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질 씨/말씀과 썩지 아니할 씨/말씀 [출처] 썩어질 씨/말씀과 썩지 아니할 씨/말씀|작성자 장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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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있는 똑같은 성경말씀이지만 차원적인 말씀이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미 말씀드린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길, 진리, 생명은 차원적인 말씀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창 1:27) 변화함을 입기 위해서는 길에서 진리와 생명의 말씀으로, 점차적인 과정을 거쳐야 된다. 베드로전서 1:23, 썩어질 씨와 썩지 아나할 씨에 대해 알아보자.
문자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일 뿐이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 5:12).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는 겉 사람에게 적용되는 길의 말씀이다. 신앙의 초보에 있는 사람은 마치 젖만 먹어야만 하는 어린 아이와도 같다. 마찬가지로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이와 똑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신앙의 초보에서 선생으로, 젖 먹는 어린 아이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어른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단단한 식물은 성경말씀 속에 감추인 그분의 뜻으로서 진리의 말씀, 부활의 말씀, 열매의 말씀 등으로 불리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누가복음 8:11). 항상 있는 씨/말씀이지만, 썩어질 씨/말씀과 썩지 아니할 씨/말씀으로 분리할 수 있다. 바로 풀과 채소에 의해 맺는 씨(창세기 1:30)와, 나무에 의해 맺는 씨(창세기 1:29)이다. 풀과 채소에 의해 맺는 씨는 썩어질 씨로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지 못한다. 또한 성경은 풀과 채소를 꽃에다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세상 지식을 접어두지 못한 사람은 풀과 채소의 씨/말씀을 가진 사람들이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썩지 아니할 씨/말씀, 즉 살아있는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24–25).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말씀은 우리의 겉 육신에게 주신 율법(깨닫지 못한 성경말씀은 율법이다)말씀을 의미한다. 주의 말씀이란 그리스도의 진리이며 문자말씀 속에 감추어진 그 분의 깨달은 말씀이다. 이 깨달은 말씀이 부활의 말씀이며,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다. 바로 이 말씀은 사도들이 진리의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였던 그 말씀이다(사도행전 4:2). 사도들이 전한 복음서는 깨달음의 말씀을 감추어 말하고 있음이다. 예를 들면, 사도 야고보가 말하는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약 1:18). 사도 야고보는 진리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은 사람이다. 이는 우리로 진리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으라는 뜻이다.
셋째 날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 드린바 있다. 우리의 육신은 반드시 마른 땅이 되어야만 한다(창세기1:9–10). 성경의 문자말씀을 우리의 마른 땅에 심을 때에,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경험하게 된다. 사도들이 전하였던 복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인 썩지 아니할 씨로 된, 하나님의 살아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양식(식물)을 먹음으로 육신의 힘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식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양식은 육신의 양식을 말씀하고 있지 않으신다. 육신의 양식은 밥이지만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요 4:32).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세기 1:29). 이 식물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창세기 128)에게 주신 양식이다. 바로 썩지 아니할 말씀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창세기 1:30). 푸른 풀의 식물은 썩어질 말씀이다. “땅에 기는 모든 것”이란 우리의 겉 육신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씨 맺지 못하는 푸른 풀의 말씀을 우리의 겉 육신에게 주시고, 제 삼 일이 성취되기까지 풀의 말씀으로 살게 하신다. 푸른 풀의 말씀을 베어버리면 새로 움이 돋는다(잠언 27:25). 제 삼일은 셋째 날을 참조바람.
하나님께선 풀의 말씀, 채소의 말씀, 열매의 말씀을 우리 각자에게 주셨다(창세기 1:29–30). 열매의 말씀을 의의 말씀, 또한 단단한 식물, 단 포도주 (요엘 3:18)라고 성경은 표현한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13–14).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신명기 32:2). 하나님의 교훈과 말은 풀의 말씀을 적시는 가는 비와 이슬로 비유되고 있지만, 문자말씀의 주인이신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께로 인도하실 때에는(요한복음 16:13), 이 비는 소나기를 동반하실 것이다. 단비란 소나기를 의미한다.
우리는 반드시 풀과 채소의 말씀을 졸업하고 다음 단계인 열매의 말씀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성경의 문자말씀은 풀의 말씀이요 채소의 말씀이다. 열매의 말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문자말씀에 깨달음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가 열매의 말씀을 성취하게 될 때에, 우리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모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우리의 혼적인 육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창세기 1:28).
