 대해서 그 정확한 배경을 인식하고 있는 교회는, 개신교회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이다.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으로'라는 정신을 가지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일요일 예배에 대한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가톨릭은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가 없는 일요일 예배에 대하여 교회의 전통을 근거로 하여 매우 떳떳한 입장을 내세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들어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이 아니다." <기본스 저, 장면 역, 교부들의 신앙, 108>.
  일요일 예배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 <교회와신앙>측은, 먼저 가톨릭측과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경적 근거의 유무'에 대한 논쟁을 거치고 나서 안식일교회측과 대화를 계속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반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양측의 주장 중에서 하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위와 같은 역사적•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리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 개신교회는, 일요일 예배에 대한 근거를 성서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몇몇 성경절들을 무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 주일(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오해되는 성경절들의 올바른 해석
  일반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과 연관지으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부활한 사건과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일을 결부시키려고 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시도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한 요일은 분명히 일요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요일 예배를 부활과 연관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이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의 논리는 더 이상 재고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한 사실, 그것은 물론 매우 귀중한 진리요,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날마다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 깊이 새겨져야 할 신앙의 기둥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활한 날에 예배를 드린는 것은 성서적으로 아무런 명분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요일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요일도 중요하고 탄생하신 요일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사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그 사건이 일어난 요일을 예배일로 정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도인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성만찬 예식(고전 11:26)을 통해서 기념하도록 되어있고, 부활의 의미는 침례 예식(벧전 3:21; 롬 6:5)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침례를 받은 뒤로는 세족 예식(요 13:10)을 통해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 근거로 제시하는 몇 성경절들을 살펴보자.
 
1.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20:19).
  이 성경절의 배경을 보면, 모임의 목적이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한 부활의 사실도 의심한 채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 곳에 모여 문을 닫고 숨어 있는 장면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안식 후 첫 날'이라는 단어가 나온다고 해서 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삼는 것은 성경을 너무 가볍게 해석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런 사건이 일어난지 몇십년 후에 기록되었다. 그런데도 일요일을 여전히 "안식후 첫날"이라고만 기록하여 그 날이 성일이 아님을 확인한다.
 
2.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 
  이 성경절도 역시 '안식 후 첫날'이라는 보통의 용어가 사용됐다. 떡을 뗐다는 내용도 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해가 지면서 하루가 시작되는 유대식 계산법을 사용하였다(레 23:32; 눅 23:54). '안식후 첫날'은 토요일 해가 지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배경은 이런 것이다. 사도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서 한 주일을 머물고 이제 다음 날 떠날 예정이었다. 때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TEV(Todaty's English Version)에는 이 시간에 대하여 '토요일 저녁'(On Saturday evening)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 날 저녁은 송별회 시간이었고 밤중 집회가 계속되었으며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창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바울이 살리는 사건도 있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떡을 떼는 일이 흔했다(행 2:46). 그러므로 이것도 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성경절이 아니다.
 
3.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1,2).
  이 성경절에서 '연보'라는 말과 '매주일 첫날'이라는 말을 연결시켜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 근거로 사용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나 분명히 성경을 잘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우선 여기에서 '연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나 헌금과는 구분되는 구제금을 가리키는 것이다. 연보는 수집, 모금의 의미를 가진 헬라어 로기아(logia)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헌금(헬라어 dora, 눅 21:1,4)이라는 말과는 달리 쓰여지고 있다.
  이 성경절은, 당시 기근으로 인해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위한 구제금 모금에 관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제안하는 내용이다. 갈라디아 교회에 제안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매 주일 첫날 일해서 번 돈은 개인을 위해서 사용하지 말고 따로 저축해 두었다가 다 함께 모아서 구제금으로 보내자는 것이다. 오히려 일요일에는 평일처럼 일을 했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려 주고 있는 성경절이다.
 
4.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10).  
  우선, 신약 성경 어디에도 일요일 예배에 대한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의 '주의 날'을 주일로 적용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한 해석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때와 거의 동시대에 같은 저자가 기록한 요한복음 어디에도 일요일을 '주의 날'로 부른 예가 없다.
  그러면 왜 사도 요한은 다른 곳에서 사용한 일이 없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을 계시록에서 쓰고 있는가? 당시 로마의 황제 도미시안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황제 예배를 강요하였으며, 이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도미시안은 자기를 '주와 하나님'(lord and god)으로 칭하도록 했다. 그리고 황제가 어떤 도시를 방문하면 그 날은 공휴일이 되었으며, 동시에 황제 예배일(Imperial day - 황제의 날)이 되었다.
  요한은 이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서 주님(Lord)이 주인이 되는 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친히 주인이라고 선언한 날은 언제인가?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8).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1장 10절의 '주의 날'(Lord's day)은 오늘날의 주일(일요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다.
  주일 예배에 대한 성경의 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에, 주일 예배를 옹호하기 위하여 초기 교회 교부들의 문서가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성경 자체가 지지하지 않는 주일 성수를, 교부들의 편지서를 가지고 뒷받침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합당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굳이 그것이라도 사용한다면 다음호에서 그 문제에 대하여 비판을 하겠다.
 
■ 구원받은 백성들이 여전히 지켜야 하는 안식일
  히브리서 4장 9절과 10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9절에 나오는 '안식할 때'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싸바티스모스(           )로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신약에 한 번 나오는 합성어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10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라는 문장에서의 '안식'이라는 말은 카타파우시스(          )로서 궁극적인 쉼, 즉 구원을 뜻하는 것이다. 10절의 의미는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쉰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쉬셨는가? 히브리서 4장 4절에 그 대답이 명백하게 나와 있다.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하나님의 참 백성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제 칠일(안식일)에 자기 일을 쉬신 것처럼 제 칠일을 안식일로 쉬며, 그 분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임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11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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