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혼과 육(Spirit, Soul and Fl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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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성경에는 혼과 영을 함께 더불어 사용하고 있는데, 영과 혼은 서로 교체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 둘은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매우 다른 것이다. 사람은 육(flesh)과 혼(soul) 그리고 영(spirit)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말 성경은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심령 또는 영혼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과 혼, 이 둘은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매우 다른 것이다.
영(spirit)은 생명을 부여해 주며, 이는“속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속 사람은 로마서 7:22,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영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의 영이 깨어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잠잔다고 표현하고 있다. 영이 깨어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죽은 자이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시록 3:1). “영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야고보서 2:26).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에 의해 우리의 영이 깨어나기 나야만 한다. 진리의 말씀은 성경의 문자말씀 속에 감추인 그리스도의 비밀이다(골로새서 2:2). 진리의 성령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니” (요한복음 16:13). 우리의 영이 깨어나야만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 22:32).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죽은 자(영이 잠자는 자)들로 저희 죽은 자(사망한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8:22).
혼(soul)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각 사람의 “겉 사람”을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원천이다. 이는 우리의 욕망과 감정, 그리고 속성을 아울러서 포함하고 있다. 혼은 겉 사람을 통칭하며, 구원을 받고 구속이 성취된다면 죽지 않게 된다. 우리의 믿음의 결국은 혼의 구원이다. 그러나 영이 깨어나지 않으면 혼의 구원은 없다. 혼이 구원을 받아야만 구속이 된다. 구속이 영원한, 진정한 구원이다. “믿음의 결국 곧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9).
하나님은 영이시다. 진리의 성령께서 성경말씀 속에 감추인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실 때 우리의 영은 깨어나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하나님의 은혜는 값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얻어지는 싸구려가 아니다.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 가셨으니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우리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만 영생에 이르게 된다. 진리는 오직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마태복음 7:7) 사람에게만 값 없이 주어진다.
영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셋째 날을 다시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날은 성경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창세기 1:11). 각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목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마른 땅에 씨를 뿌려야만 한다. 각기 종류대로 씨를 심을 때에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목을 낼 수 있게 된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누가복음 8:11). 씨//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심으면, 반드시 진리의 성령께서 진리로 깨닫게 하신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때어 나야만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된다. “그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을 깨우신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본을 보이신 것이다(요 13:1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39). 예수께선 십자가에 죽으신 후 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내 보이시며,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누가복음 24:45).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세계로 다시 재림하실 때 우리의 잠든 영은 비로소 그 분께 반응하게 된다. 이때에 우리의 영이 소생하게 되며,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 이렇게 부활되어진 우리의 몸은 예수와 같이 살과 뼈가 있다.
천국은 우리의 육을 가지고 가는 곳이 아니다.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영적인 몸은 살과 뼈가 없다. 그러나 이 땅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은 예수와 같이 살과 뼈가 있다.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고 진리와 동행하는 우리의 남은 삶을 육체의 남은 때로 표현한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2). “그 후”란 셋째 날이 성취된, 즉 진리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받은 그 후를 가리킨다.
셋째 날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활 하셨던 것과 같이, 셋째 날에 우리도 부활 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셋째 날에 이르러 셋째 날 신앙이 성취됨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 6: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제 삼일에 강림하시기 위해서, 모세로 하여금 온 백성을 예비케 하셨다. “네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 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출애굽기 19:10–11). 성경에서 말하는 옷은 그 분의 말씀을 가리킨다. 성경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 그 분의 재림을 예비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내적존재와 외적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럴지라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이 깨어나기까지는 내적존재는 실존하지 않는다. 영이 깨어나기까지는 우리는 겉 존재로 살아 갈 뿐이다. 구속을 받아야만 값 없이 영생을 얻게 된다. 겉 존재로만 살아간다면, 죽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에 심판을 받게 된다. 이는 우리의 행위의 심판이다(계시록 20:12). 행위의 심판은 애가와 애곡일 뿐이다(에스겔 2:9-10). 비록 선한 양심으로 선한 행위를 하였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한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로마서 3:20). 정죄함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우리의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에 반드시 우리의 영이 소생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부터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는 들추지 아니 하신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기만 한다면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입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섰을 때에 영적으로 죽는 심판이 없다.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이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3).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의 내면상태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죄에 대해 자유함을 입을 것인가? 아니면, 죽은 후에 다른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드러낼 것인가?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의 죄는 그 뒤를 쫒나니” (딤전 5:24).
셋째 날이 성취되어 우리의 영이 깨어나야만 영생을 얻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으니라" (마태복음 7:13-14). 셋째 날이 좁은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택함을 입은 자가 된다(마태복음 22:14).