요한복음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함께 영이 살아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과 육이 함께 산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속 존재가 겉 존재를 다스릴 때(창세기 1:28), 그들의 혼이 구원을 받게 되어 온전히 산 자가 된다(누가복음 20:38).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은 영적인 죽음이란 없다. 그들의 육신이 죽으면 그들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 천국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첫째 부활이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계시록 20:6).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4). 율법은 우리를 진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선생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들이 우리의 속 사람으로부터 다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우리가 온전한 자가 될 때 율법은 자기의 사명을 다한 것이 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10:4).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천지(天地)”는 우리의 영과 육을 의미한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우리의 혼의 구원이다(벧전 1:9). 우리의 몸 전체가 온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기까지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한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여 기록되어진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려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요한복음 14:16–17)은 우리에게 구약과 신약의 기록된 그 분의 말씀의 내적의미를 직접 가르쳐 주신다. 진리의 성령께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하실 것이다. 율법말씀은 반드시 졸업하여야만 한다. 그래야 보혜사, 진리의 성령으로 구속을 받아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게 된다. 진리의 성령에 의해 다시 거듭남을 입고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구속이 되어진다. “그리스도 예수(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그리스도는#하나님의#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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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썩어질 씨/말씀과 썩지 아니할 씨/말씀|작성자 장석련
문자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일 뿐이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 5:12).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는 겉 사람에게 적용되는 길의 말씀이다. 신앙의 초보에 있는 사람은 마치 젖만 먹어야만 하는 어린 아이와도 같다. 마찬가지로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이와 똑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신앙의 초보에서 선생으로, 젖 먹는 어린 아이에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어른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단단한 식물은 성경말씀 속에 감추인 그분의 뜻으로서 진리의 말씀, 부활의 말씀, 열매의 말씀 등으로 불리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누가복음 8:11). 항상 있는 씨/말씀이지만, 썩어질 씨/말씀과 썩지 아니할 씨/말씀으로 분리할 수 있다. 바로 풀과 채소에 의해 맺는 씨(창세기 1:30)와, 나무에 의해 맺는 씨(창세기 1:29)이다. 풀과 채소에 의해 맺는 씨는 썩어질 씨로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지 못한다. 또한 성경은 풀과 채소를 꽃에다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세상 지식을 접어두지 못한 사람은 풀과 채소의 씨/말씀을 가진 사람들이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썩지 아니할 씨/말씀, 즉 살아있는 말씀을 경험해야 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24–25).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말씀은 우리의 겉 육신에게 주신 율법(깨닫지 못한 성경말씀은 율법이다)말씀을 의미한다. 주의 말씀이란 그리스도의 진리이며 문자말씀 속에 감추어진 그 분의 깨달은 말씀이다. 이 깨달은 말씀이 부활의 말씀이며,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다. 바로 이 말씀은 사도들이 진리의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였던 그 말씀이다(사도행전 4:2). 사도들이 전한 복음서는 깨달음의 말씀을 감추어 말하고 있음이다. 예를 들면, 사도 야고보가 말하는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약 1:18). 사도 야고보는 진리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은 사람이다. 이는 우리로 진리의 말씀으로 낳음을 입으라는 뜻이다.
셋째 날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 드린바 있다. 우리의 육신은 반드시 마른 땅이 되어야만 한다(창세기1:9–10). 성경의 문자말씀을 우리의 마른 땅에 심을 때에,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경험하게 된다. 사도들이 전하였던 복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인 썩지 아니할 씨로 된, 하나님의 살아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양식(식물)을 먹음으로 육신의 힘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식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 양식은 육신의 양식을 말씀하고 있지 않으신다. 육신의 양식은 밥이지만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요 4:32).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세기 1:29). 이 식물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들(창세기 128)에게 주신 양식이다. 바로 썩지 아니할 말씀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창세기 1:30). 푸른 풀의 식물은 썩어질 말씀이다. “땅에 기는 모든 것”이란 우리의 겉 육신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씨 맺지 못하는 푸른 풀의 말씀을 우리의 겉 육신에게 주시고, 제 삼 일이 성취되기까지 풀의 말씀으로 살게 하신다. 푸른 풀의 말씀을 베어버리면 새로 움이 돋는다(잠언 27:25). 제 삼일은 셋째 날을 참조바람.
하나님께선 풀의 말씀, 채소의 말씀, 열매의 말씀을 우리 각자에게 주셨다(창세기 1:29–30). 열매의 말씀을 의의 말씀, 또한 단단한 식물, 단 포도주 (요엘 3:18)라고 성경은 표현한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13–14).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신명기 32:2). 하나님의 교훈과 말은 풀의 말씀을 적시는 가는 비와 이슬로 비유되고 있지만, 문자말씀의 주인이신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께로 인도하실 때에는(요한복음 16:13), 이 비는 소나기를 동반하실 것이다. 단비란 소나기를 의미한다.
우리는 반드시 풀과 채소의 말씀을 졸업하고 다음 단계인 열매의 말씀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성경의 문자말씀은 풀의 말씀이요 채소의 말씀이다. 열매의 말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문자말씀에 깨달음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가 열매의 말씀을 성취하게 될 때에, 우리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모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우리의 혼적인 육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창세기 1:28).
요한복음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살아서 주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함께 영이 살아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과 육이 함께 산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속 존재가 겉 존재를 다스릴 때(창세기 1:28), 그들의 혼이 구원을 받게 되어 온전히 산 자가 된다(누가복음 20:38).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은 영적인 죽음이란 없다. 그들의 육신이 죽으면 그들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 천국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첫째 부활이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계시록 20:6).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4). 율법은 우리를 진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선생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들이 우리의 속 사람으로부터 다스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우리가 온전한 자가 될 때 율법은 자기의 사명을 다한 것이 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10:4).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천지(天地)”는 우리의 영과 육을 의미한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한다.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우리의 혼의 구원이다(벧전 1:9). 우리의 몸 전체가 온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기까지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한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여 기록되어진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려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요한복음 14:16–17)은 우리에게 구약과 신약의 기록된 그 분의 말씀의 내적의미를 직접 가르쳐 주신다. 진리의 성령께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게 하실 것이다. 율법말씀은 반드시 졸업하여야만 한다. 그래야 보혜사, 진리의 성령으로 구속을 받아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게 된다. 진리의 성령에 의해 다시 거듭남을 입고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구속이 되어진다. “그리스도 예수(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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