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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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진리에 대해 알아보자. 율법에 대해 바로 알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 구약만 율법이 아니다. 깨닫지 못한 성경 전체의 말씀은 율법임을 알아야 한다.
계시록 22:13,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계시록 21:13). 알파, 처음, 시작은 율법말씀을 오메가, 나중, 끝은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말씀과 진리의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진리의 말씀은 율법말씀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0). 예수께서는 율법사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불렸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치중하여 문자말씀에 깨달음을 받아야만 하는 중요성을 알지 못하였었다(마태복음 23:2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 중요성을 결코 소홀히 하면 아니 된다.
사도들이 기록한 서신서들은 그들이 깨달은 진리를 감추어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전제로 비유로, 은유로, 특히 계시록은 상징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도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입은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이는 우리도 진리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입으라는 뜻이다.
성경말씀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현실이다. 성경말씀의 주 목적은 우리를 그 분의 아들로 세워 새 피조물로 만드는데 있다(고린도후서 5:7). 새 피조물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비유하고 있다(이사야 65:17, 계시록 21:1).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天地)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다. 태초에 대해선 이미 기고한 바 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때, 깨달은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태초가 되어진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에 계신 분이시다. 스스로 계신(출애굽기 3:14) 분에게는 태초가 성립되지 않는다.
성경은 율법에 대해 여러 모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복음 5:17).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로마서3:20).
출애굽기 25: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출애굽기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 위 두 그룹의 양쪽 끝은 하나님 자신을 묘사한다. 한 덩이로 연결된, 이 끝과 저 끝은 율법과 진리를 의미한다. 바로 신구약의 문자말씀과 문자말씀에 담긴 내적의미이다. 사이를 둔 이 두 그룹은 증거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 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시겠고, 또한 말씀하시겠다고 하신다. 모세도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민 7:89).
우리도 역시 우리 각자의 성전 안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셋째 날의 의미이다. 성경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심을 때, 그 심은 말씀에 깨달음은 진리의 성령께서 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13). 율법말씀과 진리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다(고린도전서 3:16-17). 우리의 성전에 율법과 진리가 공존하여야만 한다. 사람의 거짓 가르침은 성전을 더렵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리라"(고린도전서 3:17). 율법 아래서 진리를 간구하는 자(마태복음 7:7)에게는 진리의 성령께서 생명수 샘물을 값 없이 주신다. 진리의 말씀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오직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사람의 것이다. 천국을 침노하는자(마태복음 11:12)가 진리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교회에 참석하게 되면 성경말씀에 적용을 받게 된다. 깨닫지 못한 성경말씀은 율법임을 알아야 한다. 율법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기 위해 주신 것이다(로마서 3;20). 율법말씀은 우리의 양심의 죄를 깨닫게만 하여 주신다. 성경말씀을 거론하며, 많이 아는척 하지만, 감추인 진리를 모른다면, 아직도 율법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 5:12).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진리의 말씀)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8).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요 14:27–28). 예수는 가셔서 보혜사, 진리의 성령으로 다시 오신다. 다시 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재림의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진리의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분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신다(요한복음 16:1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말씀)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진정으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이는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말씀하셨던, 그 분의 말씀을 기록한 사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보혜사, 성령의 목적은 기록된 성경의 문자말씀의 내적의미를 가르치시어, 우리를 그 분의 진리께로 인도하는데 있으시다. 그 분이 가시면 보혜사로 다시 오신다. 그 분이 오시면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율법말씀도 하나님이시요, 진리의 깨달은 말씀도 하나님이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복음 5:17).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여 기록되어진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려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구약과 신약의 기록된 그 분의 말씀의 내적의미를 직접 가르쳐 주신다. 진리의 성령께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하실 것이다. 율법은 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심령에 율법말씀이 있어야만 진리로 깨달음을 받을 수 있다.
율법말씀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 계시될 때까지 우리의 신앙을 묶어두고 있다. 율법말씀은 진리의 말씀이 부활되는 그 때까지만 우리에게 적용 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라디아서 3:23).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계시될 믿음의 때", "장차 오는 좋은 일" 이란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느니라” (롬 10:4). 믿는 자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는 자를 의미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천지”는 우리의 영과 육을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우리의 혼의 구원이다(베드로전서 1:9). 그러나 우리의 영이 잠들어 있다면 혼의 구원은 없다. 우리의 몸 전체가 온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기까지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한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만 한다. 책"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다"를 참고 하시기 바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121005
영어책은 "God's Mystery That Is Christ" http://www.amazon.com/Gods-Mystery-That-Is-Christ/dp/1490815945
율법은 우리의 육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겉 사람인 우리의 육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 7:12). 비록 율법이 거룩하며 선하다 할지라도, 이 율법말씀은 겉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외적진리로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선생 역할만 할 뿐이다(갈라디아서 3:23–25).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말씀을 거쳐 가야만 한다.