[출처] 영, 혼과 육(Spirit, Soul, and Flesh)|작성자 장석련
영(spirit)은 생명을 부여해 주며, 이는“속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속 사람은 로마서 7:22,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영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사람의 영이 깨어난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잠잔다고 표현하고 있다. 영이 깨어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죽은 자이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시록 3:1). “영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야고보서 2:26).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의 말씀에 의해 우리의 영이 깨어나기 나야만 한다. 진리의 말씀은 성경의 문자말씀 속에 감추인 그리스도의 비밀이다(골로새서 2:2). 진리의 성령이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니” (요한복음 16:13). 우리의 영이 깨어나야만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 22:32).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죽은 자(영이 잠자는 자)들로 저희 죽은 자(사망한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8:22).
혼(soul)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각 사람의 “겉 사람”을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원천이다. 이는 우리의 욕망과 감정, 그리고 속성을 아울러서 포함하고 있다. 혼은 겉 사람을 통칭하며, 구원을 받고 구속이 성취된다면 죽지 않게 된다. 우리의 믿음의 결국은 혼의 구원이다. 그러나 영이 깨어나지 않으면 혼의 구원은 없다. 혼이 구원을 받아야만 구속이 된다. 구속이 영원한, 진정한 구원이다. “믿음의 결국 곧 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9).
하나님은 영이시다. 진리의 성령께서 성경말씀 속에 감추인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실 때 우리의 영은 깨어나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3:24). 하나님의 은혜는 값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얻어지는 싸구려가 아니다.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 가셨으니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우리는 말씀을 잘 깨달아야만 영생에 이르게 된다. 진리는 오직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마태복음 7:7) 사람에게만 값 없이 주어진다.
영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셋째 날을 다시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날은 성경말씀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창세기 1:11). 각기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목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마른 땅에 씨를 뿌려야만 한다. 각기 종류대로 씨를 심을 때에 종류대로 열매 맺는 과목을 낼 수 있게 된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누가복음 8:11). 씨//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심으면, 반드시 진리의 성령께서 진리로 깨닫게 하신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다.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때어 나야만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된다. “그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을 깨우신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본을 보이신 것이다(요 13:1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누가복음 24:39). 예수께선 십자가에 죽으신 후 제 삼 일 만에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내 보이시며,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누가복음 24:45).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세계로 다시 재림하실 때 우리의 잠든 영은 비로소 그 분께 반응하게 된다. 이때에 우리의 영이 소생하게 되며, 부활의 몸을 입게 된다. 이렇게 부활되어진 우리의 몸은 예수와 같이 살과 뼈가 있다.
천국은 우리의 육을 가지고 가는 곳이 아니다.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영적인 몸은 살과 뼈가 없다. 그러나 이 땅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과 동행하는 사람은 예수와 같이 살과 뼈가 있다.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고 진리와 동행하는 우리의 남은 삶을 육체의 남은 때로 표현한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2). “그 후”란 셋째 날이 성취된, 즉 진리의 말씀으로 깨달음을 받은 그 후를 가리킨다.
셋째 날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활 하셨던 것과 같이, 셋째 날에 우리도 부활 하여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셋째 날에 이르러 셋째 날 신앙이 성취됨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호세아 6: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제 삼일에 강림하시기 위해서, 모세로 하여금 온 백성을 예비케 하셨다. “네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 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출애굽기 19:10–11). 성경에서 말하는 옷은 그 분의 말씀을 가리킨다. 성경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는 것이 그 분의 재림을 예비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는 내적존재와 외적존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럴지라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이 깨어나기까지는 내적존재는 실존하지 않는다. 영이 깨어나기까지는 우리는 겉 존재로 살아 갈 뿐이다. 구속을 받아야만 값 없이 영생을 얻게 된다. 겉 존재로만 살아간다면, 죽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때에 심판을 받게 된다. 이는 우리의 행위의 심판이다(계시록 20:12). 행위의 심판은 애가와 애곡일 뿐이다(에스겔 2:9-10). 비록 선한 양심으로 선한 행위를 하였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한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로마서 3:20). 정죄함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우리의 목숨이 살아 있는 동안에 반드시 우리의 영이 소생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부터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는 들추지 아니 하신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기만 한다면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입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진리의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2).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섰을 때에 영적으로 죽는 심판이 없다.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날 것이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3).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의 내면상태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죄에 대해 자유함을 입을 것인가? 아니면, 죽은 후에 다른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드러낼 것인가?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의 죄는 그 뒤를 쫒나니” (딤전 5:24).
셋째 날이 성취되어 우리의 영이 깨어나야만 영생을 얻게 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으니라" (마태복음 7:13-14). 셋째 날이 좁은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택함을 입은 자가 된다(마태복음 22:14).
[출처] 영, 혼과 육(Spirit, Soul, and Flesh)|작성자 장석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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