[출처] 율법과 진리|작성자 장석련
계시록 22:13,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계시록 21:13). 알파, 처음, 시작은 율법말씀을 오메가, 나중, 끝은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말씀과 진리의 말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진리의 말씀은 율법말씀 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20). 예수께서는 율법사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불렸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치중하여 문자말씀에 깨달음을 받아야만 하는 중요성을 알지 못하였었다(마태복음 23:2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는 중요성을 결코 소홀히 하면 아니 된다.
사도들이 기록한 서신서들은 그들이 깨달은 진리를 감추어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전제로 비유로, 은유로, 특히 계시록은 상징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도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입은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이는 우리도 진리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입으라는 뜻이다.
성경말씀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현실이다. 성경말씀의 주 목적은 우리를 그 분의 아들로 세워 새 피조물로 만드는데 있다(고린도후서 5:7). 새 피조물을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비유하고 있다(이사야 65:17, 계시록 21:1).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天地)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다. 태초에 대해선 이미 기고한 바 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때, 깨달은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태초가 되어진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에 계신 분이시다. 스스로 계신(출애굽기 3:14) 분에게는 태초가 성립되지 않는다.
성경은 율법에 대해 여러 모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복음 5:17).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로마서3:20).
출애굽기 25: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출애굽기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 위 두 그룹의 양쪽 끝은 하나님 자신을 묘사한다. 한 덩이로 연결된, 이 끝과 저 끝은 율법과 진리를 의미한다. 바로 신구약의 문자말씀과 문자말씀에 담긴 내적의미이다. 사이를 둔 이 두 그룹은 증거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 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시겠고, 또한 말씀하시겠다고 하신다. 모세도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민 7:89).
우리도 역시 우리 각자의 성전 안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셋째 날의 의미이다. 성경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심을 때, 그 심은 말씀에 깨달음은 진리의 성령께서 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13). 율법말씀과 진리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된다(고린도전서 3:16-17). 우리의 성전에 율법과 진리가 공존하여야만 한다. 사람의 거짓 가르침은 성전을 더렵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리라"(고린도전서 3:17). 율법 아래서 진리를 간구하는 자(마태복음 7:7)에게는 진리의 성령께서 생명수 샘물을 값 없이 주신다. 진리의 말씀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오직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사람의 것이다. 천국을 침노하는자(마태복음 11:12)가 진리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교회에 참석하게 되면 성경말씀에 적용을 받게 된다. 깨닫지 못한 성경말씀은 율법임을 알아야 한다. 율법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기 위해 주신 것이다(로마서 3;20). 율법말씀은 우리의 양심의 죄를 깨닫게만 하여 주신다. 성경말씀을 거론하며, 많이 아는척 하지만, 감추인 진리를 모른다면, 아직도 율법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 5:12).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진리의 말씀)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8).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요 14:27–28). 예수는 가셔서 보혜사, 진리의 성령으로 다시 오신다. 다시 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재림의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진리의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분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신다(요한복음 16:1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말씀)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진정으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이는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말씀하셨던, 그 분의 말씀을 기록한 사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보혜사, 성령의 목적은 기록된 성경의 문자말씀의 내적의미를 가르치시어, 우리를 그 분의 진리께로 인도하는데 있으시다. 그 분이 가시면 보혜사로 다시 오신다. 그 분이 오시면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율법말씀도 하나님이시요, 진리의 깨달은 말씀도 하나님이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복음 5:17).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여 기록되어진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려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구약과 신약의 기록된 그 분의 말씀의 내적의미를 직접 가르쳐 주신다. 진리의 성령께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하실 것이다. 율법은 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심령에 율법말씀이 있어야만 진리로 깨달음을 받을 수 있다.
율법말씀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 계시될 때까지 우리의 신앙을 묶어두고 있다. 율법말씀은 진리의 말씀이 부활되는 그 때까지만 우리에게 적용 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라디아서 3:23).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 "계시될 믿음의 때", "장차 오는 좋은 일" 이란 진리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느니라” (롬 10:4). 믿는 자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는 자를 의미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천지”는 우리의 영과 육을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우리의 혼의 구원이다(베드로전서 1:9). 그러나 우리의 영이 잠들어 있다면 혼의 구원은 없다. 우리의 몸 전체가 온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기까지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한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만 한다. 책"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다"를 참고 하시기 바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121005
영어책은 "God's Mystery That Is Christ" http://www.amazon.com/Gods-Mystery-That-Is-Christ/dp/1490815945
율법은 우리의 육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겉 사람인 우리의 육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로마서 7:12). 비록 율법이 거룩하며 선하다 할지라도, 이 율법말씀은 겉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외적진리로서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선생 역할만 할 뿐이다(갈라디아서 3:23–25).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율법말씀을 거쳐 가야만 한다.
[출처] 율법과 진리|작성자 장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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